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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치 Feb 04. 2024

살아있다는 것에 대하여


‘살아있다'라는 느낌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나는 30년을 살아오면서 딱 한 번, 아주 찰나에 느껴보았다. 당연히 우리는 살아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런데 왜 새삼스럽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 순간이 존재했는지도 의문이며, 반대로 늘 살아있음에도 왜 그 순간이 단 한 번 뿐이었는지, 그것도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가버린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지도 의문이다.

살아있음을 느꼈던 그 찰나의 순간으로 돌아가 본다. 나는 한국 무용의 매력을 느끼게 되어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전공자와 비전공자를 불문하고 한국 예술의 아름다움을 국내외로 알리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사물놀이, 한국무용, 탈춤 등 전통 예술을 선생님의 지도하에 열심히 연습하여 외국에 나가 길거리 버스킹을 하는 프로젝트였다. 그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에 드는 경비나 모든 비용들을 지원받지 않고  자비로 부담할 정도의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던 프로젝트였기에 우리는 금세 가까워질 수 있었다. 우리 문화에 매료되었다는 공통점과 버스킹 공연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졌기에 낯선 사람들과 함께였어도 준비하는 기간 동안 둥둥 떠오르는 풍선처럼 행복과 기대로 힘이 솟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가까워지는 듯했지만, 실제 우리의 거리감은 점점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팀원들 중 누군가를 나무라고 질책하는 방법으로 도우려는 한 팀원이 있었다. 그 팀원은 무용을 처음 접해 실수가 잦은 동생들에게까지도 점차 무례를 범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서로 동작을 맞춰가는 과정 속의 공기가 무겁고 불편해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 갈등은 곪고 곪다 결국 두 번째 공연 후 터지게 되었다. 그렇게 공연을 마친 날 밤에는  숙소에서 잠에 들며 다시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 많은 여정을 지나 드디어 마지막 공연 궁인 헝가리에 왔다. 그날은 어슴푸레 해가 지고 있는 저녁 시간대에 공연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 공연이라 다들 홀가분한 마음으로 공연에 임해서 그런지, 또 유난히 다른 나라보다 관중이 많이 모여서 그런지 더욱더 할 맛이 나는 공연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때의 나는 ‘이제 이 공연만 끝나면 다 끝이다!’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던 것 같다. 앞선 공연을 몇 번 거쳐오며 긴장도 조금 풀어져서 그런지  ‘그래, 나는 여기에 즐기러 온 것이었지’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의 순서를 이어가던 찰나, 나는 앞에서 말했던 살아있다는 느낌과 마주했다. 여느 때처럼 춤을 추고 있었던 때, 갑자기 우주 한 공간에 있는 듯한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진공상태의 공간에 들어간 느낌이랄까. 이상하고 낯선 느낌이 들기에 나는 오감을 이용해 내가 있는 곳을 더듬어 살펴보았다. 우리가 춤추고 있는 광장을 둘러싼 이국적인 건물들, 로맨틱하게 노란 가로등, 광장에 둥둥 울리는 북소리, 요란하게 이곳을 장악하는 태평소 소리, 그 소리들에 맞춰 쿵쿵 뛰는 내 심장소리,  춤추는 내 발밑으로 느껴지는 유럽 특유의 울퉁불퉁한 돌바닥, 그리고 긴장하지 않아 걸리는 것 없이 부드럽게 움직여지는 나의 몸. 그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떠한 느낌이 나를 스치곤 별똥별처럼 이내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이것이었던 것 같다. ‘아, 나 지금 살아있구나.'

사실 나는 계속 살아있었다. 처음 유럽에 도착해서 만난 동유럽은 많이 추웠기에 도착하자마자 썰렁함을 느꼈다. 첫 나라였던 독일의 베를린은 도시의 분위기도 아늑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때도 나는 살아있었기에 썰렁함을 느꼈고 낯섦과 삭막함을 느꼈다. 살아있었기에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 세 번째 공연을 하며 동생을 다그치는 팀원과의 견해 차이로 내 마음에 일렁이는 파도가 절정을 이루었을 때에도, 묘하게 달라진 팀 분위기를 눈치채고 중재를 위해 나서주신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눌 적에도 나는 살아있었기에 화가 났고, 불편했고, 조금의 안도감과 감사함도 느꼈을 테다.

그럼에도 그 순간에 느꼈던 ‘나는 살아있다’는 느낌은 어떤 것 때문에 생겨난 걸까. 앞서 말한 그저 살아있다는 ‘사실’이 아닌, 그 순간의 뉘앙스는 좀 더 감탄스럽고 경이로운 것이었다. 고로 내가 느낀 뉘앙스의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숨을 쉬고, 심장이 뛰고, 생각을 하며 감정을 느낀다. 또, 그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표현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무언가 주고받고 교류하며 그 속에서 서로 통했다는 느낌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아마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있기에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도 살아있기에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춤을 배울 때마다 그것들을 일련의 과제를 수행하듯 여기던 탓에 자꾸만 몸이 경직되어 ‘콘치님, 춤을 추세요!’라는 피드백을 많이 들었는데, 그런 내가 그 공연에서는 진정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해야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어 내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표현하니 가능했던 것 같다. 또, 마지막과 함께 화해의 시간을 거쳤던 만큼 팀원들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열정을 다해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며 춤을 출 수 있었다. 그 자유로움 속에서 수많은 관중들이 모여 나를 보고 있으니 심장도 함께 빠르게 춤을 추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잠을 청하던 나는 한순간에 변화했다. 이렇게 가치 있는 일이라면 그 정도 수고로움과 시행착오는 겪을만했다는 생각까지 들며 나도 모르게 다음을 기약하고 있었다. 이로써 나는 행복했고 성장했기에 헝가리에서 춤을 추던 나는 진정 살아있던 것이다.

당신은 언제 당신의 가슴이 뛰고 있음을 알아차렸는가? 생각과 감정을 풍부하게 느끼며, 어떤 것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그것을 표현했는가? 그 과정에서 어떤 누구와 무엇을 주고받으며 행복함을 느꼈는가? 누군가와 통한 느낌, 연결된 느낌을 느껴보았는가? 그리고 당신이 어느새 변화함을, 한 뼘 성장했음을 느꼈는가? 당신이 살면서 나처럼 딱 한 번 정도 그 느낌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남은 인생에서 그 순간을 적어도 한 번은 더 만나게 되길, 그리고 당신 스스로도 그 느낌을 되찾을 것을 소망하며 살길 바란다. 만일 당신이 아직 그 순간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라면, 앞으로 당신의 인생에 그런 순간이 언제, 어떻게 불쑥 찾아올지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길 바란다. 마치 어린 시절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던 마음처럼. 당신의 인생에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보다 더 큰 깜짝 선물이 찾아올 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온다면 당신은 그 순간을 나보다 더 충분히 만끽하길 바란다. 눈으로 보이는 모양과 색깔을 열심히 담고, 귀로 들려오는 감정과 분위기를 느끼고, 코로 맡을 수 있는 공기의 촉감에 젖어들어 보고, 피부로 알아챌 수 있는 숭고한 열정의 온도를 가득히 끌어안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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