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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Mar 31. 2024

간병일기 48

유한성

유한성


영하 12도.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날이 추운데도 딸아이는 제 좋아하는 컴퓨터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갔다. 이런 날씨에 학교에 간다고 나서는 아이가 대견스러웠다. 살얼음판 같은 집안 분위기에서 벗어나 아이도 활기차고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고 싶었겠지.


아침 7시 무렵 남편이 숨 쉬기가 곤란한지 숨을 몰아쉬며 딱딱 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약한 경련을 일으켰다. 정신은 그런대로 있어서 헛소리는 거의 하지 않았다. 옆에서 잠을 자던 아들 녀석이 놀라 “아빠 괜찮아요?” 물으면서 울먹인다. 어린아이치고 제법 의젓하다.


점심을 먹고 남편이 소파에서 신문을 읽고 있다. 아들 녀석과 말동무도 한다. 그걸 지켜보면서 나는 또 모진 생각을 한다. 아니 든다. 저 사람이 어느 순간 목숨 줄을 놓아버리고 저 세상으로 건너가 버린 것을. 저 사람을 볼 날도 많지 않다는 것을. 맨 정신으로는 버텨낼 재간이 없다. 우울하다. 미치기 일보 직전으로 몰고 간다. 


집에 우환이 있으니 세상도 온통 우환뿐인 것 같아 보인다. 이대로 세상도 끝날 것 같고 끝났으면 싶다. 어쩌면 바라지 않아도 끝장날 것 같다. 심신은 피곤하고, 감정의 선은 바닥을 치고, 열의는 사라졌고, 잦은 갈등이 노출되고 있다. 두려움이 커갈수록 자기보호 본능은 강해지고 생각의 크기는 콩알만큼 오그라든다. 


무엇이 남편을 구원할 수 있을까. 어떤 신적인 존재가 있어 이 무력한 영혼을 구제할 수 있을까. 인간의 유한성이 가장 인간적인 것임을 의심치 말자.(2011년 1월 17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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