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시작된 베네치아의 커피 이야기.
물 위의 도시. 바다 위에 떠 있는 도시. 자동차가 없는 도시. 베네치아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서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를 향했다. 일단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 본 섬으로 들어가는 과정부터 드라마틱하다. 긴 바다 위 다리를 기차를 타고 건너는데 차창에서 바라보면 마치 내가 바다 위를 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산타 루치아 역을 나와 숙소를 향하는 길이 정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차가 없다. 대중교통도 차가 아닌 수상버스다. 조그마한 보트를 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개인택시란다. '아 여기가 물의 도시구나!'
숙소에 짐을 풀고 가장 유명한 산 마르코 대성당 광장으로 나갔다. 광장에는 이른 시간부터 단체 관광객들부터 개인 관광객들까지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당일 치기로 베네치아를 들렸다가는 이들마저도 찍고 가는 곳이 이곳 산 마르코 대성당이니 인파를 피하기는 어렵겠다 포기하고, 대성당을 잠시 둘러보았다. 하지만 적응하려 해도 밀려오는 인파는 나를 지치게 했던지라 -물론 그곳 마저도 붐비는 것 같았지만- 그 유명한 꽃다방 카페 플로리안에 앉아 커피 한 잔을 하기로 했다. 그래, 오스트리아 빈과 서로 유럽의 첫 커피를 두고 싸우는 베네치아 아니던가. 이곳에서의 커피는 센스지!
유럽에서 학술적으로 커피가 등장한 것은 16세기 말 무렵 프로스페로 알비니 (Propesro Alpini, 1553-1617)가 1580년 이집트를 여행하고 1592년 베네치아에서 발간한 "이집트의 식물"에서이다. 그는 무슬림들이 달여 마시는 검은콩, 커피를 언급했다. 베네치아에서 공식 기록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보다 조금 더 전 시대인 1585년 외교문서에서이다. 콘스탄티노플 주재 베네치아 공화국 대사인 지안프란체스코 모로시니 (Giovan Francesco Morosini, 1537-1596)의 보고서에 커피가 등장한다. 이 보고서는 "오스만 튀르크에는 Cavee라는 콩을 달인 시커먼 물을 입에 델 정도로 뜨겁게 끓여 마신다. 이 음료는 기운을 북돋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라고 커피를 이야기한다.
정확한 보급의 시기는 언제로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1600년대 들어서면서 베네치아에는 본격적으로 이 검은 콩물을 파는 사람들과 가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1645년 경 베네치아에서 이탈리아 최초로 커피가 판매되었는데 음료상들이 레모네이드와 함께 커피를 팔았다고 한다. 기록으로 확인되는 판매는 1683년 베네치아의 신 시청사(Procuratie Nuove, 산 마르코 대성당 광장을 둘러싼 회랑 같은 건물이다. 지금 카페 플로리안이 자리 잡은!) 아래에서 터키인들이 커피를 팔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리고 베네치아 여행에서 누구나 한 번쯤 그 앞이라도 지난다는 꽃다방 내가 앉아있는 카페 플로리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카페 플로리안은 1720년 12월 29일 베네치아 사람 Floriano Francesconi가 Caffe della Venezia Trionfante라는 이름으로 가게 문을 열었는데 번역하자면 '베네치아의 승리 카페'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카페는 주인장 이름인 Florian으로 사람들 이름에 더 많이 불리게 되었단다. 아마도 주인장이 요즘 말하는 인싸(?) 였는지 베네치아에서, 베네치에를 방문하는 사람들 중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가게 운영은 어떻게 했는지, 걸어 다니는 도식 색인이라고 불릴 만큼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교류했는데 사람들을 그 때문에 편하게 Florian이라고 카페를 부르기 시작한 듯하다.
카페 주인이 인싸여서 그런지, 아니면 될 놈은 뭘 해도 될 놈이라 그런지 카페 플로리안의 출발은 그 시작부터 화려했다. 우리도 익히아는 베네치아의 카니발은 성 스테판 축일인 12월 26일에 시작되는데 1720년에는 크리스마스이브 행사 때문에 26일 무대를 장식할 행사장비가 부족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카니발 행사가 며칠 미뤄져서 진행되었는데 바로 그날이 12월 29일 카페 개업일이었다! 우연한 일이지만, 카페는 개업행사를 국가 단위로 아주 화려하게 치르게 된 샘이니 카페 플로리안의 번창은 이미 예상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1774년 창업주 Floriano Francesconi가 사망하고, 그의 조카 Valentino Francesconi가 사업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과감히 원래 상호를 버리고, 카페 이름을 사람들이 더 많이 부르던 이름 삼촌의 이름 Florian으로 바꾸었다.
