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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gNew Mar 31. 2024

[6] 인간 시대의 끝이 도래했다?

번역 탱커 스탯 기록부

한때 인터넷에서 '잘못 번역된 예시'라고 해서,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발견한 오역의 사례를 업로드했던 적이 있습니다. 바로 '육회'라는 메뉴의 영문명을 'Six Times'라고 번역한 것이죠. 일단 번역기를 돌렸던 건 거의 확실한 듯하고, 그래서 문맥을 읽지 못하는 기계 번역 특성상 '6회'라고 인식해 'Six Times'로 번역이 들어갔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수많은 오역 사례가 여기저기 등장하며 사람들이 기계 번역, 소위 말하는 번역기의 번역 품질에 대해 의문을 품었고, 그때부터 부자연스럽거나 문어체 가득한 느낌이 드는 말 또는 글을 보고 '이거 번역기 돌렸냐?'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번역이 엉망인 걸 보고 '발번역이다'고 했지만 최근에는 그 말 대신 '번역기 돌렸다', '기계가 번역했다'고 하더군요. 'Six Times'가 핫했던 때만 하더라도 기계 번역 품질이 진짜 눈 뜨고 못 봐줄 정도였습니다. '동태탕'이 'Dynamic stew'가 되고, '김치찜'이 'Kimchi wishlist'가 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요즘에는 다행히 이보다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파파고에 검색 돌려보니 육회는 Korean style raw beef로, 동태탕은 Pollack soup로, 김치찜은 Steamed Kimchi로 잘 나오네요. 저런 비아냥을 받고도 품질이 개선되지 않으면 그건 '저희 번역기를 욕해주세요'라는 말과 다름없기 때문이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번역기'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기껏 해야 구글 번역, 파파고 정도가 전부였죠.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사용자의 번역을 도와주는 수많은 번역기와 번역 AI를 아주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비단 구글 번역과 파파고뿐 아니라 DeepL, Chat GPT, WRTN과 같은 AI도 발명이 되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죠. 번역기야 워낙에 인풋이 많았으니 이제는 그래도 사람이 보았을 때 '아, 이런 내용이구나~'라고 이해할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일상에서 쓰는 자연스러운 표현을 완벽하게 구사하진 않더라도 표면상 의미 정도는 이해되도록 금방 답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번역기도 번역기지만 특히 이 AI들의 대답을 보면 놀라울 정도입니다. 문장 하나를 주고 '자연스럽게 번역해 줘'라고 입력하면 꽤나 정교한 번역값을 출력해 냅니다. 번역뿐 아니라 어떤 주제를 던져 주면 그에 관한 글도 작성해 주고, 이제는 그림까지 그려 준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로 업무 현장에서는 이 AI들의 도움을 상당히 많이 받고 있다고 해요. 긴 메일을 다 읽고 있을 시간이 없을 때 AI에 넣고 '내용을 요약해 줘'라고 입력하면 몇 초 안 돼서 서 간단하게 무슨 내용인지 쭉 적어줍니다. 어려운 개념에 대해 이해를 해야 하는데 논문이나 관련 영상을 찾아볼 수 없을 때 AI에 넣고 '이건 무엇인지 다섯 줄로 요약해서 알려줘'라고 하면 뚝딱 답을 내놓습니다. 이렇게 범용성이 좋다 보니 최근에는 '자소서(자기소개서)도 Chat GPT가 써 준다', '발표 자료도 도 주제만 넣고 만들어 달라고 하면 금방 생성해 준다'는 등 AI를 악용 아닌 악용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걸러내는 것이 또 인간의 숙제라면 숙제겠죠.


