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Flower, Encore in Seoul
지난 8월 23일~25일 3일간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루시의 첫 월드투어 <LUCY 1st WORLD TOUR written by FLOWER>(이하 ‘written by FLOWER’)의 앙코르 콘서트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는 루시의 첫 월드투어의 시작이자 지난 3월에 진행되었던 서울 콘서트에 잇따른 앙코르 콘서트였지만, 셋리스트, VCR, 무대 연출 등 많은 면에서 기존과 새롭게 달라진 콘서트라고 평가된다. 이 글에서는 이번 ‘written by Flower’ 앙콘의 무대 구조부터 셋리스트 구성까지 공연의 포인트 지점을 낱낱이 분석하며 공연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에 대해 고찰한다.
무대구조
<Written by FLOWER, Encore in Seoul> 콘서트의 무대는 360도 형태로 사방에 객석이 존재하며 3시, 6시, 9시, 12시 방향으로 길게 뻗은 돌출무대를 최대한 활용하였다. 공연의 주체가 악기를 사용해야 하는 밴드인 점, 그리고 장소가 핸드볼 경기장이었기에 티켓팅할 때부터 이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이처럼 다소 실험적이었던 360도 무대는 결과적으로 많은 관객들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듣게 되며 이번 공연에서의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보통의 360도 무대와는 다르게 무대 밑바닥부터 구조물을 쌓아 올렸기 때문에, 이 철골 구조물은 무대 시야를 제한하고 멤버들을 대신하여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실제의 높은 공연장 천장에 비해 아래서부터 쌓아 올린 구조물과 수많은 조명과 LED 판이 달린 바턴, 추가적으로 밑에 위치한 동그란 본무대 위 높은 드럼단이 합쳐져 무대가 너무나도 좁아 보이는 형태의 구조였다. 실제로 2층 지정석에서는 무대 정중앙 포지션인 신광일의 드럼을 실물로 보기 어려웠으며, 1층 스탠딩에서는 티켓팅에 갖은 노력을 하며 처음으로 입장하여 맨 앞 펜스를 잡은 사람이 구조물 앞에 서게 되어 철골과 팬미팅하는 듯 멤버들이 철골에 가려 보기 어려웠다는 후문이 있다. 심지어는 4면에 각 멤버들과 악기 스탠드, 밴드 세션분들, 몇 곡에서는 댄서분들까지 무대에 서서 이미 좁아 보이는 무대를 더욱 비좁아 보이는 구성으로 관객들이 점차 4면으로 나눠진 본인들의 최애 멤버를 찾기에 바쁜 상황에 이른다.
시각적 비교를 위해 최근에 진행되었던 다른 밴드 공연 360도 무대 사진을 하단에 첨부하였다.
셋리스트 구성
#1. 공연의 시작, 오프닝
‘도깨비춤’-‘못난이’
관객들은 공연장에 입장하고 자리에 착석하면 하우스에서 흘러나오는 BGM을 들으며 곧 다가올 콘서트의 시작을 기다린다. 마지막 BGM인 ‘낙화’(<FROM> 수록곡)가 어느 순간 공연장을 사로잡을 것처럼 볼륨이 커진 순간 “이제 시작한다.”라는 설레는 마음을 간직한 채 저마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낸다. 벅찬 마음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BGM이 끝나면 암전 후, VCR이 재생되며 공연이 시작된다. VCR은 노란 도깨비 이야기와 이를 기반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위에 곁들여진 김응수 배우의 내레이션으로 만들어졌다. 김응수 배우와는 이전 네이버 나우에서 진행되었던 <응수씨네> 라디오에서 루시가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여 친분을 쌓은 바 있으며, 노란 도깨비 이야기는 베이시스트 조원상의 아버지께서 써주셨다고 한다. VCR 영상에 나온 노란 도깨비 이야기는 전래동화의 <빨간 도깨비, 파란 도깨비>에서 모티브를 얻어 그들과 달리 사람들과 친해질 수 없었던 노란 도깨비가 홀로 춤을 추며 자신의 마음을 피워낸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관객으로서 공연 자체에 확 몰입이 되고 뒤에 ‘도깨비춤’ 무대와 이어져 가사를 몰랐더라도 다시 한번 곡에 빠져들게 되는 구간이다.
