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처럼 떠돌고 싶었던 마음
박목월의 <나그네>
나그네처럼 떠돌고 싶었던 마음
몇 해 전 가을밤이었다. 바람이 불어 구름의 움직임이 또렷이 보이던 날이었다. 구름 낀 달빛은 그리 밝지 않았지만 달 위로 구름이 미끄러져 가는 모습만은 분명했다. 달은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고, 그 달을 배경 삼아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순간 박목월의 <나그네>의 시 한 구절, ‘구름에 달 가듯이’가 문득 떠올랐다.
그 표현은 내가 목격한 광경과 맞지 않았다. 문제적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자연현상으로 봐도 달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구름이 움직이는 것이 맞다. 그래서 한편으로 이 시구가 오류인지, 혹은 시인이 의도적으로 뒤집어놓은 이미지인지 고개가 갸웃해졌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어긋남 속에 시의 호흡이 있었다. 떠돌고 싶을 때 흔히 스스로를 구름에 빗대곤 하듯, 시인은 구름이 아닌 달을 떠가는 존재로 만들어 나그네의 정서를 이입하고 있었으리라.
‘구름에 달 가듯이’는 ‘달에 구름 가듯이’보다 훨씬 더 깊은 시적 울림을 남긴다. 자연이 아니라 정서를 중심에 놓아 움직임의 주체를 달로 옮겨놓았을 때, 나그네의 고독이 더 선명해진다. 특히 “가는”의 주체가 나그네라는 점에 착안하면, 달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나그네의 삶을 비추는 상징이 된다. 구름에 기대어 흘러가는 듯 보이는 달처럼, 나그네 역시 그 어디에도 붙박이지 못한 채 잠시 세상에 기대어 지나가는 존재와 닮아있다.
현실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 시는, 그래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조용히 읊조리게 된다. 세상일 따위는 훌훌 털어버리고 나그네가 되어 길을 나서고 싶어지는 것이다. 강나루를 건너 밀밭 길로 접어드는 순간 펼쳐지는 것은 생활감이 없는 그저 풍경이다.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동적으로 보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스쳐 지나가면서 머물 의지도 없고, 붙잡힐 이유도 없는 존재가 되어 목적 없는 길 위를 떠도는 사람. 어느 주막에 들러 막걸리 한 잔 걸치고는 다시 어디론가 흘러가는, 목적이 없는 것이 목적이 되는 삶.
이 시에는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 지훈에게’라는 부제가 붙는다. 조지훈의 〈완화삼〉에 화답하는 시로, 박목월은 지훈의 시에서 가져온 이미지—구름 흘러가는 물길, 나그네의 긴 소매, 술 익는 마을, 저녁 노을—를 자신의 단아하고 절제된 서정 속에다 다시 배치했다. 흥미롭게도 〈완화삼〉은 덜 알려졌지만, 〈나그네〉는 교과서에 실린 덕분에 대부분의 한국인이 알고 있는 시가 되었다. 그러나 그 단정한 시 뒤에는 두 시인이 주고받은 감응, 말보다 이미지로 나눈 우정이 숨어 있다.
나이 차이가 있었음에도 막역지우였던 그들은 서로의 언어를 알아보고 시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돈독히 쌓아갔으니 참으로 멋스러운 관계가 아닐 수 없다. 세상과의 거리를 잠시 잊게 해주는, 오직 시로 이어진 동행. 어린 마음에도 언젠가 그런 깊이를 지닌 사람이 되어, 그런 친구를 만나 시를 주고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곁에 둘 수 있기를 소망했다. 다 지나간 어릴 적 한때의 부질없는,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의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