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이 든 건, 여행 중간쯤이었다. 블로그를 통해 여행기를 꾸준히 작성하고 있었지만, 2% 부족한 느낌이었다. 내 이야기를 조금 더 솔직하게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조금씩 준비해오게 되었다.
그러던 중 문득 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 왜 중남미였을까? 남들은 위험하다고 가고 싶어하지 않는 곳인데, 나는 왜 그렇게 가고 싶어했을까.
그 계기는 정말 사소했다. 한 유튜버 덕분인데, 스페인어와 관련된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다. 그 유튜버를 구독한지는 4년 정도 되었다. 그때 당시 정확히 구독자 수가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영상을 몇 개 보고난 후, 이 사람은 무조건 뜰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확신했다.
코미꼬 (Comicoreano)라는 채널인데, 현재는 100만 구독자가 넘어 대성한 코미디언이다. 그 덕분에 스페인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틈틈히 직장을 다니면서도 인강을 결제해 스페인어를 공부하며 중남미 여행을 준비했다. 언제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때는 그저 너무 멋있어 보였다. 롤모델로 정하고, 그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직장 생활이 불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회사가 좋아서 주말에도 나가서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일도 가끔하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종종 마주치는 대표님이나 이사님, 부장님은 늘 나를 편하게 대해주셔서 참 감사한 분들이었다.
하지만 중남미를 간다면, 여름휴가를 내서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최소 몇 달의 기간이 필요했고, 꽤나 안정적인 직장과 여행, 그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민했다. 만족스러운 팀원들과 팀장님은 직장 내 나의 롤 모델이었고, 적당한 월급 그리고 퇴근 후 좋아하는 운동하러 다닐 수 있는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 안정적인 울타리 안에 있고도, 언제부터인가 벗어나고 싶어졌다. 현재 있는 이 울타리를 뛰쳐나갈만큼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여행에 관심이 생기면서 점점 확신에 찼다. "나는 떠나야겠다고." 지금 이 순간 여행을 포기하면, 계획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적당히 저금도 하며 미래를 꿈꿀 수 있겠지만, 안정적인 삶보다 모험적으로 살고 싶었다.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어떠한 선택을 하기 전, 이후 벌어질 최악의 상황을 먼저 고려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처음 남미를 가기 전 최악의 시나리오는 내가 여행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시체도 못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 대비해 사망보험금이 최대한 높은 여행자 보험을 알아봤다. 혹여나 죽으면 가족들에게 보험금이라도 전달되도록 말이다.
지금에서야 농담처럼 얘기하지만 가기 전엔 정말 무서웠고, 사실 인천공항으로 가는 그 순간까지 여행을 취소할까 고민했었다. 왜냐하면 남미의 사건사고들을 보면 상상 그 이상이 많았다. 버스에 무장강도가 침입하여 돈과 휴대폰, 배낭을 가져가버린다던가. 권총 강도, 납치, 마약 문제 등등 꽤나 중범죄 비율이 높아서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캐리어에 주짓수 도복을 챙기며, 어쩌면 여행하다가 객사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1년짜리 나 홀로 남미 주짓수 여행'을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