VCR이 종료됨과 동시에 무대를 둘러싸던 샤막이 떨어지고 각 돌출무대 꼭짓점의 멤버들이 빔 조명과 함께 등장하며 이번 ‘FROM’ 앨범의 수록곡 ‘도깨비춤’이 인트로가 추가된 콘서트 버전으로 공연은 시작된다.
이처럼 이번 콘서트에서 처음 선보이는 ‘도깨비춤’의 압도감은 공연의 몰입도를 확 올려주는 포인트가 되었다. 등장씬 또한 효과음에 맞춰 암전에서 멤버들이 빛났다가 사라졌다가 반복되는데, 이는 관객들에게 멤버들의 아우라와 후광을 돋보이게 한다.
공연은 ‘도깨비춤’의 역동감에 그치지 않고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못난이’가 조원상의 베이스 솔로로 바로 이어진다. ‘못난이’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노래이며, 베이스 리프부터 상행과 하행을 반복하는 기타, 굉장한 속도감으로 전개되어 첫 곡에 이어받아 무대를 확 달구기에 충분했다. 또한, 후렴구의 소리 지르는 듯한 “Warning! Warning!”은 관객들의 떼창을 이끌어내었다.
#2. 본격적인 떼창의 시작
‘동문서답’-‘못 죽는 기사와 비단 요람’-‘맞네’-‘내버려’
다음 순서는 첫 시도된 두 곡의 열기에 이어 관객들의 뜨거운 떼창을 자극하는 노래들로 공연이 전개된다. 이전 콘서트에서는 보통 셋리스트 뒤쪽에 위치하던 곡들인데 이번 공연에선 앞쪽에 구성하여 확 달궈진 무대의 온도를 끝까지 불태우는 셋리스트이다. ‘동문서답’에서는 화려한 밴드 합주에 걸맞게 포인트를 주는 LED 연출로 타이포그래피 소스를 활용한 화면이 비춰진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워낙 무대 구조가 멤버들의 실물을 보기 어려운 무대였다 보니, 관객들은 전광판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이 소스 90%+멤버들 중계PGM 10%라면 각각 70%, 30% 정도로 소스의 불투명도를 낮춰서 멤버들 실루엣이 더 잘 보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다. 물론 쨍한 색감의 소스 사용은 다른 무대들과의 차별점이 되기도 하였다.
바로 이어진 ‘못 죽는 기사와 비단 요람’은 뮤직비디오 속 달리는 애니메이션 영상이 소스로 쓰였다. 곡 자체는 ‘기사’와 ‘비단 요람’이라는 다소 생소한 주제지만 자신의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한없이 여정을 달려 나가야만 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애니메이션과 접목되어 특유의 뜨거운 벅참과 감성을 이끌어내는 곡이다. 특히 이 곡은 관객들로 하여금 콘서트 셋리스트에 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하는 노래이며 떼창하기에 가장 신나는 노래라는 후기가 있다. 다음은 짧은 멘트로 조금 숨을 고른 후, 밴드 합주가 더욱 풍성해진 관객들이 콘서트 버전 ‘맞네’와 ‘내버려’가 이어진다. 특히 ‘맞네’에선 보컬 최상엽은 관객석으로 내려가 마이크를 관객에게 대주며 가창을 이끌었고 떼창 파트에선 객석을 비추는 블라인드 조명으로 관객에게 마이크를 자연스럽게 넘기는 듯한 연출이 구성되었다. 곧 이은 ‘내버려’에선 인트로에서 락 장르와 화려한 기타 및 베이스라인에 맞게 특수효과 중 스파큘러가 활용되었고, LED 연출도 PGM+노란색+파란색 노이즈 소스로 특유의 펑키한 무드가 파란 조명과 노란 스파률러에 잘 묻었다. 후렴에선 타이포 소스로 가사를 강조했는데 이 또한 관객들의 몰입과 참여도를 높였다고 볼 수 있다.
