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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Mar 24. 2024

간병일기 41

선배와 절 운동

선배와 절 운동


남편이 아들과 묵찌빠를 한다. 둘 다 지지 않으려고 머리를 엄청 쓴다. 보고 있으니 아이와 잘 놀아주는아빠 모습이다. 아들 녀석과 한참을 놀던 남편이 어머님 생각이 났는지 어디 있냐고 묻는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지금껏 함께 지내시다가 어제 본댁으로 돌아가셨다. 남편이 못 믿는 눈치를 하니 아들 녀석이 엄마 말 못 믿겠으면 할머니네 직접 전화를 걸어보면 될 거 아니냐고 방법을 알려준다. 어머님에 대한 관심은 거기까지였는지 아들 녀석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더는 어머님을 찾지 않는다. 나는 아들 녀석이랑 이제 바둑을 둬보시지 그러냐고 넌지시 바둑 얘기를 꺼냈다. 그랬더니 남편 왈, 자기는 바둑이 정말 싫다며 정색을 한다.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남편은 오늘 아침 10시쯤 일어나 요구르트와 눌은밥을 먹었다. 아침에는 입맛이 없는지 간단하게 달라고 한다. 그렇다고 다른 끼니를 먹성 좋게 먹는 것은 아니지만. 식사 도중에 원주에 있는 남편의 군대 선배 장상헌 씨가 방문했다. 한때 아이들을 데리고 원주에 있는 그분 집을 방문하여 후한 대접을 받은 적이 있는데 고맙게도 이번에는 아픈 남편을 위해 집까지 찾아주셨다. 그분은 친척 문병 가는 길에 잠깐 들렀다며 아버님이 지하 주차장 차안에 계신다며 일찍 자리를 떴다. 남편은 그분과 군대 이야기를 했다. 어제나 되듯 남편의 군대 시절 기억은 제법 생생하고 정확했다. 남편은 그분과 얘기가 많은지 말을 많이 했고 그분이 자리를 뜨는 것을 몹시 섭섭해 했다.


아이들과 절 운동을 시작한 지 2주가 됐다. 절 운동이란 것은 별 게 아니다. 차례 상 앞에서 절을 하는 것처럼 그냥 요 위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보는 것이다. 집에만 있으니 운동이 부족하여 방법을 찾다가 절이 꽤나 운동에 도움을 준다는 말을 들어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절 운동은 장난이고 놀이다. 큰아이는 절운동 하는 게 싫은지  입이 한 자는 나왔다. 둘째는 엎드리면서 끊임없이 재잘거린다. 나는 절을 하면서 아이들을 둘러보고 아이의 말에 대꾸하느라 숨이 찼다.


남편은 우리들이 헉헉대며 절 운동하는 것을 열린 문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아이들이 장난식으로 하니까 똑바로 하라고 소리를 높였다. 남편은 한참 우리를 지켜보다가 왜 그렇게 쓸데없는 짓을 하냐는 듯이 묻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운동 삼아 같이 하자고 권했더니 싫다며 거실로 나가버렸다.


걱정과 불안의 나날이다. 영혼이 죽어버린 것 같다. 불안한 마음이 독이 돼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그대로 묻어나고 있다. 감정적으로 행동해서는 안되는데. 무릎을 꿇으며 스스로를 낮추면서 겸손하고 겸허해지기를. 세상과 이 알 수 없는 인생이 조금은 해독이 되기를 바라본다.(2011년 1월 8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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