이렇게 번역 관련 AI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지금, 제 지인들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그럼 번역가나 번역 회사는 곧 망하는 거 아냐?'라고 묻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술한 AI에 번역이 필요한 문장을 가져다 넣으면 바로 번역값을 출력해 주기 때문이죠. 언뜻 보면 맞는 주장 같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소위 말하는 업계 바깥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저는 업계 사람이니까 번역 관련 얘기만 하자면 우선 사람들이 저 AI를 번역에 이용하는 경우의 수가 매우 한정적입니다. '다음 메일을 정중한 문체로 번역해 줘', '제안서를 써야 하는데 A라는 내용에 대해 영문으로 자세히 번역해 줘', '호텔에서 B라는 요청을 해야 하는데 이걸 일본어로 번역해 줘' 등과 같이 주로 비즈니스 및 일상적인 부분에 국한돼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 산업 분야가 수백 수천 가지가 있고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AI가 사용되는지는 제가 다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전문적인 내용을 다룰 때는 이렇게 전문가도 아닌 툴에 대충 내용을 넣어서 번역을 가져다 쓰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매우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이 AI 번역이 사용되는 것이죠. 이렇게 일상의 부분에 대부분 사용이 되다 보니 관련 인풋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가벼운 내용에 대해서는 더더욱 번역 품질이 상향되는 것입니다.


업계 바깥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 이어서 얘기해 보자면, 기계 번역이 빠르게 침투 가능한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AI 번역이 금방 영역을 넓힐 수 있는 분야는 '문체가 다양하지 않은 딱딱한 번역문'입니다. 이를테면 약관, 규정, 매뉴얼, 가이드 등이 있습니다. 물론 이 글들도 모두 사람의 손끝에서 탄생하기 때문에 100% 기계 번역으로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콘텐츠 특성상 인과관계와 주술호응이 확실한 문장으로만 나열이 되어 있으며 한 번 제작해 두면 변경점이 거의 없기 때문에 기계에 한 번 학습시켜 두면 금방 익혀 손쉬운 재제작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AI 번역이 침투하기 어려운 분야는 '인간의 감정과 관련된 번역문'입니다. 영상, 문학, 게임 등이 여기에 해당되겠네요. 저는 특히 영상과 문학은 AI가 침투해도 가장 나중에서야 하게 될 분야라고 봅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와, 이걸 어떻게 저렇게 번역했지?' 싶은 대사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Here's looking at you, kid'는 직역하자면 '다 보고 있다, 얘야' 정도인데 이걸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라고 로맨틱하게 의역이 이루어졌죠. 이런 번역이 나오려면 번역가의 센스도 중요하지만 이 대사를 하는 캐릭터의 성격, 당시의 상황 등 여러 요인을 복합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문학 번역은 또 어떤가요. 그 유려하고 섬세한 문장들을 AI가 번역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이해를 넘어 감동을 주어야 하는데 기계가 읽어 주는 듯 딱딱하게 문장이 전개되면 읽을 맛이 도무지 나지 않을 겁니다.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A라는 게임에는 공중에서 로켓포를 쏘는 캐릭터가 있습니다. 이 캐릭터가 궁극기를 사용할 때 나오는 영어 대사는 'Justice rains from above!'입니다. 이 대사는 실제 인게임에서 '하늘에서 정의가 빗발친다'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rain'과 'above'의 단어 뜻을 살림과 동시에 그 캐릭터의 공격 방식(로켓포)을 녹여낸 한 단어 '빗발치다'로 번역이 됐습니다. 참고로 파파고에서는 이 영문이 '정의는 위에서 비를 내립니다'라고 번역이 되네요.


AI의 발전은 눈에 띌 정도로 굉장히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고, 번역 업계도 이를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기계 번역이 인간을 대체한다'는 말은 시기상조라고 봅니다. '일상에서 번역이 필요할 때'로 조건을 붙인다면 어느 정도는 동의하지만, 아직까지 기계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1차 번역은 어떻게 어떻게 한다고 쳐도 그 끝에는 반드시 휴먼 터치가 들어가야 합니다. 상기한 분야들을 AI가 잡아먹으려면 과장 조금 보태서 제가 죽기 전까지는 AI의 주 무대가 영상 번역, 문학 번역이 될 일은 없어 보입니다. 우리나라 남자들이라면 대부분 한다는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 중 하나인 '블리츠크랭크'는 로봇인데요, 대사 중 이런 게 있습니다: "인간 시대의 끝이 도래했다". 아쉽게도 이 챔피언의 말은 아직까지는 틀린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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