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vs 미국 교육]
OECD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 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결과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에 초등학생 아이들이 자기 몸뚱어리만한 책가방들을 하나씩 매고 학원 차를 기다리는 모습은 언제부턴가 굉장히 익숙한 풍경이다. 시설은 더 좋아졌지만 텅 빈 놀이터와 줄어드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 반면, 지친 아이들로 꽉꽉 채워져 있는 수많은 학원 빌딩들과 매년 수능 이후에 뉴스에 나오는 학생들의 자살 소식들.
이렇듯, 프랑스 신문 <르몽드>는 한국 아이들을 성적은 우수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학생들로, 한국의 교육시스템을 “세상에서 가장 경쟁적이고 고통스러운 교육“으로 표현했다. 또한, 위에 그림에서 나타났듯이 2000년도부터 3년마다 전 세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OECD 학업성취도 평가에서도 한국학생들은 매번 문제 풀이에 있어선 뛰어난 성적을 내지만 학교에서의 행복도는 최하위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무엇이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쓸데없는 문제풀이 및 입시위주의 공부에 반납하고, 가족과 친구들과 추억을 쌓으며 보내야 할 한정된 시간을 희생하게 만드는 건가?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과 밖에서 뛰어 놀면서 ‘대인관계’와 Teamwork을 익히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가족애와 기본 예의범절, 그리고 성숙한 정식적 자아를 배우는 것이 정말 필요한 교육이 아닐까?
한국과 미국에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각각 다녀봐서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얼마나 아이들을 획일화 시키고 행복과 학업에 대한 열정을 빼앗아 가는지 몸소 체험한 나로서는 나의 아이들을 이러한 교육 환경 속에 보낼 생각만 해도 눈 앞이 캄캄하다. 물론 미국 교육도 문제가 굉장히 많다. 하지만, 적어도 획일적인 선상에서 전국의 모든 아이들을 줄 세우는 한국 교육보다는 덜 불행하고 자립적으로 생각 할 수 있는 아이들을 양성한다고 확신한다.
우리나라 교육을 대표하는 ‘입시위주 교육’과 ‘주입식 교육’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교육은 각 학생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적성과 흥미를 찾아가는 과정이기 보다는 획일적인 잣대로 대학교 입학을 위한 시험성적 만들기를 최고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러한 획일화된 교육은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물론, 본인의 장단점과 적성에 대해 고민할 기회와 다양한 재능을 발견할 기회를 박탈한다.
수능 위주의 대규모의 학생들의 석차를 매기기 간편하도록 시험은 한가지 ‘정답’만이 있는 객관식으로, 그리고 시험에 비중 있는 과목들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머지 비주류 과목들은 괄시를 받고 각 개인의 적성은 무시된다. 몇 가지 분야에서 굉장히 뛰어난 아이일 지라도 도태되기 쉬우며, 수동적으로 잘 외우고 수능에서 비중이 있는 과목에 대한 시험을 잘 보는 학생들이 성공하는 시스템이다.
또한, 0교시, 자율학습 등으로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교실에 붙잡다 두고 석차를 매기면서 경쟁을 시키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내가 생각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점인 인내심과 성실함을 채득하도록 한다. 하지만 이것은 요즘 시대에서 가장 필요한 창의성과 자율성을 배양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미국의 교육 역시 당연히 문제점이 많다. 좋지 않은 동네의 미국 공립학교들은 한국학교와 비교해서 선생님들의 질, 학생과 부모님의 학업에 대한 관심, 교육 시설 등에서 크게 뒤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단편적인 것들 보다는 총체적인 교육 시스템이다. 그리고 교육 시스템 자체는 한국보다는 미국이 훨씬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한국 교육은 너무 어린 나이부터 치열한 경쟁을 하게 만들고, 학원과 각종 시험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공부 외에 다른 것을 할 시간적 여유도 차단한다. 이것이 고3때 정점을 찍는다. 한국 사람이라면 고3이라는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학업에 찌들어서 잠도 몇 시간 못 자는 ‘불쌍한’ 학생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가? 심지어 ‘3당4락’이라는 3시간 자면 붙고 4시간 자면 대학에 떨어진다는 속설까지 나돈다.
반면, 초등학교는 공립학교를, 고등학교는 Boarding School이라는 기숙사 있는 사립학교에서 다닌 나의 경험으로 보자면, 미국의 교육은 좋은 성적만이 전부가 아니고 학생들의 균형 잡힌 생활과 행복을 더욱 중요시 하였다.
우선 미국에서는 학원이라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Princeton Review 등 SAT(미국 대학입학시험) 몇몇 Academy들이 존재하긴 하나, 한국처럼 보편화 되지 않았으며, 초등학교는 물론, 고등학교 때에도 이러한 Academy에 다니는 미국 친구를 본 기억도 없다. 물론, 방과 후 자율학습도 없고, 한국보다 더 일찍 학교가 끝나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 또는 본인이 좋아하는 활동(스포츠, 낚시, 봉사활동 등)을 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다.
