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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세번째 스무살
Mar 22. 2024
시어머니와 well dying
2023년
12월 2일 시어머니가 드디어 정신을 차리셨습니다
아니 차리신 줄 알았습니다
계속
섬
망증세가 보였고 잠깐 우리를 알아보시고 깊은 잠에
다시
빠졌습니다
시어머니
연세
는
88세
,
작년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폐암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폐암 3기
에 수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뇌까지 전이돼서
계
속 토하고 머리가 너무 아파하셨습니다
용변도
혼자 하실 수 없는
아주 안 좋은 상태가 되셨습니다
시어머니가
세브란스
응급실에 계셔서 밤새 병원에 있는 남편과 교대하기 위해
가는 차 안에서 남편이 들뜬
목소리로
엄마가 확실히 본인을 알아봤다고 하면서 많이 기뻐하였습니다
저도 정말 다행이다 하며 병원을 잘 선택한 덕분이라고 하였죠
그런데 어제 표적치료 결과가 나왔는데 부정적으로 나오니까
남편은 의사 선생님이 불친절하다며 원망을 하고 거의 울지경이었습니다
우리는
표적치료를 마지막 희망으로 생각했는데 전부 맞는 게 없다고 하니까 절망하며 한탄을 하였습니다
며칠 후
첫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 응급실에서
시어머니한
테
저를 알아보겠냐고 하니까
아신다고 하며
약간의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시
며 끄덕 이
더니
너무 목이
마르다고
물 좀 달라고 하셨고 잠시 후
섬
망이 보이는지 혼자 못 알아듣는 소리로 계속 중얼거렸습니다
누군지도 모른 채 계속 대화를 시도하시는데 아무리 귀 기울이며 들어도 못 알아들을 언어로 손을 저으며 말씀을 하셨습니다
12월 3일
시어머니는
암병동으로
옮긴 후에
제가 누군지 잠깐 알아보시더니 하시던 행동들이 갑자기 달라졌습니다
이것저것 불편한 점을
도와달
라고 하셨어요
잠시 후 코에 산소줄을 빼고 저한테 갑자기 존댓말을 하고 정신이 들락날락하는 거 같았습니다
그리고 황덕이 언니가 문쪽 저기에 와 있다고 해서 누가 제일 보고 싶냐고 물어보니까 묘한 표정을 지으시며
아무도 없다고 말씀
하시며 고개를 저으셨
습니다
오줌통을 버려주시던 간호사님이 시어머니가 예전에
저한테 엄청 잘해주신 거 같다고
이런 착한 며느리가 어디냐고 하셔서 저는 잠시 침묵했죠..
몇 시간 만에 확 바뀌셔서 저에게 성별이 어찌 되냐고 물었습니다
병원에서 시어머니가 임종이 가까우신 것 같다고 주말에 직계가족들 면회를 허용하겠다고 하니까 남
편이
불안해하며 시동생에게 오라고 전화했더니 바쁘다고 다음에 오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시어머니께 작은아들이 보고 싶냐고 하니 끄덕이고 남편한테는 안 보고 싶으니까 절대 연락하지 말라고
했지만
진심은 달랐습니다
작은 아들은 어머니의 아픈 손가락입니다
시어머니의 환자복에 피와 주삿바늘이
빠져
있어서 황급히 간호사님이
왔는데 시어머니가
손을 너무 많이 움직여서 손에다
바늘을 꽂을
수 없어 난감해했습니다
계속 지켜보는데도 어느새
주삿바늘과 코줄을
빼버려서 그러면 환자가 위독해지니까
간호사
두 분이 오셔서 한쪽손과 양발을 다 묶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계속 산소줄과 모든 줄들을 빼
서
시어머니옆에 계속 있어야 할 거 같아 점심도 못 먹어서
컵라면에 물을 부었는데
안절부절못하셔서 보니 대소변을 많이 보고 흘러서 간호사분
과
같이 치웠습니다
퉁퉁 부른 면을 보니 마치 처량한 내 신세 같아 보였지만 너무 힘든 시어머니를 생각하며 꾸역꾸역 먹었습니다 그래야 밤까지 병원에서 견딜 수 있으니까요
평소에 항상 깨끗하고 예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
얼마나 힘드실까 이 모든 현실이..
