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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Jun 03. 2024

간병일기 56

계절을 거스르면서

계절을 거스르면서


날이 포근하다. 이런 날이 몇 번씩 찾아들다가 완연한  봄으로 옷을 갈아입겠지. 세상은 봄이건만 내 마음은 얼음 밭이다. 몸에서도 마음에서도 깨진 얼음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남편의 몸도 동토를 향해 가는 중이다. 계절을 거스르면서 남편은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중환자실에서 손목이 묶인 채 인공기관을 입에 삽입하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누런 가래가 너무 끓어 호스를 넣어 빼내고 있는데 그때마다 통증으로 몸을 뒤틀고 눈가에는 눈물이 주렁주렁 달린다. 눈 뜰 힘조차 없는지 눈을 뜨지 못한다. 


남편은 제 몸이 어디에 누워 있는지 알고는 있을까. 모든 기억을 제로로 돌리고 나서야 이승과 작별을 고하게 될까. 그래, 어쩌면 저쪽 세계로 가기에는 기억조차 짐스러울지 모른다.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갖고 나오지 않았으니 떠날 때 또한 그렇게 아무 것도 지니지 않고, 육신마저 던져두고 어머니 뱃속 같은 세상으로 건너가야 하는가 보다. 


여보, 그냥 불러본다. 당신이 아직 이곳에 있다는 것을,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당신이라는 사람을 불러본다. 부른다고 당신이 대답할 리 없겠지만, 이 추락하는 마음을 막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는 심정으로, 그것마저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당신을 부르면 조금은 살아낼 것 같아서 불러본다. 언제부터 당신이 병원에 속한 사람이 되어버렸는지. 그리고 그 다음 다음은 어디인지.


당신이 가야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갔으면 좋겠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기보다는 그 순박한 웃음이 죽음과 한 몸으로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2011년 2월 8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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