#3. 스토리를 활용한 드라마적 연출
‘Boogie Man’
오프닝부터 내버려까지 한껏 뜨거워진 무대에 이어진 다음곡은 드라마적 퍼포먼스로 관객들로 하여금 소름을 돋게 하는 ‘Boogie Man’이다. 이 곡은 겨울앨범 타이틀 곡으로 루시가 기존에 보여주었던 청량한 에너지는 잠시 접어두고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이모팝(emo pop) 장르에 도전한 곡이다. 가사를 통해 전달되는 주된 메시지는 두려움과 고립감이며, 깊고 어두운 옷장 속에서 떨고 있는 모습 등으로 내면의 불안과 공포를 드러내고, 부기맨이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욕망과 혼란을 묘사한다. 전반적으로 부기맨과의 마주침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고 두려움에 직면하여 이겨내려는 시도가 표현된 곡이다.
이 무대에서는 추가적으로 후반부에서 실제 부기맨의 캐릭터를 실현시켜 으스스한 가면을 쓴 부기맨이 등장한다. 꼭두각시 인형처럼 빨간 끈으로 조종하며 끌고 가려하지만 이에 맞서 억압하던 빨간 끈을 끊고 자유롭게 연주하며 무대가 끝이 난다. 이 퍼포먼스에 기괴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하는 간주 구성과 빨간 조명, 캐릭터 LED 소스를 통해 뮤지컬처럼 스토리가 잘 살아난 무대 연출이라고 볼 수 있다.
#4. 감미로운 발라드
‘Farther and Farther’-‘파울’
제목 미상의 자작곡-‘좋은 밤 좋은 꿈(원곡:너드커넥션)’+'Would You Dance With Me’
'남김없이'
다음으로 진행된 구간은 감미로운 음성과 감동의 물결이 시작되었던 발라드 파트이다. 부기맨의 퍼포먼스로 한껏 압도되었던 현장의 분위기를 말랑하고 아름답게 바꾸었다. 보컬 최상엽은 ‘farther and farther’와 ‘파울’을 믹스한 곡으로 단단하고도 애절한 음색으로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하였고, 드럼의 신광일은 제목 미상의 자작곡과 너드커넥션의 ‘좋은 밤 좋은 꿈’, ‘Would you dance with me’를 통해 자신만의 따뜻하고 감성적인 매력의 보컬을 드러내었다.(신광일은 슈퍼밴드 초반 보컬 포지션이었다.) 특히, 군입대를 앞둔 신광일은 직접 작성한 손 편지로 감동을 주며 서울 콘서트에서의 입대 전 마지막 팬들과 본인만의 감정을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진 무대는 이번 [FROM.] 앨범의 수록곡이자 신광일이 작곡한 ‘남김없이’로 촉촉하고 뭉클한 감정선이 연결되었다. 특히 1절에서는 신광일, 2절에선 최상엽의 각기 다른 보컬의 매력을 드러내는 곡인데, 신광일의 솔로무대에 이어 보컬로써 1절을 쭉 부르고, 2절이 시작되자 신광일의 드럼 사운드와 함께 최상엽이 자연스럽게 노래를 부르며 등장하여 감정선이 깨지지 않도록 지속한다는 느낌을 준다.
#5. 1부의 끝
‘놀이’-‘아지랑이’-‘엔딩’
‘남김없이’ 이후로 다시 완전체로 무대에 선 루시는 1부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놀이’에선 곡의 의미가 더욱 잘 보이도록 조금은 절제된 조명 연출에 LED에 어릴 적 일기장과 놀이터를 상징하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아련하고 벅차오르는 감성의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일깨운다.
