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깨비
허깨비
친정 식구들이 모여 둘째 언니네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남편은 언니네를 식당으로 알고 가족 사진이 왜 식당 벽에 걸려있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식당이 아니라 언니네라고 알려줬더니 그러느냐고 놀라는 눈치다.
친정 엄마는 내일 시골로 내려가시겠단다. 마지막이 될지 모를 사위 얼굴을 보러 오셨다. 자식들이 오순도순 모여있어도 속 편하실 자리가 아닐 것이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대화가 오고갔지만 다들 거기에는 의도된 부자연스러움이 있었다. 다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분위기는 사뭇 어색하고 불편했다.
남편이 허깨비 같다. 남편의 존재를 예민하게 의식하다 보면 그런 나조차도 존재하지 않은 사람 같다. 허깨비가 된 남편을 따라 허깨비가 된 기분이다. 반년 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내게도 고요가 있었고 평온이 있었다. 뜬구름 같은 소리지만.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남편의 질환이 심해질수록 죽음의 공간을 기웃거리게 된다. 이 도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구멍 뚫린 가슴으로 삭막한 바람이 오간다. 내 영혼은 불안으로 얼어붙었고 그불안으로 동사될 것만 같다. 어느 별을 사모한 적이 있었던가. 바람 따라 이리저리 부유하다가 이 한 몸 누이고 싶었을 뿐. 이토록 엄습한 불안에 시달릴 줄이야!
지금은 이 끝 모를 불안과 우울감에서 벗어나고 싶다. 남편을 잃어간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다. 살아있으나 살아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어 공허하다. 마흔 둘, 사람의 수명으로 쳐도 반평생을 지나왔는데 겨울 들판의 나목이 되지 못하고 강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밖에 되지 못했다. 흔들흔들 갈대는 언제까지 흔들릴 것인가. 아이들은 또 어찌하고.( 2011년 1월 16일 일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