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티 Apr 16. 2024

Prologue. 내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된다면

집필의도 | 프롤로그 작성해 보기

스무 살 때부터 해외에 나가고 싶었고, 특히 오래 머물 수 있는 워킹 홀리데이를 가고 싶었다. 워홀의 나이제한 만 30세, 서른 전에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두 번의 직장 생활 모두 1년을 넘기지 못하고 퇴사했기 때문에 '내 성격이 사회생활을 못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자괴감이 들었다.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코로나 기간과 겹쳐 꽤나 오래 비자발적 백수 생활을 했다.


 그러고 나서 얻은 세 번째 직장, 그동안 했던 고민들이 무색할 만큼 회사가 좋아서 주말에도 회사에 운동하러 책을 읽으러 나갔고, 가끔 마주치는 회사 대표님, 영업팀 부장님은 늘 부담스럽지 않고 좋았다. (사실 대표님은 늘 편하게 대해주셨지만, '대표'라는 직책에 조금 어려웠다.)


 그만큼 회사가 좋았고, 팀장님은 나의 롤 모델이었다. 아마도 회사가 망하거나 내가 회사에 큰 손실을 입히지 않는 이상 꽤나 안정적으로 지속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워킹홀리데이든, 여행이든 가려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이 회사를 나가면 이런 환경의 회사를 또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불안했다. 그래서 꽤나 오랜 시간 고민을 했다. 고심 끝에 나온 결론은,


'안정적인 삶보다 모험적인 삶을 살고 싶다.'
'한국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떠나 더 넓은 세상과 다양한 삶을 마주하고 싶었다.'


 이전에 해외 어학연수를 하며 행복을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영어로 말을 하던 중 문득 하고 싶은 말을 어느샌가 뇌에서 한국어 -> 영어로 번역하지 않고 바로 나왔을 때였다. 그건 참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영어 이외의 다른 언어에도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도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다른 나라의 언어로 소통이 될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해외에 나가고 싶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 애들은 회사 오래 못 다니고 쉽게 그만둔다고.


 아마 직장을 열심히 다니는 훌륭하신 분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시선에 나는 철없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인생으로 비칠 것이 사실 두렵기도 했다. 마치 그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정규 코스 (대학> 취업> 결혼> 육아)에서 벗어난 돌연변이 혹은 못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인생에서 한 직장을 꾸준히 다닌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남들의 시선은 한순간이니, 이것저것 원하는 것들 다 해보면서 살고자 마음먹었다.


그래서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이 스페인어 기초를 공부하며, 남미 여행을 준비했다.


 어떠한 선택을 하기 전, 이후 벌어질 최악의 상황을 먼저 고려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처음 남미를 가기 전 최악의 시나리오는 내가 여행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시체도 못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 대비해 사망보험금이 최대한 높은 여행자 보험을 알아봤다. 혹여나 죽으면 가족들에게 보험금이라도 전달되도록 말이다.


 지금에서야 농담처럼 얘기하지만 가기 전엔 정말 무서웠다. 왜냐하면 남미의 사건사고들을 보면 상상 그 이상이 많았다. 버스에 무장강도가 침입하여 돈과 휴대폰, 배낭을 가져가버린다던가. 권총 강도, 납치, 마약 문제 등등 꽤나 중범죄 비율이 높아서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캐리어에 주짓수 도복을 챙기며, 어쩌면 여행하다가 객사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1년짜리 나 홀로 남미 주짓수 여행'을 출발했다.

작가의 이전글 아르헨티나에서만 주짓수를 하지 못 했던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