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아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담배와 절연하지 못하고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아들과 금연을 약속해 놓고는 몰래 피우고 있는 것이다. 안 피운 것처럼 하려니 아들이 외출을 하거나 잠을 자고 있을 때 슬쩍슬쩍 피우고 들어오고 있다. 옷에 밴 담배내를 없애려고 담배를 피우고서는 단지내를 걷다가 들어온다. 용케 들키지 않고 잘 넘어가고 있었다. 엄마가 담배를 다시 시작한 걸 모르고 녀석은 확인차 은근슬쩍 물어온다. 엄마 담배 피우고 싶으면 피워? 끝을 잔뜩 올려 말하는 걸 봤을 때 피우라는 말이 아니다. 절대 피우지 말라는 뜻을 그렇게 반어적으로 묻고 있다. 절대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지. 손사래를 치며 절대 안 피우고 있다고 은근슬쩍 웃어넘기고 말았다. 눈치가 빠른 녀석이니 알고 있을지 모른다.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할지도. 들키지 않으면 되지 뭐, 하면서도 가슴이 뜨끔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커피를 끊지 못하듯, 담배도 그렇다. 분위기에 좌우되는 파여서 담배를 피우는 그 오롯한 순간을 즐긴다. 담배로 실속을 찾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저 버릇처럼 입에 물기도 하지만, 마음이 답답할 때 그 답답함을 뚫어주는 것도 같고 자신을 구속한 세계에서 벗어나 담배 연기처럼 날아오르는 가벼움을 맛보기도 하고 그래 피우는 거지. 피우고 나면 아찔함도 있고 노곤함이 몰려와 자신을 채우고 있는 강파름이 녹아내리는 듯도 싶다. 전에는 아파트 놀이터 구석진 벤치에 앉아서 피웠는데 이제는 나만의 아지트 같은 장소를 찾아냈다. 아파트의 울타리가 쳐진 가장자리에 벚나무며 참나무가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그 아래 길을 서성이며 피운다. 인적이 드물어 좋고, 높은 지대의 그곳에서 이웃 아파트와의 사이에 있는 공원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 한마디로 흡연 중에 방해를 받지 않아서 좋은 장소다.
남의 시선에 그리 신경 쓰지 않고 살면서도 유독 흡연에서는 신경을 쓰고 있다. 드러내놓고 담배를 피우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나름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다. 집에서 독서논술 강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고 아파트 동대표 일을 맡고 있다. 더욱이 병든 노모를 아침저녁으로 휠체어에 태워 등원시키고 있어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얼굴마다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입주하고 17년 가까이 살다 보니 같은 시기에 입주한 사람끼리 안면을 트고 있다. 아무래도 나이 드신 어른들은 여자가 흡연하는 걸 좋지 않게 여기기 때문에 구태여 흡연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것도 있다. 그리고 엄마의 건강을 걱정하는 아들의 바람을 저버릴 수 없어 아들과의 금연 약속은 어쨌든 지켜지는 것처럼 하려고 담배를 피우면서도 엄청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남편은 내 흡연에 관대한 편이었는데 아들 녀석은 그렇지가 않다. 흡연을 하면 곧 폐암에 걸려 거꾸러질 것처럼 말한다. 실은 담배 갑에 그려진 망가진 폐 사진과 어마어마한 경고성 문구가 보기 좋은 것은 아니어서 나도 별로 눈독을 들이지 않는다.
한동안은 커피 때문에 몸에 문제가 생겼다. 카페인을 과하게 마신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 골이 울리며 불쾌한 기분을 달고 살아야했다. 스스로 카페인 과다복용으로 진단하고 커피를 끊었다. 그랬더니 차차 머리도 맑아 오고 숙면을 취하게 되었다. 다시 커피를 마셔도 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커피를 마시고 있다. 아침 먹고 한 잔만 마시기로 했다가 점심 먹고도 찾게 되었고 가끔은 늦은 오후에도 마시게 되었다. 커피를 마셔도 정신은 맑아 오지 않고 배만 불러 졸립기까지 하다. 카페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으니 조만간 다시 커피를 끊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끊었다 말았다하는 것은 커피나 담배나 마찬가지다.
도둑 담배를 피우다가 꼬리가 길었는지, 결국 아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피우지 않기로 저와 약속을 해놓고 담배를 피우는 걸 알게 된 아들은 처음에는 시치미를 떼며 운을 뗐다. 헬쓰를 끝내고 집으로 들어갔더니 아이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엄마 담배 안 피우지? 하며 묻는데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 추궁하는 것인가? 속으로는 뜨끔하면서 그럼!을 길게 빼고 대답해놓고, 말을 돌리려고 밥 먹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녀석이 왜 말을 돌리느냐며 내 얼굴 앞으로 제 얼굴을 들이밀고서는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엄마 왜 거짓말을 해? 엄마가 담배 피운 것을 다 봤다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 그 순간을 어떻게든 무마시켜보려고 어디서 봤냐고 되려 물었다. 녀석이 나를 봤을 리가 없다. 내가 담배를 피운 곳은 어두컴컴하면 사람을 알아보기 쉽지 않다. 그런데 아이는 엄마가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우는 걸 끝까지 지켜보고 집으로 돌아선 모양이었다. 아이는 외출하면 늘 밤 10시가 넘어 돌아오기 마련인데 그날도 그러리라 여겼다. 그런데 내가 헬쓰장을 가면서 담배를 한 대 태우려고 했던 그 시간, 7시 30분쯤에 아이는 귀가길이었고 공교롭게 엄마의 뒷모습을 알아보고 뒤따랐던 모양이다. 헬쓰장 가는 엄마가 왜 저기로 가나 이상하게 여기며 엄마 뒤를 밟았고 결국 나는 꼬리가 잡히고 말았던 것이다. 아이가 다시 물었다. 담배를 왜 피우냐고. 나는 아들과 약속을 어긴 것이 멋쩍어 응, 담배를 피우면서 하늘 한 번 올려다 보며 별도 보고 바람도 느끼고 어둠과 친구도 하고 그래, 했더니 우리 엄마 시인났네 하며 조금은 누그러졌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해도 이제는 믿지를 못하겠다고 큰소리를 치던 아이가 다음날로 내가 좋아하는 하리보 젤리를 보따리로 사 왔다. 담배값보다 젤리값이 더 나가겠네라는 내 말에 아이는 그래서 담배를 피우겠다는 거냐며 따지듯 묻고 내게서 다시 한 번 단단히 금연의 약속을 받아냈다. 날마다 이렇게 젤리를 질겅질겅 씹어대다가는 조만간 담배를 찾을 날이 올 것만 같다. 아들아, 엄마의 건강을 걱정하는 네 마음은 하늘의 별처럼 엄마 가슴에 꼭 매달아 놓으마. 약속을 저버리더라도 엄마를 용서해라. 약속은 지키기보다는 깨기 위해 있는 거라고 하지 않더냐.(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