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서 감정평가사로 이직하는 이야기
현직에서 근무할 때, 한 학생이 울면서 다가와 나에게 한 질문이었다.
초임으로 근무할 당시라서 학생에게 최대한 많은 도움을 주고 싶었으나 이게 역효과가 난 듯하였다.
그때의 나는 그 학생에게 제대로 된 답을 주지 못하였다.
학생의 눈물 때문이었는지, 초임의 열정이었는지, 개인적인 실망감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으나 퇴근하는 길에도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을 바로 내리지 못하는 내가 과연 교사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질문을 곱씹어 보며 내 모습을 되돌아보았고 공부에 대한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나에게 공부란 늘 도전이었다.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 중 가장 큰 도전 중 하나였고, 좌절과 성취의 반복이었다.
공부가 도전이라는 사실은 비단 나에게만 적용되는 사실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위 질문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보았다.
"왜 도전을 해야 하는가?
성실하게 공부하여 서울 상위권 대학에 입학하고 싶었다. 나름 잘 나오는 성적으로 주변의 기대감이 많이 있었고 부모님과 친척들 모두 내 수능 성적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주변에 재수 제안에도 불구하고 수능에 대한 실망감이 나를 뒤덮었다. 내가 못한 게 아니라 수능이라는 제도가 잘못되었다는 위로를 하며 수능에 절대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운이 좋게도 교대에 입학하였고 얼떨결에 나는 교사 지망생이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내 삶을 '교사'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나의 꿈을 버리고 직업의 안정성 하나만을 바라보았다. 부모님도 지방에서 교사하면 '선생님'소리 들으면서 살 수 있다고 하여 좋아하셨다. 4년간의 대학 생활 끝에 나는 그토록 바라던(?) 교사가 되었다. 처음 출근해 보니 예상대로였다. 주변에 '선생님'이라는 소리가 들렸고 행복했다. 학생들은 '우리 선생님은 젊고 멋있어.'라고 하며 나를 잘 따랐다. 퇴근 후에는 운동까지 하며 나름 '자기 관리도 철저한 교사'라며 스스로를 치켜세우곤 하였다. '이제 몇 년 후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서 노후에는 연금으로 여행이나 다녀야지'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생각만 해도 만족스러웠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 공허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방에 교사로 근무하면서 나는 점점 나태해져만 갔다. 주변에서 '선생님' 소리를 듣게 되더니 도전이란 게 꼭 필요한가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정시 출근과 정시 퇴근이 유일한 목적이었고, 집에 오면 간단한 운동 후 잠에 드는 삶을 반복했다.
주변에 취업 준비를 하는 분, 공부를 계속해서 하는 분들이 꽤 있었는데 그들을 보며 '왜 저렇게 열심히 살까'라며 내 삶을 치켜세웠다. 당시 뉴스에서는 연일 부동산, 주식 가격 최고가 경신 등을 방송하곤 했었다. 돈을 벌면서 조금씩 주식을 산 덕에 내 계좌도 은행 이자를 넘는 수익률을 보였다. 그때만 해도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돈이 벌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이렇게만 산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주변의 소식을 들었다.
'5년간 공부를 하던 분이 전문직 시험을 합격했다.'
'oo이가 공부해서 xx대를 들어갔다.' 등등
오랜만에 들려오는 소식에 참 낯선 감정을 느꼈다.
부러움이기도 했고, 질투심인 거 같기도 했다. 동시에 존경심까지 들었다.
그분들은 다 나랑 가까운 지인들이기도 했고 아주 평범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던 분들이다. 몇 년 전부터 공부를 시작했다는 소식은 듣긴 했었는데 진짜로 원하는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그때 처음 들었던 것 같다. 내 삶이 온통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또 어떤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하는 모든 일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자연스레 내 삶에 '도전'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엔 허무했다. 수능을 보았고, 임용을 합격해 취업을 하면 별다른 도전이 없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또 도전이라니...
도전이 주는 스트레스를 더 이상 겪기 싫었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없으니, 내가 도전해야겠다는 동기도 없었다.
동기가 없으니 똑같은 삶을 반복하게 되었고 그렇게 난 매너리즘에 빠져버리게 되었다.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그 학생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공부는 왜 해야 하는가?"
....
이제는 이 질문이 나를 꾸짖는 물음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저도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왜 선생님은 그러지 않으세요?"
몇 달을 방황하고 나서 매너리즘에서 탈출하려면 새로운 무언가를 도전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침 사회복무요원 소집통지서가 날아왔다. 기회였다. 교직을 잠시 뒤로하고 새로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
그렇게 나는 사회복무요원 근무와 함께 새로운 도전을 찾아 나섰다.
임용에 합격한 뒤부터 어머니께서 감정평가사 공부를 내게 추천하셨던 적이 있다. 굉장히 어려운 시험이라고. 우리 아들이라면 단 번에 합격할 것이라고.
감정평가사에 대해서 짧게 알아봤지만, 평균 수험기간이 3~4년이라고 하였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죽기 살기로 해서 사회복무요원 기간 내 끝내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도전의 길에 서게 되었다.
이 때는 몰랐다.
이 도전이 내 삶을 얼마나 바꾸어 놓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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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