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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치 Apr 16. 2024

춤 춘다는 것, 호흡한다는 것

<나는 어쩌다 그만두지 않았을까>, 정옥희

무언가를 전공한다는 것의 보편적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생활의 활력을 위해 때때로 즐길 때는 알 수 없는, 그 속에서 오래도록 허우적댈 때 펼쳐지는 애증의 파노라마를 말하고 싶었다.
-<나는 어쩌다 그만두지 않았을까>, 정옥희


지금은 요가를 하지만 철저히 아마추어로서 임한다. 아마추어인 나는 마음이 가볍다. 요가 수련을 며칠 빠져도, 유연성에 비해 근력이 떨어져도, 같은 동작이 되다가 안되어도, 별 상관이 없다. (중략) 전공은 그렇지 않다. 전공자에게 홀가분함이란 없다. 스스로 채운 족쇄를 매 순간 겪어 내야 한다.   
-<나는 어쩌다 그만두지 않았을까>, 정옥희


교사 생활을 시작한 첫해부터 나는 남들에게 말하긴 쪼-끔 그런,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왜 우리 반이 되는 아이들은 유난히 예쁘게 생긴 아이들일까?’라는. 아니, 아무리 봐도 콩깍지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예쁘게’ 생긴 것이다! 그것도 매년, 우리 반 아이들이 특히나! ‘내가 운이 좋은가..?’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결론은, 콩깍지가 맞다. 아마 맞을 것이다. 어떻게 8년간 내 학급의 아이들만 특히 예쁜 아이들로만 모였겠는가. 연예인 기획사 면접으로 뽑은 연습생 반도 아니고..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니 콩깍지인가 보다, 하는 것이다. 그 정도로 학창 시절부터 나는 어린아이들을 참 좋아했다. 봉사활동도 항상 어린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고,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성인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그런 내가 왜 그 위치에 서겠다는 목표를 이뤄놓고 ‘그만둘까, 말까’, ‘휴직할까, 말까’를 고민하고, 그렇게 예쁘던 아이들과 그들의 보호자를 힘들어하고 있을까.

한 달여간 나를 상담한 의사가 정의를 내려주었다. ‘스스로 어려운 문제를 내고, 못 푼다며 자신을 다그치고 그로부터 도망치려 하는 꼴’이라고. ‘더 잘해야 한다’고, ‘그러니 더 공부하고, 더 준비하고, 예상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다그치다 보니 생긴 마음의 병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이런 완벽주의라는 병으로 얻은 몸과 마음의 통증을이고 진 무겁고 딱딱한 상태로 교실에 있다가 나오지만, 복도로 한 발자국만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마음이 물렁물렁해진다.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 그 바람 타고 나의 몸을 휘감는 아이들의 목소리, 그리고 하원하는 아이의 입가에 묻은 간식 부스러기를 닦아주고 가방끈을 정돈해 주며 내일 보자는 다정한 인사를 나누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면 ‘그래.. 이곳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지..’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다. 나는 이 일을 떠나지도 못할 거면서, 이 일을 너무나도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은 이곳이지만 나는 이곳에서의 나를 스스로 불행할 수밖에 없도록 채찍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스스로 채운 족쇄, 애증 그 자체인 것이다.

나는 이 일을 시작한 뒤로 매사 나 자신에게 극한의 어려운 문제를 내는 버릇이 생겼다. 심지어는 취미로 무용을 배울 때도 호흡, 순서, 동작의 디테일을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역설적이게도 그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로 인해 선생님께 가장 많이 들은 피드백은 “춤을 추세요 00님!”이었다. 나는 춤추고 있었으나 춤추고 있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나는 춤을 추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꽤 오랜 시간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

춤에서 호흡을 발견하면 춤은 완전 다른 것으로 탈바꿈한다. (중략) 무용수의 몸매가 어떠하고 무슨 동작을 해내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춤은 근육과 뼈 덩어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 내며 에너지와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중략) 차의 목적이 마셔 버리는 게 아니듯, 춤의 목적은 동작을 해치우는 게 아니라 동작과 동작 사이를 음미하는 것이다. 인생도 그럴 것이다. 자기 호흡으로 이끌며 춤출 때 마리오네트 줄을 풀어 버리고 자유로워질 것이다.
-<나는 어쩌다 그만두지 않았을까>, 정옥희


아마추어로서 춤을 출 때도,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유치원에서 교사의 위치로 임할 때도, ‘이렇게 해야만 해’라는 마음의 목소리에서 벗어나 그 순간을 살아내며 만들어진 에너지로 나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나의 흐름대로 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것. 호흡할 것, 춤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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