바로 이어진 ‘아지랑이’는 치열한 청춘의 열병을 위로하고자 그 벅참과 혼란을 그려낸 곡으로 이 무대의 가장 좋았던 것은 LED에 크게 4분할로 꽉 채워진 중계화면으로 합주 중인 멤버가 모두 한 화면에 보이며 이 밴드의 청춘을 보여주는 듯한 연출이 돋보인다.
‘엔딩’은 프로듀싱을 한 조원상이 실제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을 떠나는 관객들을 보며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과 감정을 표현한 곡이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만큼 인트로부터 빌드업되는 밴드 합주와 서사를 담은 가사 소스가 후반부 흩날려진 수많은 컨페티를 통해 아름다운 장면의 연출이 완성된다.
#6. 취향저격 무대
'너의 모든 순간’(원곡:성시경)-'우아해’(원곡:크러쉬)-'무조건’(원곡:박상철)-'연예인’(원곡:싸이)
2부는 VCR 2로 시작한다. 두 번째 VCR은 멤버들의 귀여운 모습들로 관객의 마음을 제대로 사로잡았다. VCR 속엔 돈을 탕진해 파산한 멤버들, 다시 무대를 하기 위해서 각각의 매력을 뽐내며 팬들의 마음을 뺏는 무대를 준비하게 되는 가상의 스토리이다. 이는 다음에 기획된 솔로무대의 예고편처럼 다가올 무대를 암시한다.
VCR 이후 멤버들의 개인 커버무대는 바이올린 신예찬의 아련한 발라드 ‘너의 모든 순간’, 베이스 조원상의 치명적인 R&B 소울 ‘우아해’, 드럼 신광일의 맛깔난 트로트 ‘무조건’, 보컬 최상엽의 박력 있는 댄스 ‘연예인’ 무대로 진행되었다. 멤버들이 등장할 때마다 각각의 다채로운 매력으로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고 야무진 무대매너에 사로잡히는 구간이었다.
#7. 루시만의 색깔
‘I GOT U’-'뜨거워’-'히어로’-'아니 근데 진짜’-'떼굴떼굴’-'Knowhow’
개인 커버무대 이후 1부보다 더욱 뜨거워진 열기에 다시 루시만의 색깔을 보여주는 공연을 재개한다. 루시 멤버들은 이때 2층 관객들도 일어설 수 있게끔 유도하는데 스탠딩 관객들을 보며 몸이 근질거리던 관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서서 더욱 열정적으로 공연을 즐긴다.
‘I GOT YOU’는 운명처럼 나타는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다가가는 화자의 모습을 술래잡기에 비유한 곡으로 컨트리 사운드가 돋보인다. 또한 가벼운 리듬의 기타 반주 위에 있는 중독성 강한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단단하게 빌드업되어가는 구성 속 하이라이트의 EDM 사운드가 사랑에 적극적으로 다가가 마침내 함께 하게 되는 클라이맥스를 잘 표현해 냈다. 멤버들은 루시 앨범 노래 중에 가장 팝스러운 노래라고 꼽는다. ‘I GOT YOU’ 인트로에서 터지는 릴 컨페티와 고딕의 가사 타이포 소스, 끝없이 올라가는 풍선 소스는 한층 분위기에 시원함을 더한다. 이후 다음곡으로 넘어가는 부분의 인트로는 루시의 시그니처 퍼포먼스라고 볼 수 있는 바이올린과 베이스 독주 파트인데, 대결구도처럼 빨강, 파랑으로 나뉘어서 솔로 파트를 연주하다가 여름 대표곡 ‘뜨거’가 시작된다.
