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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치 Apr 01. 2024

실수의 미학

<재즈의 계절>, 김민주

만약 실수를 하지 않고 있다면 그게 실수다.
-마일스 데이비스


<재즈의 계절>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펴서 밑줄 그은 부분을 다시 보곤 하는 책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이 트럼페터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한 합동 공연의 일화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놀라운 솔로 연주가 진행되고 있던 때이다. 허비 행콕 본인도 마일스의 연주에 몰입해서 들으면서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힘 있고, 혁신적이고, 재밌었던” 연주 중, 허비 행콕이 그만 잘못된 코드를 치고 말았다. 누가 들어도 실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완전히 틀린”코드였다. 허비 행콕은 그것을 치고는 손으로 귀를 막은 채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마일스가 연주를 잠깐 멈추더니 허비 행콕이 잘못 연주한 그 코드가 맞는 코드처럼 들리게 하는 라인들을 불었다. 허비 행콕은 깨달았다. 마일스가 그의 실수를 실수로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냥 잠깐 일어난 일, 하나의 해프닝 정도로 여긴 것이다. 그건 그저 현실의 한 부분이고 순간적으로 일어나 버린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걸 처리한 것뿐이었다.


요즘 나는 일주일에 한번씩 우울증에 대한 진료를 받으러 다니고 있다. 지난주에는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의사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당신에게 일어났던 좋지 않았던 일들은 당신이 준비를 못해서, 당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저 운이 나빴기에 일어났던 것뿐이라고. 나쁜 일을 막기 위한 대비에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릴만큼 준비하고 경계하지 않아도, 나에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내재되어 있다고. 그러니 모든 것을 당신의 ‘준비 부족’과 ‘역량 부족’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비합리적인 것이라고.


나에게 필요한 것은 마일스가 연주 중에 일어난 ‘완전히 틀린 코드’를 대한 태도이지 않을까. 실수를 실수로 듣지 않는 것, 그냥 잠깐 일어난 일, 하나의 해프닝 정도로 여기는 것,  그리고 그냥 그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을 처리할 뿐이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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