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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한 마시멜로우 Jun 10. 2024

관계가 틀어질 때

나는 내손으로 관계를 틀어본 적이 거의(별로) 없다.

그만큼 관계를 중시하고, 즐기고, 스킬 또한 뛰어나다.

그러다 보니 모임도, 만남도, 주렁주렁 버라이어티 하다.

나이 불문, 업종 불문, 미모 불문, 성별 불문~

일단 누구라도 만나면 모임부터 결성하고 보는 전형적인 K-아줌마가 바로 나다.    

 

그런 나를 보고 울 신랑은 퉁을 있는 대로 준다. ‘그러다 과로사하겠네~’

솔직히 자기도 그런 말 할 자격이 없는 것이, 나보다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사람이 그다.

우린 둘 다 대문자 E를 가진 외향형 인간들로, 경쟁하듯 모임 배틀 열을 올렸던 적이 있었다.(과거형)


나는 의외로, 관계가 틀어지면 운신을 못할 정도로 갱신이 힘든 트리플 A다.

' 나 때문인가? 내가 뭔 실수를 했나?'

그래서, 사전에 관계가 틀어지지 않게 무진장 애쓰며 산다.

‘우아한 백조’ 같다고나 할까?

겉으로 평온하고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기 위해, 물 밑에서 필사적으로 수십만 번 첨벙첨벙 물길을 겉어 차고 있는 한 마리 백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는 틀어지게 마련이고 결국 상처로 남는 사건은 생긴다.   


임용을 준비하며 만난 교육학 스터디 모임이 있었다.

전공과 나이는 달랐지만 ‘교육학’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고, 끈끈한 연대감으로 뭉친 아줌마 부대원(스터디원)은 남은 열정과 학구열을 불태우며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다.

한 목표를 향해 나아갔던 우리는 출발선은 같았으나 종착역은 달랐다.

누구는 첫수에, 누구는 삼수에 합격했고, 또 누구는 고지를 목전에 두고 두 손 두 발 들고 책을 덮었다.

 

그렇게 스터디 끝이 났지만, 아직 미련이 남은 우리는 내 제안으로 친목 모임으로 다시 탈바꿈했다.

우리는 도서관 대신  맛집과 카페로, 교육학 책 대신 노래방 책으로, 인강 모니터 대신 영화관 스크린으로, 그리고 구경과 여행으로 남은 미련과 아쉬움과 채워나갔다. 

우리는 성향도 취미도 비슷해 만나면 즐거웠고 헤어지면 또 아쉬웠다.

하나같이 말하기를 좋아했고, 말도 청산유수였고, 명랑 쾌활, 사회적 민감성도 높아 죽이 척척 맞았다. 

그러나 만남이 거듭될수록 조금씩 삐그덕 거리는 사건이 하나둘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을 알려면 여행과 화투를 쳐보라 했던가?

결정적으로, 여수여행에서 후배 P와 내가 의견충돌이 생기고  말았다.

여행 내내 주절주절 자기 얘기만 하고 자기주장만 내세운 P가 나는 계속 눈에 거슬렸다.

돈(경비)만 더치페이가 아니지 않은가? 말할 시간도, 즐기는 용량도 1/n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P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어 보였다.

   

"P야~ 그렇게 니 생각만 얘기하지 말고 다른 사람 얘기도 좀 들어줘~ 나는 요래요래 생각하거든? 계속 너는 니 얘기만 하드라"


언니도 맨날 자기 말만 하잖아?  그건 언니 생각이지~ 언니 생각을 우리에게 강요하지 마!”  

  

말 많은 사람이 말 많은 사람  못 보고, 설쳐대는 사람은 더 설친 사람 본다고, 우린 서로 꼴을 못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내가 P에게 하고 싶은 말을 도돌이표처럼 그대로 내게 돌려주고 있는 P~

난 뒤통수를 쇠망치를 얻어맞은 듯 멍~해지며 '내가 그랬다고?' 다음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자기 객관화가 안된 것이었나?)

그렇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 트리플 A가 스멀스멀 올라오서운한 마음에 소설이 쓰여지고 있었다.

'명색이 그래도 내가 왕언닌데 그렇게 4가지 없게 말한다고?  다른 애들은 P의 무례함을 보고만 있고? 도대체 애들이 평소에 나를 어떻게 생각했던 거지?'


문제는 그 후부터였다.

여행 후 톡과 밴드에서는 불이 난 듯 여행사진이 올라오고 시시콜콜 히히덕 요란스러웠지만, 내 긴 무응답에도(트리플 A는 삐져 있었음)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언니~ 왜 말이 없어?  혹, 기분 나쁜 것이 있었다면 풀어~'이 한마디면 됐을 것을, 그 한마디금세 풀려 버리는 참 쉬운 여자가 난데,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이고 재판에도 재심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녀들은 나에게 그 단 한 번의 기회를 끝내 주지 않았다.