치열함에서 청량함으로 바뀌어 첫 소절에서 터진 카타르시스는 곡 전반에 걸쳐 지속된다. ‘뜨거’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바이올린 솔로파트는 명불허전으로 킬링파트이다. 프로듀서 말에 따르면, 라이브에서 연주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미디 바이올린(전자사운드)로 넣으려고 했는데, 멤버 신예찬이 라이브 연주를 가능케 해서 이 또한 루시만의 퍼포먼스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다음곡 ‘히어로’는 파스텔톤 도형 소스가 중계화면의 프레임을 쓰이면서 ‘히어로’ 특유의 상큼하고 귀여운 분위기와 잘 어우러졌다. 이렇게 ‘뜨거’와 ‘히어로’로 루시만의 청량함을 보여준다.
다음곡 ‘아니 근데 진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발랄한 노래인데, 8비트 미니 게임화면으로 구름과 하트 소스가 튀어나온다. y2k 감성의 컴퓨터 화면, 싸이월드 감성을 담으며 톡톡 튀면서도 러블리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었다.
‘떼굴떼굴’은 리드미컬한 드럼베이스와 경쾌한 바이올린의 소리가 듣는 순간 텐션을 확 높여주는 노래이다. 콘서트 버전에서 더욱 풍부해진 사운드로 자유롭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돋보인다. 이 곡의 포인트는 2절 시작 베이스 솔로마디로 전환이 되는 부분이며 깔끔한 선형의 네온사인을 중계프레임으로 사용하여 화면 속 멤버들의 연주에 더욱 집중시키게 한다. ‘knowhow’ 인트로에서는 베이스, 바이올린 솔로가 확 돋보이는 곡이다. 합주에 몰입하여 한창 정신을 빼놓은 것처럼 집중해서 듣다가 사이로 뚫고 나오는 보컬의 첫 소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함을 준다. 또한, 이 곡은 첫 정규앨범의 수록곡이지만, 첫날의 떼창이벤트 곡으로도 쓰일 만큼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8. 2부의 끝
‘빌런’-'21세기의 어떤 날’-’Flare’
공연은 절정에 다다른 후 관객들은 이미 목과 몸이 풀린 상태로 망설임 없이 호응을 하고 떼창을 소화하는데 마침 다음 곡들이 거의 전 구간 떼창을 유도하는 곡들이다.
‘빌런’은 ‘히어로’의 대척점인 곡으로 흔히 말하는 빌런의 어둡고 비틀어진 세상에서 따스한 햇살을 깨닫고 맑은 세상에서의 히어로를 꿈꾸는 곡으로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이 곡에선 질주하는 드럼, 타격감 강한 사운드, 그리고 직관적인 가사와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전개가 눈에 뜨이는 곡이다. 또한, ‘빌런’은 공식 응원법 영상이 있을 만큼 떼창에 힘이 들어간 곡이다.
‘빌런’의 바통을 받은 곡은 ‘21세기의 어떤 날’로 페퍼톤스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곡인데, 원곡 못지않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곡이다. 원곡은 지나간 추억을 “그때 그랬지”라고 회상하며 청춘의 낭만을 되뇌는 느낌이라면, 리메이크 버전은 루시만의 편곡과 바이올린 사운드로 지금 모습의 우리, 청춘의 청량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듯한 곡이다. 또한, 가사 중에 “2012년 1월 16일”이라고 원곡에선 페퍼톤스가 이 곡을 녹음한 날짜가 나오는데, 콘서트에서는 관객들 떼창파트로 “2024년 8월 23일” 공연 당일의 날짜를 소리친다. 이 부분이 이 곡의 포인트로 당시 공연 날짜가 떼창이 되는 것이 지나가는 시간 속 돌아오지 않을 찰나를 공연 현장 속에서 기억하는 것이기에, 관객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함께 소리친다.
