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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68

그를 위대하게 만든 건 단 한 사람의 이해였다

by 인상파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그를 위대하게 만든 건 단 한 사람의 이해였다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미국 재즈 시대, 대공황 직전 자본주의의 허상이 꿈처럼 부풀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처음 읽었을 때는 문화적 감수성의 차이 때문인지 작품 속 세계에 온전히 빠져들지 못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도 홀든의 형인 영화감독이 극찬한 소설로 언급되고 있어, 이미 자리 잡은 명성에 내가 먼저 눌렸던 탓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 읽으며 이번에는 작품 첫머리의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닉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조언이다.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해라.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이 말은 단순한 훈계가 아니라, <어린 왕자>가 말한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메시지와도 닮아있다. 타인을 판단할 때 필요한 근본적 관점,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보라는 태도. 닉이 개츠비를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 그 관점이 내게도 파고들었다.


겉으로만 보면 개츠비는 허세와 과장, 꾸며낸 과거, 이해할 수 없는 집착으로 이루어진 인물이다. 하지만 정작 그토록 그리던 데이지를 닉의 집에서 마주한 순간, 그는 그 만남을 ‘지독한 실수’라고 중얼거린다. 사랑의 실상과 허상의 간극을 이미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집착을 끝내 놓지 못한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환영을 향해 돌진하다가 그 길 위에서 쓰러진 사람. 그런 개츠비를 닉의 배려와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나 또한 어느 지점에서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개츠비는 누구에게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 채 데이지 집에서 흘러나오는 초록빛 불빛을 바라보던 고독한 사람이었다. 자기 집에서 파티를 열어도 주인이 되지 못했던 사람. 허망한 꿈에 인생 전체를 걸고, 부정한 방법으로 벼락부자가 되어 운명을 비틀어버린 사람. 실체가 아니라 허상을 사랑하다 끝내 그 허상에 의해 죽음에 이른 사람. 살아 있을 때는 그의 돈을 소비하던 사람들이 넘쳐났지만, 그의 장례식장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세상은 그의 부를 사랑했고, 그의 꿈을 소비했고, 그의 파티를 즐겼을 뿐이다. 정작 그를 사랑해준 사람은 없었다. 그의 죽음조차 비참하게 소비되고 말았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사람마다 다른 결핍 때문에 어떻게 사랑하고 환상을 만들며, 그 환상에 부딪혀 어떻게 무너지는지가 보인다. 개츠비의 결핍과 외로움, 채워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갈망이 만들어낸 비극은 결국 인간적인 비극이다. 과거의 한순간에 인생 전체를 걸어버리고, 부질없는 초록불 빛의 환영을 좇다가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해버렸다.


이해하게 될수록, 나는 그의 무모함과 집착에서 이상한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개츠비의 행동이 꿈을 포기하지 않은 열정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불교적 시선에서 보면 그것은 집착이며, 그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을 자초한 삶이기도 하다. 데이지는 개츠비가 마음속에 그려낸 허상일 뿐, 현실의 데이지는 그의 꿈을 지탱할 만큼 단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사랑을 평생 붙들고 있다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가장 큰 고통의 근원인 ‘무지’의 소산에 가깝다.


그렇다면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는 반어일까? 처음에는 그렇게 느껴졌지만, 닉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답은 조금 달라진다. 개츠비의 위대함은 꿈의 크기나 환상의 순수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 허상을 위해 인생을 태워버린 열정에서도 오지 않는다. 개츠비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단 한 사람의 진심을 얻었다. 그 한 사람의 이해가 그의 삶을 구원했다.


닉은 개츠비의 고독, 허망한 꿈, 이루지 못한 사랑을 단순한 실패로 보지 않았다. 닉의 이해 속에서 개츠비의 삶은 비로소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세상은 그의 파티만 소비했고, 그의 죽음 앞에서 등을 돌렸지만, 닉은 끝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닉의 마음 속에서 개츠비는 조롱의 대상도, 실패한 인생도 아니다. 자기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아낸 한 인간으로 남는다.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 그의 순수함이 유일하게 닉에게만은 온전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츠비의 삶이 허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단 한 사람에게 깊이 이해받았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한 인간의 삶은 온전히 구원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삶을 빛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이룬 꿈도, 지켜낸 사랑도 아닌, 단 한 사람의 진정한 이해인지도 모른다.


개츠비는 사랑에서 실패했을지 모르지만, 이해받는 인간으로는 실패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삶은 위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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