그녀들은 그렇게 나를 철저히 투명인간 취급 했고, 결과적으로 내가 내쳐졌다.


'무엇이 문제인 거지?

평소에 내 언행이 그녀들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했던 것일까?

제일 왕언니라고 그녀들을 막 대했던 건 아닌가?

언니 같지 않은 인색함과 소심함이 나에게 있었던 건 아닌가?'


온갖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한동안 나를 잠 못 들게 했다.

그녀들과 함께 했던 짧지 않은 시간과 추억을 생각하니 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참 좋아했던 후배들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자괴감과 서운함, 배신감과 상처가 배가 되어 부풀러 져 가기만 했다.

하지만 끝내 난 '얘들아~ 언니랑 같이 놀자~' 먼저 용기를 내지 못했고, 뭐 싸고 뭐 안 닦은 것처럼 찝찝함만 남긴 체 그 모임에서 조용히 빠졌다.


한참의 시간이 꽤 많이 흐른 후(몇 년 후), 그 멤버 중 한 명인 C가 딱 한번 연락을 해왔다.


"언니가 우리를 버렸잖아, 우리도 상처받았어, 우리는 우리 싫다고 떠난 사람 잡지 않기로 했고..."


"으윽~ 내가 버렸다고?"


닭과 계란 같았다. 니가 먼저다, 내가 먼저다.

그녀들은 내가 내쳤다 생각했고 나는 그녀들이 나를 내쳤다 생각하며 오해의 골이 깊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또다시 그때의 상처가 올라와 억울하고 괴로웠다.

사람 욕심이 많은 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런 내가 관계를 파투 냈다 말하는 그녀가 야속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말할 용기와 필요는 없어 보였다.

화해와 용서도 유효기간이 있는 법,  타이밍상 너무 많은 세월이 흘러버렸고, 그녀들과의 인연은 거기까지인  같았다.

그 연락을 끝으로 난 완전히 그녀들을 지웠다.


지금도 궁금하다.

내가 과연 관계를 틀었을까? 그녀들이 관계를 틀었을까?

시시비비를 가릴 것도 없이 아무튼 그 일은, 관계에 자만했던 내게 큰 스크래치를 남겼고, 다시 한번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 아닐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관계에서 시작해 관계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관계는 case by case,  명쾌한 정답도, 정확한 가이드라인도 없어 여간 옹색스럽기 그지없다.

죽을 때까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각자가 깨닫고 배우고 노력해서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을 뿐...


나는 최근에 느끼고 있는 '관계'에 대한 내 생각을 여기에 몇 가지 끄적거려 보고자 한다.

(멋진 말도 없고, 전문가적 소견도 아니며, 지극히 주관적이나, 어찌보면 뻔한 얘기일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1. 아무리 친하고 가깝다고 그 집 숟가락까지 세려 하지 말자. 적정한 거리를 두고 선을 지키자. 선은 차선만 지키는 것이 아니다.   

2. 어떤 관계도 안전지대는 없다. 내가 언니라고, 잘 나간다고, 밥 많이 샀다고 안심하지 말자. 돈 많은 왕할머니도 노인당에서는 안전하지 않다. 항상 겸손하게 사람을 대하자.

3. 관계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도, 옷도, 가구도 정리가 필요하듯, 관계도 한 번쯤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4. 관계가 깨지더라도 좋았던 것만 기억하자. 상대를 미워하는 것은 나 자신을 불태우는 것이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좋았던 것만 추억하자.  

5. 사람도 가려서 만나자. 이제 갈수록 가릴 것이 많은 나이가 되었다. 음식도 함부로 먹으면 체하고 사람도 함부로 만나면 탈난다.

6. 애쓰지 말자. 아닌 인연은 아닌 것이다. 굳이 애쓰며 상처받지 말자. 내 인연만 만나는 것도 시간이 부족할 나이에 있다. 의외로 시간이 많이 없을 수 있다.

7.  관계도 양보다 질이다. 선택과 집중,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하자, 더 확장시켜 인생 복잡하게 꼬이게 하지 말자. (영광인 줄 알아라. 지금 나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선택된 사람들이다 ㅎ)

8. 내 위에 사람 없고 내 밑에 사람 없다. 내 위에는 1302호 사람밖에 없고, 내 밑에는 1102호 사람밖에 없다. 모두 나와 동등한 인간들이다.

9. 관계도 대차대조표가 맞아야 한다. 문제는, 숫자로 표시가 어려워 오해가 생긴다는 것이다. 내가 상대와 똑같이 했다 생각하면 덜 한 거다. 내가 좀 못했다 싶으면 엄청 못한 거다. 내가 더 잘했다 느껴지면 딱 맞게 한 것이다.

10.....

11.....

12...


(일단, 여기까지만 생각나서 적어보았다. 나머지 10, 11, 12 ... 은  계속 살아가면서 채워갈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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