한국의 학생들이 ‘지옥’을 경험하고 있을 고3(Senior) 시절은 내가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가장 ‘건강’하게 살았던 1년이었던 것 같다. 예로, 내가 아는 모든 미국의 기숙사 불은 10:30분 정도에 다 꺼야 한다.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밤 늦게 까지 불을 켜 놓고 싶어도 11:30 정도까지만 연장이 가능했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서 하던지, 테이프와 수건으로 방문과 창문에서 새 나가는 불빛을 다 막고 공부를 해야 했다. 이렇게 하다 들켜서 다음날 징계를 받았던 기억이 미국 Boarding School를 다닌 한국 학생이라면 한번씩은 있을 거다.
“고3이 공부를 하고 싶어 해도 12시 전에 불을 다 끄게 해? 심지어 늦게 까지 공부한다고 징계를 줘?” 한국사람이라면 이해하기 굉장히 힘든 일이지만 사실이다. 우리 누나가 고등학교 때 한국에서 기숙사 학교를 다녀서 잘 알지만, 한국의 고등학교 기숙사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기도 하다. 이렇듯 미국 교육은 당장의 성적보다는 그 나이 대에 더 필요한 것이 충분한 수면 시간과 학생들의 건강이라는 것을 시스템 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은 획일적이고 ‘정답’이 정해진 주입식 교육이라면 미국은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 본인의 적성과 흥미를 탐구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었다. 우선, 한국의 고등학교에서는 10개 이상의 과목을 모든 학생들이 동일하게 수강해야 하는 것에 비해, 미국에서는 내가 흥미가 있는 과목 4~5만 들으면 되었다. 또한, 시험 보는 방식도 굉장히 다르다.
한국은 동일한 지식을 암기하고 이를 객관식 중심의 시험을 봐서 성적을 매긴다. 하지만, 미국은 대부분의 시험이 Blue Book(빈 노트)을 이용해 문제를 풀거나 나의 주장을 나열하는 주관식이던가, 리포트를 작성하는 식이다. 예를 들자면, 한국의 역사 교육은 몇 년도에 XX가 일어났냐? XX를 한 사람은 누구인가? 등의 객관식 시험 위주라면, 미국은 1900~1950년에 있었던 Event 중에 가장 흥미로운 주제를 정해서 10장 이상, 책 5권 이상 인용을 하여 본인의 주장(Point of view)를 담은 리포트를 제출하는 식이다. 즉, 같은 수업을 듣더라도 전혀 다른 주제를 정하거나 반대의 주장을 하더라도 만점을 받을 수 있는 형식이다.
이렇듯, 눈앞의 문제풀이를 위한 한국의 암기위주의 주입식 교육 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장점을 잘 활용하도록 하는 미국식 교육 시스템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식의 교육 시스템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미국의 최고의 학교에 입학하더라도 적응을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교포인 김승기씨의 컬럼비아대 박사학위 논문 <한인 명문대생 연구>에 의하면 1985∼2007년 하버드, 예일, 컬럼비아, 스탠퍼드 등 14개 명문대에 입학한 한인 학생들의 중퇴율이 44%로, 미국 학생들의 평균(34%)보다 10%나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참고로, 같은 소수민족인 유대인(12.5%), 인도인(21.5%), 중국인(25%)의 중퇴율은 한인 학생보다 크게 낮았다.
김승기씨는 그 이유를 “부모들의 지나친 입시 위주의 교육 방식이 한인 학생들이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게 되는 주된 이유이며, 이는 학교생활과 미국 사회 진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논문에서 주장하였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해줬던 명 대사다. 많은 사람이 좌우명으로 삼을 정도로 유명한 이 대사는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순간에 충실 하라” 는 뜻의 라틴어에서 나왔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교육은 정 반대로 향하고 있다. 언제 올지도 모를 미래에 행복하기 위해서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은 당연히 희생해야 성공한다고 배우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게 학창 시절의 행복을 희생해서 얻은 것이 있나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공부에 대한 열정과 투자는 세계 최고이지만, 노벨상 수상자(노벨 평화상 제외) 하나 없고, 매번 행복도 조사에서 최하위의 성적과 가장 높은 자살률로 충분히 결과는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공부는 자신을 찾아가는 수단이고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본인이 무엇을 할때 가장 행복한지, 향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기어를 하고 가치를 창출할지 탐구하는 시간과 자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러한 시간과 자유는 한국의 부모들부터 아이들에게 학원과 무의미한 경쟁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할 용기와 뚜렷한 가치관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한국사람들의 획일적인 잣대에서 벗어나 당장 오늘의 행복을 만끽할 줄 알고, 본인의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격려해야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 中 키팅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기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뭐라 비웃든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