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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67

그를 마중 나간 밤길

by 인상파

백제 가요 〈정읍사〉


그를 마중 나간 밤길


그를 마중 나간 밤길이다. 한 여인의 기다림이 달빛 아래 펼쳐진다. 〈정읍사〉, 백제의 노래.

아마 이 노래 속 부부는 금실이 좋았을 것이다. 그러니 오지 않은 남편을 집안에서 가만히 앉아 기다리지 못하고, 동구 밖 먼 곳까지 마중을 나갔던 것이리라.

밤길이라 겁도 잔뜩 먹은 채, 오로지 남편의 무사 귀가만을 바라며 밤하늘의 달님을 향해 기도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기다려 본 사람은 안다. 온다는 사람이 제때 오지 않으면 갖은 잡념과 상상으로 얼마나 애를 태우게 되는지를.

혹시 사고가 난 건 아닐까, 길이 엇갈린 것은 아닐까, 아내가 기다리는 것도 모르고 사람들과 어울리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건 아닐까.

혹은, 혹시 몰래 만난 여자가 있는 건 아닐까.

불안과 걱정에 싸여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에도 귀를 쫑긋 세우고,

먼 데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에도 혹여 남편인가 하고 마음을 두근거리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을 것이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마음 둘 곳이 없어지면, 사람은 결국 하늘을 올려다본다.

떠오른 달에 의탁하여, 그녀는 속삭이듯 간절히 기원했을 것이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데를 드데올세라.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는 데 졈그랄세라.


그 기도 속에는 사랑과 기다림뿐 아니라 불안과 질투까지 함께 깃들어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작품 속 백제의 여인은 결국 행복한 결말에 닿은 사람처럼 보인다.

아내의 간절한 기도로 그 밤 남편은 무사히 돌아왔을 것만 같다.

하루 행상을 마치고 밤늦게 귀가하던 남편은 길 위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해, 그는 자연스레 발걸음을 재촉했을 것이다.


멀리서 남편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는 순간,

아내의 마음을 잠식하던 불안과 의심은 말끔히 사라졌을 것이다.

남편이 사지에서 돌아오기라도 한 듯, 아내는 한달음에 달려 나갔을 것이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마음으로 그를 단단히 껴안으며, 그제야 기다림의 고단함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그 밤의 달빛은 결국 사랑이 돌아오는 길을 비춘 셈이었다.


그렇게 〈정읍사〉는

내게 기다림으로 시작해, 돌아온 사랑으로 닿은 한밤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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