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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한 마시멜로우 Jun 17. 2024

친정엄마의 김치국

사진: 다음 이미지

# 김치국: 김치로 끓인 국 (김칫국으로 표기해야 하나 "김칫국 마신다'는 말과 차별화하기 위해 이리 적음)


부잣집 딸로 태어났지만 풍족하게 살지 못했고, 직장 좋은 남자와 결혼했지만 그 남자는 허망하게 직장을 때려치웠다.

아들 둘 딸 셋을 낳고 기르며 엄마는 지지리도 힘들게 사셨다.

아버지의 긴 실업자 생활과 끝도 없는 술타령, 경제적 어려움이 힘에 부쳤고, 없는 살림에 배꼴 큰 자식들의 먹성은 엄마를 더욱더 애타게 했다.    

 

“엄마, 먹을 거 없어? 엄마, 더 먹고 싶어! 엄마, 맛있는 거 좀 줘~     


엄마만 보면 ‘뭐 먹고 싶다’, 돌아서면 ‘배고프다’는 자식들 먹타령에 엄마는 가수 진성의 ‘보릿고개’ 심정이 되었으리라.  (약간 과장함.ㅎ)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엄마 음식솜씨는 그리 좋다 할 순 없다.

엄마는 질보다 양을 택했다.

빈곤한 형편에 양을 늘릴 수 있는 다양한 요리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엄마의 가장 큰 숙제였다.

설탕얼음물에 후루룩 면치기 냉국수와, 멸치 몇 마리 담가 국물맛을 내 끓인 수제비가 엄마의 메인요리가 되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엄마의 시그니처 음식은 얼큰 시원한 '김치국'이었다.


우리는 어렸을 때 질리도록 엄마의 김치국을 먹고 자랐다.

김장김치가 익어갈 때쯤 되면 우리 집 밥상엔 하루가 멀다 하고 김치국이 올라왔다.  

마땅한 반찬거리나 국거리가 없을 때 엄마는 두 번 고민도 없이 김치국을 끓여내셨다.

맛이나 양 측면에서 가성비가 좋았고, 식구들 반응 또한 그리 나쁘지 않았다.

우리 집 두레 밥상에 7개의 밥그릇과 김치국 그릇이 나란히 자리를 잡으면 제법 풍족한 밥상 모양이 춰지곤 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밥 한 공기를 통째로 김치국에 홀라당 말아 마지막 국물까지 다 들이마신 후 국그릇을 내려놓았다.

뜨겁지만 시원하고 매콤하며 게미가 있는 김치국은 다른 반찬이 굳이 필요 없을 정도였고, 은근 포만감도 좋아 엄마도 우리도 모두 만족스러운 한 끼 식사로 안성맞춤이었다.


음식도 자주 먹으면 물리기 마련인데 어찌 된 일인지 김치국은 물리지도 않았다.

우리는 입맛이 없거나 몸이 아플 때면 어김없이 엄마의 김치국을 찾았다.


“엄마~ 오늘 김치국 안 끓인가? 김치국 좀 해줘”   


어느 순간부터 김치국은 우리에게 보양식 같은 음식이 되어버렸다.


새언니가 시집을 왔다.

여유로운 가정의 외동딸인 새언니는 맞선으로 큰오빠와 결혼을 했다.

공기업에 재직하고 있는, 인상만 훈훈한(?) 오빠는 자상 함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었고, 언니의 기대에 한참을 못 미치는 그런 남자였다.(오빠 미~안)

의무만 잔뜩 있고 기댈 구석 없는 가난한 시댁의 맏며느리 자리가 언니의 자리였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완전 속았어~” 언니는 오빠가 미운 짓을 할 때마다 그 말을 달고 살았다.


오빠네가 아파트분양을 받는다며 1년 정도 시댁과 합가 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가정적이지 못한 아들과 맞벌이였던 오빠부부를 대신해 매끼 식사를 책임지셨다.  

형편이 한참 나아졌지만 엄마는 습관처럼 엄마의 시그니처 김치국을 언니에게 자주 선보이셨다.

언니는 엄마의 김치국을 보고 완전 황당해했다.

자신의 친정에서는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듣보잡 음식이었던 김치국~.

언니가 몸이 아팠을 때도, 힘들게 일하고 퇴근했을 때도 엄마는 눈치 없이 김치국을 종종 내놓으셨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고깃국이나 곰국도 좀 끓여주시지 맨날 김치국만 주시니 참 서운했어요. “


우리에게나 보양식이고 맛스럽지, 새언니에게는 참 성의 없는 시어머니 음식이었던 것이다.   

     

엄마가 허리와 고관절 수술로 거동이 어려우실 때도 우리는 부러 엄마에게 김치국을 주문하곤 했다.

엄마는 우리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손수 간을 맞추고 마지막 대파를 올려놓은 것은 꼭 당신이 하셨다.  

우리는 입을 맞추기나 한 것처럼 '역쉬 엄마 김치국이 최고네~' 엄지를 추켜세웠고, 엄마는 '저것들 보소' 눈은 흘기셨지만 웃으셨다.


이제 엄마가 안 계시니 더 이상 엄마표 김치국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대신, 돌아가시기 전까지 엄마를 모셨던 작은언니가 제일 엄마처럼 김치국을 잘 끓여냈다.

얼마 전, 나는 엄마 생각도 나고 왠지 기분이 꿀꿀해 몸까지 축 쳐져 작은언니를 찾아갔다.


"언니~ 나, 김치국 좀 끓여주소"


"오매, 우리 막둥이가 엄마 생각이 나나 보네?"


그러면서, 언니도 엄청 아팠던 며칠 전에 혼자 김치국을 한 대접 끓여 먹었더니 힘이 나더라는 얘기를, 코를 찡찡대다 급기야 울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아이고 언니~ 왜 그래 진짜?' 퉁을 주면서도 언니와 나는 김치국을 앞에 두고 그만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엄마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요즘 우리 반 애들과 속담공부를 하고 있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엄마가 죽으면(헉~ 라임을 생각해서 이리 적음, 돌아가시면) 김치국을 남긴다'


난 이제 김치국만 보면 친정엄마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김치국~ 엄마에겐 고달픈 삶의 한 단면이며 자식들에 대한 애달픔이었고, 우리에겐 옛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자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이번 엄마의 첫 기일에는 엄마 제상에 김치국을 한 대접 끓여 올려놓아야겠다.


우리 아이들은 훗날 생각하며 어떤 음식을 떠올릴까?

나도 친정엄마처럼 내 시그니처 음식 하나쯤은 남기고 가야 할 텐데 말이다.

하긴, 원룸에서 자취하고 있는 아들내미가 꼭 주문하는 메뉴가 한 가지가 있긴 있다.

쇠고기 뭇국~


"나는 엄마 쇠고기 뭇국이 제일 맛있더라, 나 장가가도 엄마 쇠고기 뭇국 먹을 수 있나?"


"야~ 그걸 나한테 묻냐? 니 마누라한테 물어야지? 시어머니 쇠고기 뭇국, 지 남편에게 먹여도 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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