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고양이는 나만 따라해

고양이는 나만 따라해

by 인상파

고양이는 나만 따라해, 권윤덕글과 그림, 창비


고양이는 나만 따라해


고: 고양이가 우리 집에 오고부터

양: 양양 울면 기분이 나풀거리고

이: 이빨을 드러내면 심장이 쫄깃

는: 는적는적 기분이 처질 때

나: 나의 코를 고양이털에 콕 박으면

만: 만지니 간지럽다고 발라당 드러눕고

따: 따라하면 잡아보란 듯 달아나고

라: 라면처럼 꼬들꼬들한 수염

해: 햇살 머금어 졸음기 가득


따라하다가, 마음이 닿다

<고양이는 나만 따라해>는 고양이가 아이를 따라하다가 어느 순간 아이가 고양이를 따라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집 안에서만 지내던 아이는 고양이와 함께 바깥세상으로 나아가고, 숨거나 관찰하던 수동적인 태도는 점점 적극적인 모험으로 바뀌지요. 인상적인 장면은 고양이 눈에 아이 얼굴이 비치는 부분입니다. 그 눈은 꼭 우물처럼 보여서, 아이가 우물 속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 시점이 아마도, 아이가 고양이를 따라 낯선 바깥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는 전환점이겠지요. 고양이의 눈이 거울이 되어 아이를 비추는 순간 아이는 새로운 자기를 발견하게 되었을 테니까요.


이 책을 읽다 보니 우리 집 고양이 '뭉크'가 처음 온 날이 떠올랐습니다. 딸아이가 끈질게 졸라서 마지못해 입양을 허락했지만, 책임은 고스란히 제 몫이 되었죠. 뭉크가 와도 저는 한동안 무덤덤했어요. 털 날림이며 사료 냄새며, 그런 것들에 예민하게 굴며 당사자인 딸아이를 타박하면서요. 그런데 어느 늦은 밤 살짝 열린 안방 문을 밀고 들어온 뭉크가 자는 척하던 제 어깨를 앞발로 툭툭 건드리더니 품에 쏙 안겨왔습니다. 팔 안쪽에 앞발을 얹고 조그만 몸을 말아 웅크린 모습은 영락없는 갓난아기였지요. 그 순간 문득 알게 되었지요. 녀석도 엄마 품이 그리운 거구나. 그날 밤 우리 아이들 어릴 때처럼 자장가를 흥얼거리며 뭉크의 등을 토닥였고 그 이후 우리 관계는 상상 이상으로 달라졌습니다.

<고양이는 나만 따라해>는 그래서 저에게 단순한 모방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고양이가 돼서 네발로 기어보고, 먹이를 맛보고, 털을 핥는 그루밍을 흉내 내며 서로의 감각을 닮아가는 과정. 누군가를 따라 한다는 건 그를 사랑하고 닮고 싶다는 뜻이고, 결국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니까요. 뭉크가 우리 집에 온 뒤, 딸아이도, 저도 조금씩 달라졌던 것처럼요. 이 그림책은 그런 변화의 순간을, ‘따라하다가, 마음이 닿는’ 그 순간을 리얼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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