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번째 스무살 Apr 26. 2024

오르막길 가려는 딸에게

89년생 딸에게 쓰는 편지


오랜만에  너에게 편지를 쓴다
몇 년 전에 네가 외국에 있을 때
늦가을 문득 떨어지는 빨갛고 예쁜

낙엽을 보고
너를 떠올리며 시를 적어 보냈더니 좋아해 줘서 기뻤어
일주일 후에 외국으로 떠나는 너에게
어떤 것을 해주면 좋을까
생각하다  이렇게 글을 써본다
오랜 기간 떨어져서 지내는 동안 못 먹을  음식들을 가족들과 다니며 먹었지
선거하고 떠난 춘천 통나무 집에 갈 때 벚꽃길이 참 좋았고  마장동 소고기도 먹고 돌아오는 길 응봉산에 개나리 축제가 열려 산에 개나리가 활짝 핀 것도 인상 깊었어
오늘은 아빠랑 너랑 셋이서 이수역 왕금성에서 양장피랑 찹쌀 탕수육 도 맛있게 먹고 집에 와서 같이 사케도 한잔 하며 점점 너랑 떨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 걸 느꼈다
엄마가 네가 없는  빈시간들을 어떻게 보낼지를 생각하다 그동안 방치해서 지저분한 화분도 가꾸고
겨울 동안 더 지저분해진 집안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루틴 같은 아침에 눈뜨면 읽는 브런치글들을 더 열심히 구독해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글도 더 많이 써보려고  
그러면 부족한 내 글에도
실력이 좀 늘지 모르겠지만
그것보다 픽 웃는 삶의 해학과 마음을 갑자기
찌르는 글들이 있어 참 소중해
저번에 춘천 갈 때 차 안에서
내가 말했지 브런치 작가분이 쓴 글 중에 너무 좋았던 내용 중
 "작가들은 가슴에 구멍이 난사람들이 그 구멍을 메우려고 글을 쓴다"는글과
한 사람의 생애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배우자와 자녀라고 생각한다는 글은 너무 공감이 갔어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고 너한테는 어떤 엄마일까?
미안해 그냥..
그리고 작가들은 가슴에 난 구멍을 메우려고 작업을 한다는 글에 너를 떠올렸어
 너무나 힘들고 창작의 고통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외롭게 홀로 가는 길이야
예전에는 예술가의 힘든 길을 가려는 너를 이해 못 했고
솔직히 미안하지만 너의 실력도 걱정되었다  
그런데 너의 첫 전시 때 걱정이 믿음으로 변하였고
그래 우리 딸 힙한 화가로 살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
그렇지만 신진작가는 너도 알다시피 쉽지 않은 길이야 너무나 힘들어
영국에서 너는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그림으로 시작하고 잘 때까지 그림만 생각했다고 하며 그 시간들이 사는 동안 제일 좋았고 뿌듯했다고 하며 상기된 표정으로 말하는 너를 보며 자기 일에 미쳐있는 진정한 화가로서의 면모를 보는듯한 느낌을 받았어
그동안 너는 열심히 그림 활동을 했는데 작년부터  많은 작업고민들로 인해 슬럼프인지 모르지만 요즘은 잠깐 쉬고 있지
그러는 동안 너의
불안함과 번민하는 모습에 안쓰럽고 어쩌면 욕심 많은 아빠를 닮아 고생이다 하며 고민이 많을수록 더 고통스럽지
 쉬운 길 버리고 어렵고 힘든 길을 가려는 너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엄마는 때로는 버겁기도 하단다
남들처럼 예쁠 때 빨리 결혼하고 취미처럼 그림 그리고 살길 바랬는데 너는 그럴 때마다 말했지 다 각자의 인생길이 있다고.
 솔직히 많이 너한테 서운하고 원망스럽고 속상했어
친척 조카들 결혼식에서 너 언제 결혼하냐고 하면 갑자기 의기소침하게 작아져서 많이 힘들었어
네가 지금까지 결혼 안 할지는 나 또한 꿈에도 생각 못했거든
몇 년 전부터 결혼 말만 하면 도리질을 하고 피하듯 외국으로 떠나버려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는데
네가 하는 일에 인정받고 성공한 후에 결혼하고 싶고
외로워서 의지하는 결혼 말고 혼자 잘 살 수 있을 때 결혼하겠다고
죽을 때까지 화가로 살고 싶다고 말했지
 하지만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살아보자 완벽한 삶은 없으니까 누구나 부족한 상태로 살다 보면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도 있거든


이틀 전 아산병원에도 같이 가고 참나무찜질방도
가고 돌아오는 밤에 내가 먹고 싶어 한 바지락칼국수와 팥옹심이도 너무 맛있었어
고마워 엄마랑 놀아줘서
내가 어쩌다 해준 평범한 음식들과 고등어구이도 맛있다고 네가 칭찬해 주면 기분이 참 좋아
고마워 어떤 일들이 있을 때
엄마를 떠올린다는 말에 사실은  심쿵했어
어차피 이번 생에 엄마와 딸로 인연이 되었으니   서로 귀하게 여기며 존중하며 살자
요즘 갑자기 네가 살쪄서 다이어트하라고 잔소리도 하고 너 건강이 걱정되어 싫은 소리 많이 했어

너 자신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아끼고 항상 예쁘면 좋겠어

지혜롭고 자존감이 충만한 우리가 되자

그리고 엄마처럼 주위사람들을 너무 의식하지 않는 네가 부러울 때가 때론 있어

물론 남들에게 대한 배려심도 있어야겠지만  

배려해 준 것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럴 때는 점점 마음이 멀어지는 게 느껴져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들을 너무 질투하지 말자

그 사람들도 쉽게만 가진 게 아닐 테니 엄청난 노력과 시간들이 있었을 거야

물론 운도 따르기도 하고 인맥도 있을 수 있어

그 또한 그런 기회를 갖기 위해 보이지 않는 내공이 있었을 거야

열심히 계속 작업하고 공부하면서 지내다 기회가 올 때 그동안 노력한 거로 보상받자

욕심이나 질투들이 우리를 더 향상하는 부분도 있어  그러나 마음이 괴롭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지

그러니까 마음을 좀 비우고 힘들어도 버티며 지내보자

엄마는 내가 가끔 행복하다고 못 느끼고 남들과 비교당할 때 과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때를 생각하며 지금 고마움을 느껴

감사함을 가지며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제가 진심으로 성장한 우리를 볼 수 있을 거야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길 바라
내 눈에는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소중한 딸에게
꽃향기 가득한 4월의 봄날
 63년생 엄마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