창업주의 인싸력뿐만 아니라 카페 플로리안은 당시로써는 나름 파격적인 영업전략을 펼쳤는데, 여성의 고용 정보의 창구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영국의 전기작가 윌리엄 헤즐릿 (William Carew Hazlitt, 1834-1913)은 그의 저서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카페 플로리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탈리아에서도 베네치아의 커피가 최고이다. 그중에도 으뜸은 Florian의 커피이다. 플로리안은 여성 요리사를 고용해서 디저트를 만들었고, 여성 종업원들을 고용했다. 이들은 꽃을 명찰처럼 달고 일을 했는데, 산 마르코 광장의 소녀들이 이를 흉내 내서 옷에 꽃을 달고 다니기도 했다. 귀족과 정치가, 군인과 예술가, 노인에서 젊은이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 카페를 드나들었다. 이들은 대화를 하고 각종 소문과 스캔들을 듣기 위해서 카페에 들렀다. 특히, 계층별로 좌석이 달랐는데 등급과 이용료가 상이했다. 가장 많이 붐볐던 것은 남성용 3등석이었는데 이 좌석이 서민석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기록에 나온 대로 귀족, 정치가, 군인, 예술가 등 엘리트 집단들은 정보를 위해 카페 플로리안을 방문했는데 그 정보의 출처 중 하나가 이곳에서 읽을 수 있는 La Gazzetta Veneta (굳이 이야기하자면 베네치아 신문?) 때문이었다. 원래는 공화국 정부에서 손으로 작성해서 발행했는데, 1759년 Giovanni di Memel이 작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사설, 경제동향, 뉴스 등이 담겨 있어서 당시로써는 최고의 정보지로서 기능했었던 듯하다.
베네치아에 온다고 했을 때부터 가방 속에 챙겨 온 "커피의 역사" 책을 덮었다. 밖에는 여전히 관광객들이 붐빈다. 그리고 300여 년 전 플로리안의 개업일 때처럼 카니발을 준비하는 인파도 한 가득이다. 본격 카니발 기간 이틀 전임에도 거리에는 카니발 가면과 복장을 한 사람들이 종종 걸어 다닌다. 오늘날 카페 플로리안은 정보를 얻는 사교의 장보다는 관광객들이 꼭 들려보아야 할 명소가 된듯하다. 복잡한 사연에,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오늘날까지 이곳을 사람들이 찾게 하는 요인일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 순간, 광장 쪽에서 익숙한 아리랑이 들려온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어찌 알았는지 카페의 음악가들이 아리랑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300년 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는 인싸 창업주처럼 이곳의 직원들은 얼굴만 보면 관광객들의 국적을 파악하나 보다. 아마 잘 나가는 비법은 창업주 때부터 내려왔던 이 기술인지도.
*참고문헌*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야콥, 남덕현 역, 『커피의 역사』, 자연과생태, 2013
윌리엄 H. 우커스, 박보경 역, 『올 어바웃 커피』, 세상의아침, 2012
볼프강 융거, 채운정 역, 『카페하우스의 문화사』, 에디터, 2002
Alta Macadam, 『Blue Guide Venice』, Blue Guides Limited of London, 2014
Leona Rittmer, W. Scott Haine, Jeffrey H. Jackson, 『The Thinking Space-The Cafe as a Cultural Institution in Paris, Italy and Vienna』, Farnham: Ashgate, 2013
영문 위키백과 Prospero Alpini https://en.wikipedia.org/wiki/Prospero_Alpini (2022년 05.04 검색)
영문 위키백과 Giovan Francesco Morosini (cardinal) https://en.wikipedia.org/wiki/Giovan_Francesco_Morosini_(cardinal) (2022년 05.04 검색)
영문 위키백과 Caffè Florian https://en.wikipedia.org/wiki/Caff%C3%A8_Florian (2022년 05.04 검색)
이탈리아어 위키백과 Gazzetta di Venezia https://it.wikipedia.org/wiki/Gazzetta_di_Venezia (2022년 05.04 검색, 영문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