온몸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와 용변도 대화도 생각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지옥 같을 거라 생각합니다
병원에서는 길어도 한 달 정도가 시어머니가 더 사실 거 같다고 하시며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심으로 더 이상
시어머니가
많이 아프지
않으시길
기도
했습니다
이
렇게
추운 겨울에 떠나시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안
타깝지만
아직도 남편은 포기 못한다며 최선을 다 해 시어머니를 걷게 해서 봄에라도 보내드리고 싶어
합니다
시어머니는
병원에 계실수록 하루하루
더
아프다며 소리치시고 고통스러워하시는데 죽음에 대해 웰 다잉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시어머니도
작년에 연명치료거부신청 신고를 직접
하셨지만
그래도 남편은 시어머니가 오래 사실수 있도록
연명치료를 하였습니다
남편은
힘든 병투병을 옆에서 묵묵히 열심히 도왔고
자식 된 도리로 최선을 다했다고
남편한테 말해주고 싶네요
12월 4일
오전에
시어머니의
담당의사 선생님과
회진을 할 때
뵈었습니다
그때 하시는 말씀이
영양주사나 산소줄등을 본인 부모면 벌써 뺐을 텐데 남편이 고집을 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당장 돌아가셔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며 연명치료를 본인이 안 하겠다고 신청했는데 그런데도 계속하는 것은 환자를 위하는 게 아니고 계속 고통스럽게 고문하는 거라고
.
.
지금 자식들이 할 일은 현실적으로 시어머니의 죽음을 빨리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할 건지를 고민하라고 하며
남편을 잘 설득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치료는 의미가 없다고 호스피스병원으로 옮기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이 엄마가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며 퇴원하면 돌아가실 때까지 저희가 케어하며 지내자고 했는데 요즘 법이 강화되어서
집에서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여러 가지로 힘들다고 의사 선생님들이 만류하셨습니다
그리고 12월 12일 호스피스병원에서 새벽 5시쯤 남편한테 시어머니가 위독하시다고 전화가 와서 황급히 달려가다 보니 신발도
짝짝으로 신고 갔는데도 1시간
뒤인 새벽
6시쯤 돌아가셨다고 병원에서 전화연락을
받았습니다
침통해하며 운전을 하던 남편을
옆
에서
보면서
외롭게 홀로 쓸쓸히 떠나신 모습을 보니 참담한 마음과
함께 호스피스
병원에
도착을
했습니다
마지막 시어머니의 얼굴은
편안한 모습이었습니다
평
소의
너무나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시어머니
손을 잡고 이제는 아프지 않은 세상에서 보고 싶은 분들 많이 만나시고 극락왕생 하시라고
마지막 인사를 드렸습니다
잠시 후
병원직원과 함께
장례
를 치르는 문제로 상
의했지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는 자리가
없었습니다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으로 정하고
병원 관계자분들과 상담을
했는데
서울 추모공원
화장터에 화장할 자리가 없어 4일장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몇 년 전에 여행 가서 행복해
하며 웃는 시어머니의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정했습니다
4일장을
무사히 잘 마치고
비가 내리는 날에
서울추모공원 화장터에 들렸다가
용인
공동
묘지에
편안하게
안치하였습니다
불교신자이신 시어머니 뜻대로 49제를 파주에 있는 용상사 절에 미리 예약을 하였습니다
용상사에서 49제를
끝나면
본인이 평소에 좋아하던 물건들을
함께
태운다며 쓰시던 물건을 챙겨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49제를
지내기 전에
제
꿈에
시어머니가 나타나서 노랑빛 연두색이 조금 들어간 옷을 입고 싶다고 하셔서 옷정리 할 때 보니 처음 본 노랑빛 연두색 잠바가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사망신
고를 하고
49제가 끝난 후
남편과
시어머니
집안
정리를
같이 했는데
남
편은
세간살이들을
살펴보며
아끼고 정성 들여
물건들을
챙겼을 생각에 막 함부로 다 버리지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남편은 시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담근 김치와 매실액등 시어머니의 손길이 담긴 것들은 소중하게 여기며 남겨 달라고 하였습니다
시어머니 집정리를 하다 보니 저도 다음에 내가 어느 날 없을 때 자식들이 내 물건들을 치울 생각을 하게 되니까 앞으로 물건들을 많이 사기보다는
있는 물건들을 잘 쓰고
정리를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습니다
시어머니를 통해서
다시
죽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깨닫
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자식들과 내가 살아있는 동안
더
많이
사랑을
주고
행복한
시간
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고마움도 마음속에만 담지 말고 표현도 하고
진심으로
작은 것에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욕심도
좀
내려놓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떠나는 날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삶의 마지막을 잘 정리하는 것
도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들과 친구 이웃 등과 안녕을
고할 순간이 올 때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지만
최선을 다해
남은 날들을
열심히 살고
죽
음에
준비된 나날을 보낸다면
마지막 순간들이
슬프고
괴롭다거나 나 자신이든 누구든 원망하지 않는 그런 웰 다잉이 될 것입니다
훗날
마지막 소망이라면
남은 사람들이 제가 없을 때
저를 어쩌다 보고 싶은 사람으로 그리워해 주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다 간 사람으로 기억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존중받는 죽음을 위해
의미 없고 고통만 주는 수명연
장을 하기보다는 담담히 마지막 품위를 지키며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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