다음은 ‘ENDING’에 이어 루시의 시그니처 마지막곡 ‘FLARE’다. 기간에 비해 노래가 정말 많은 만큼 엔딩용 곡도 많고, 셋리스트에 신곡도 다 들어갔는데 이번에도 꼭꼭 챙겨준 것을 보며 공연을 향한 그들의 진심을 한번 더 체감할 수 있었다. ‘FLARE’는 루시의 기반이 된 슈퍼밴드의 파이널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이다. 당시에는 이주혁 보컬로 무대를 했지만 최상엽 보컬로 바뀌며 또 다른 매력의 ‘FLARE’를 공연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후렴까지 빌드업되는 바이올린 라인과 드럼 비트, ‘FLARE’의 시그니처 폭죽을 쏘는 듯한 사운드에 맞춰 각자의 악기로 총을 쏘는 듯한 모션이 합쳐진 철컥빵! 부분이 이 곡의 하이라이트이다. 개인적으로는 꼭 큰 공연장 야외무대에서 하늘 높이 폭죽이 아름답게 터지는 것을 보면서 라이브를 듣고 싶은 노래 중에 하나이다. 이번 공연에서도 후반부에 낮은 폭죽이 터지긴 했지만 깃발 퍼포먼스가 웅장함을 대신했는데, ‘FLARE’ 주제와는 조금 연관성이 없다는 의견도 있고 작은 공연장에서 오히려 무대에 집중이 안 됐다는 등 호불호가 있다. 사실, 이게 없었으면 빌드업 구간이 조금 허전했을 것도 같아 최선의 연출이었던 것 같다. LED 화면도 한 여름밤을 수놓은 폭죽놀이를 보듯 황홀한 기분이 들게 했다. 이 곡 역시 콘서트 버전 편곡은 2절의 “oh-eh-oh” 부분 드럼이 잠깐 멈추는데 이때 관객석 블라인드 조명도 함께 켜지며 떼창에 집중되어 관객과 무대를 공유하는 듯한 짜릿함을 선사한다.
#9. 엔딩, 또 다른 시작
‘낙화’-'개화’
암전 후 VCR3로 무대는 전개된다. 마지막 VCR의 내용은 루시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대한 멤버들의 코멘트이다. 쉼 없이 달려온 루시에게 찾아온 공백기는 많은 혼란을 가져올 수 있지만, 루시 멤버들은 자신들의 발자취와 멤버들 서로서로를 믿기에 언제나 루시는 성장하면서도 그 자리에 팬분들과 함께할 것임을 이야기한다.
VCR 이후 공연은 진짜 엔딩을 향해 달려간다. 다음은 이번 앨범의 마지막 트랙 ‘낙화’ 그리고 데뷔앨범의 타이틀곡 ‘개화’이다. ‘개화’는 꽃이 피는 과정의 시작의 설렘을 담은 곡으로 루시의 첫 번째 서사가 되는 곡이며, ‘낙화’는 루시라는 밴드가 걸어온 길에 대한 정성스러운 회고록이라 볼 수 있다. 이번 콘서트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큰 울림을 주는 곡이다. 이번에 발매된 곡이지만 이전 콘서트에서 선공개곡으로 무대를 보인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다르게 이번 앙콘에서는 ‘개화’-‘낙화’ 순서가 아닌 ‘낙화’-‘개화’ 순서로 진행하였다. 통상적인 의미로 ‘개화’ 이후 ‘낙화’가 당연하지만 이들은 ‘낙화’를 엔딩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꽃이 진 후에 다시 꽃이 피는 의미를 담아 ‘낙화’ 다음 ‘개화’로 루시의 또 다른 꽃이 개화할 것이다라는 암시를 건넨다.
