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티 Apr 18. 2024

콜롬비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주짓수의 매력

30시간이 넘는 비행을 하고 인천으로 새벽에 도착했다. 귀국하고 짐을 풀기도 전에 제일 먼저 갔던 곳은 병원이었다. 그동안 운동하며 다쳤던 이곳저곳들이 제대로 검사를 받지 않아 이제는 치료가 필요했다. 병원에서 대기하며 긴장된 마음으로 '별일이 아니기를, 수술까지 가지 않기를' 바랐다.


 발목, 손가락, 발가락 총 3곳을 엑스레이 찍고 검사를 받았다. 손가락은 mri를 찍어봐야 알 수 있다고 했고, 발목은 수술이 필요할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막막했지만 수술을 위해 가까운 대학병원을 알아보았다.


 발목 엑스레이 및 mri 촬영을 하고, 한 달 뒤 수술 일정을 받았다. 약 2년간 주짓수를 하며 정말 많이 다쳤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정형외과를 내 집 드나들듯 어깨, 무릎, 발목, 손가락 총 4번의 mri 촬영을 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만한 부상을 당하면, 이 운동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마련인데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주짓수만의 매력이 있다. 이는 주짓수를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성적인 사람도 한 가지 운동에 이렇게 푹 빠져 다친 것도 즐기는 지경이 이르렀으니, 더 일찍 이 운동을 접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엄지 손가락 골절 및 인대 부분 파열

 의사 선생님과 진료를 받으면서 또는 주변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항상 묻는 말이 있다.


그렇게 다치는데 또 할 거야?


 어떤 한 의사 선생님은 마치 나 같은 환자를 많이 만났다는 듯이 "치료받으면서 계속 운동할 거잖아요. 그렇죠?"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계속하고 싶다'는 말을 진료실에서 할 수 없어 그저 어색한 웃음만 지어 보였다.


 주짓수 스파링을 마음껏 즐긴 뒤, 다리가 아파서 보면 정강이에 시퍼런 멍이 군데군데 최소 10개는 넘은 적은 흔한 일이고, 이렇게 오래 쉬어야 하는 부상을 당하기도 한다. 멍이 한참 많이 들었을 때, 관장님이 내게 별명을 지어주셨다. '달마시안'이라고. 이외에도 내게 '혼자 무에타이 배우러 다니냐'는 농담도 듣곤 했다.


 관절이나 연골, 인대를 심하게 다치면 본래 기능의 100%를 발휘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수술 이후에는 예전 같은 퍼포먼스가 나오기 어렵다. 젊었을 때는 이를 악물고 버틸 수 있다지만, 근성으로 버티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몸을 갈아 넣으면서도 행복하다면, 그것을 지속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나는, 이런 수많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을 하며 느끼는 행복이 더 크기 때문에 이렇게 태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기도 한다.


발목 수술 후


 안 다치는 운동하는 것이 제일 좋다. 하지만 다른 운동에 이렇게 흥미를 느껴본 적이 없다. 다른 운동을 했을 때에는 건강을 위해 '중. 고강도 운동을 1주일에 3~4회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듣고, 그저 그 시간과 횟수를 채우는 수단에 불과했다.


 나중에 정말 더 크게 다치면 멈출 수 있을까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는 포기할 생각이 없다. 체육관에 다니다 보면, 큰 부상으로 운동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분들도 보고, 장기간 재활을 하는 관원들도 있다. 모두 다른 선택을 하지만 이 또한 본인의 행복을 따라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번외>

진통제

이상하게도 어렸을 적부터 고통을 참는 것을 잘한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수술 직후 통증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 통증에 머리가 깨질 듯이 어지러웠으나, 이 또한 지나갈 것이고 이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심하게 아프면 누르라는 마약성 진통제 자가 투여하는 버튼도 주고 가셨다. 누르면 2.0ml가 나오고, 누르지 않아도 시간당 1ml이 나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누르지 않고 버틸 생각이었다. 그래서 저녁에 자기 전 간호사님들이 점검해 주실 때, 쿨한 척 버틸만하다고 진통제를 빼달라고 요청했다. 한 번은 말려주실 줄 알았는데 흔쾌히 바로 진통제 링거를 빼주셨다.


 고통을 온전히 느끼며, 수술 부위가 욱신거렸지만 어떻게든 이겨냈다. 당시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벌써 기억도 희미해졌다. 육체적 고통은 순간뿐이라는 걸 다시 한번 되새기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Prologue. 내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된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