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3일 앞두고 잠시 대전에 들를 일이 생겼다. 대전역에 내려서 친정집까지 어떻게 갈까 고민하다 여기저기로 빙빙 도느라 오래 걸리는 코스의 시내버스를 일부러 선택했다. 버스에 타서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골랐다. 마음이 심란해서인지 '그래. 이거야.' 하고 딱 들어맞는 음악을 고르기가 어려웠다. 뭐랄까.. 다소 무겁게 내려앉아있는 나의 마음을 더 가라앉게 하지는 않으면서도 너무 눈치 없지 않게 밝지도 않은, 적당히 공감해 주는듯하면서도 감정의 무게를 덜어내줄 수 있는 음악. 그러다 한 재즈 플레이리스트에 정착했다. 음악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느낌을 타고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다. 그곳은 집 앞에 있는 카페이다. 내가 좋아하는 타르트, 커피, 재즈, 그리고 골목대장 강아지가 항상 있는 곳.
내가 살고 있는 그 동네를 그리워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도박 pc방이 즐비해 '무섭다' 여겼던 그 동네를 이제는 떠나기 싫다. 자세히 보면 다 예쁘다고 했던가.. 동네의 첫인상은 무서웠지만 그래도 귀여운 고양이들을 많이 만나며 정을 붙였고, 기차역에 걸어갈 수 있었기에 이동하기가 편했고, 밤이면 남편과 조용히 산책하기 좋았고, 어울리지 않게 자리 잡은 예쁜 카페에서는 위로를 많이 얻었다. 그리고 그곳에 살면서 다닌 유치원에서는 좋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었다.
어떤 일이든 끝의 시점에 서게 되면 그의 처음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지역을 옮겨 이사한 직후 가슴이 두근거려 잠들지 못하던 학기 초반의 밤들이 생각난다. 그때 참 많이 두려웠었다. 대전에서 의원면직을 고민하다 도망치듯 이동을 했던 터라, 좋은 소문을 듣고 좋은 사람들을 직접 보고도 마음을 굳게 닫고 가시를 잔뜩 세우고 있었다. 그 두려움을 떨쳐내보려고 이것저것 많이 해보기도 했다. 새벽 줌 요가도 해보고, 상담도 받으러 다니고, 헬스도 다녀보고 발레도 다녀보고 피아노 학원도 다녀보았다. 그러나 이제 돌이켜보면 1년간 경계심을 기어코 유지하느라 스스로 불안해했던 그 시간이 아깝다. 더 빨리 좋은 사람들과 추억을 쌓기 시작할걸. 오래되고 낡았지만 정겨운 구석이 있는 이 동네를 좀 더 즐길걸. 구석구석 숨어있는 맛집들도 더 빨리 발견해서 많이 갈걸.
딱 2년이 지난 지금, 돌아오기 싫어서 또 잠 못 이루고 있는 나이다. 겪었던 곳이라 더 마음의 문을 꽁꽁 닫고 덜덜 떨고 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지레 무서웠다가, 화가 났다가, '그만둬버리지 뭐.'라며 당당해졌다가, 두려워졌다가, 슬퍼졌다 한다. 이곳도 자세히 보면 예쁜 구석이 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