이는 군대로 드럼 신광일이 잠시 자리를 비워 3인 활동 체제가 되기 전 마지막 완전체 콘서트이자 2020년 데뷔 이래 앨범 38여 개를 내며 쉼 없이 달려온 그들에게 주어진 첫 프리시즌(공백기) 전 콘서트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실제로 25일 앙코르콘서트 마지막 날에는 멤버들과 관객들 대부분이 감정이 벅차올라 많은 눈물을 보이며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연출적인 부분에서도 최대한 담백하게 힘을 준 게 느껴졌다. LED 화면도 낙화에서는 하늘 속 떨어지는 꽃, 노래하는 멤버들이 돋보였고 개화에서는 그 떨어지던 꽃잎들이 하늘로 다시 날아오른다. 개인적으로는 소스 속 정원의 꽃들이 너무 톤이 쨍하고 진한 색채라서 조금은 번잡스러운 느낌이 들었어서 차라리 포스터처럼 파스텔톤으로 노랑, 핑크, 초록만 사용하여 정원을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후반부에 하염없이 떨어지는 꽃가루 컨페티는 공연장 천장을 수놓으며 관객들이 그날의 공연을 아름답게 추억하기에 충분했다.
다시 만날 걸 알아
루시는 이번 앙코르 콘서트 직전 [FROM.] 앨범을 발매하며 데뷔 앨범인 [DEAR.]로 시작한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었다. [DEAR.]의 ‘개화’에서는 청춘의 시작과 설렘을 [FROM.]에서는 청춘의 아픔과 열정, 그 양면을 노래한다. 가장 어두운 시기를 지나 다시 찾아올 빛, 즉 희망을 암시하며 루시의 1막을 마무리한다. 이 공연은 시기적으로도, 셋 리스트 안에서도 ‘LUCY’라는 팀의 시작 이후 모든 과정에서의 서사와 생각들이 모두 묻어 나올 수밖에 없었고 이 점이 공연의 핵심이 되었다.
사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다소 아쉬운 점이 많았다. 두 가지만 꼽아보자면, 우선 셋 리스트와 편곡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음향 시스템이 좋지 않았고, 첫 공연에는 기술적인 문제로 다소 박자가 밀리는 실수도 간혹 있었다. 잘 대처해서 넘어갔지만 중요한 후렴파트라 실수가 모를 수 없게 보였기 때문에 멤버들의 당황한 모습들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또한, 후일담이자 피드백이 가장 많이 나왔던 부분인 무대가 너무 작아 보이는 와중에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멤버들 각각 조합하기에 신경을 뺏게 되는 공연이었다. 360도 무대로 4각에 선 멤버들은 중간중간 위치를 바꾸기도 하며 관객들이 각각 가까이 볼 수는 있었지만 밴드 라이브의 맛 ‘합주’에서 그들의 케미가 빛나는 모먼트는 이번 공연에서 찾기 힘들었다. 세션분들도 무대에 층을 따로 두는 등 충분히 분리할 수 있을 텐데 한 무대에 고정적인 섹션에 위치했기 때문에 각에 따라 그들만 보이는 ‘세션뷰’ ‘철골뷰’ 등등 탄생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모든 기술적인 부분들은 자본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케 되기 때문에 다음 공연땐 조금 더 투자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티켓도 잘 팔리는데 말이다.
하지만 위에 언급했듯이 이 콘서트의 의미가 어느 때보다 남달랐고, 그간의 서사와 멤버들의 진심이 돋보였기에 공연은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공연의 여운이 끊기지 않고 핸드볼경기장에 관객들의 영혼을 두고 왔다는 후기가 올라온다. 떼창곡들로 꽉꽉 채운 셋리스트와 이에 호응하는 관객들의 열기를 보며 이 콘서트의 의미가 단순히 유명한 밴드의 공연+연주를 보러 온 관객들이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무대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밴드 ‘루시’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에서 그들과 팬 ‘왈왈이’를 이어주는 유일한 장소이기에 멤버들과 관객들은 목이 아프고 손이 부르트더라도 끝까지 연주하고, 끝까지 응원한다는 마음으로 함께였을 것이다. 이제 공연은 모두 끝나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밴드 루시는 여전히 그 이름을 따라 팬들 옆에서 선명히 빛나고 있다. 그리고 곧, 잠깐의 준비기간을 거쳐 다시 펼쳐질 루시의 2막, 두 번째 꽃은 더욱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다.
written by. Editor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