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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Jun 02. 2024

간병일기 55

백만 불짜리 웃음

백만 불짜리  웃음


중환자실 면회를 갔더니 담당 간호사가 날 보자마자 아저씨 웃음이 백만 불짜리라고 한다. 어쩌면 그렇게 환하게 웃냐고, 중환자실이 다 환해진 느낌이라며 하는데 그걸 전달하는 간호사의 얼굴도 활짝 피었다. 그것은 나에게 남편이 호전되고 있다는 희망적 메세지로 읽혔다. 그는 사람을 보면 우선 웃고 보는 사람이다. 웃는 얼굴상이다. 중환자실에서도 그런 특유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닌가. 간호사의 말을 듣고 있던 남편은 조금은 쑥스러운 듯한 미소를 보였다. 자기 얘기를 하는 걸 알고 있다는 듯. 그런 모습을 보니 얼어붙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남편의 몸 상태와 표정에 따라 나의 하루 기분은 일희일비한다. 남편의 웃음을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남편 면회를 끝내고 언니 집에 있던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의 병원행으로 그동안 아이들은 아이들 큰집에서 지냈다. 나는 집에 있을 수가 없어 언니네 집에 머물며 병원을 오갔다.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어제사 큰집에서 아이들을 데려오기는 했는데 곧장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아무도 없는 현관문을 열기가 겁이 났다. 남편이 병원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남편이 집안에서 숨도 쉬지 않고 누워있을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이들이 있어 집안으로 들어설 때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수 있었다. 여러 날 집을 비운 관계로 할 일이 많았다. 오후에는 바쁜 시간을 보냈다. 청소를 하고 음식을 만들었다. 안방에 펼쳐진 남편의 잠자리를 개는데 많은 생각이 오갔다. 그는 다시는 이 잠자리에 눕지 못할 것이다. 보내야할 일만 남은 것이다. 떠나는 일만 남은 것이다. 며칠간은 안방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자야겠다.


집안일로 분주하기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쌓인 신문을 펼쳐놓고 두 아이가 사진이며 만화를 스크랩한다. 그 일은 남편이 칼과 자를 들고 신문을 펼쳐놓고 스크랩을 하면 아이들은 자기네들이 원하는 것을 아빠에게 잘라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집안 사정이 어떤지 다 알고 빈자리를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채우고 있다. 그런 아이들이 고맙고, 또 고맙다.(2011년 2월 6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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