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연 Nov 22. 2023

나의 검은고양이, '밤'과 보낸 한 달간의 이야기

삶의 99%가 일인 한 국어강사의 '1%'

12.1.24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한 달쯤은 더 되었던 날의 밤이다. 신도림역에서 동인천 급행을 타기 위해 뛰다가 사람 많은 그 플랫폼 한가운데를 슬라이딩하며 미끄러졌었다. 그때 느꼈던 당혹감과 수치심은 내게 200명은 족히 있었던 대강의실 한복판에서 미니스커트를 입고 넘어졌던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을 떠올리게 했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10시 56분에 정차하는 그날의 마지막 동인천 급행을 놓친 후에, 나는 터덜터덜 걸어 2분마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완행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도 가끔 자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만약에 내가 그날 넘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마지막 계단을 완벽하게 밟아 꽉 찬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면 아마도, 같은 시간에 동네에 도착한 동생과 고기를 먹으러 갈 일도 없었을 것이고, 걱정돼서 전화를 걸었던 엄마까지 합세하는 일도, 그 새벽에 셋이서 사이좋게 집으로 돌아가다가, 그림처럼 그곳에 앉아있던 밤이를 만날 일도 없었을까,라고.

유독 바람이 세차게 불었던 날이었다. 어른 주먹만 했던 작은 노란 고양이와 딱 붙어 앉아서 그날의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가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던 녀석은 사실 나와는 초면이 아니었다. 대낮에도 사람들을 피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신기해서 그렇게 몇 번 보았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늘씬한 올블랙의 자태로 총총 걷는 모습이 참 이뻐서, 이름을 짓는다면 밤이가 좋겠어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키울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기억난다. 그렇지만 그건 길아이들을 볼 때 애묘인이라면 누구나 하는 생각이 아닌가. 특별할 건 없었다.

엄마는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사료포대에서 건사료를 한 움큼 집어 다시 그곳으로 나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밤이와 작은 아이는 모습을 감췄고 애가 타는 마음으로 걸으며 찾아다니니 바로 근처 슈퍼 가판대 밑에서 나오는 녀석을 발견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손짓하면서, 이리 와, 이리 와라고 말하니 신기하게도 엄마와 나를 종종 따라와서, 다행스럽게도 구석진 곳에서 사료를 먹일 수 있었다. 그런데 밤이는 사료에는 관심이 없었다.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엄마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애교를 피워댔다. 세찬 바람 소리 가운데도 녀석의 골골 거리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엄마는 꽤 감동한 눈치였다. 있는 힘껏 얼굴과 몸을 엄마 다리에 비벼댔다. 이런 애가 어떻게 길에서 살고 있지? 그러게, 사람을 너무 잘 따르네.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흘러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이 녀석이 졸졸졸 우리를 따라왔다. 현관문을 열었더니 현관까지 졸졸졸 들어오길래 그래서, 그냥 문을 닫아버렸다.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던 반달은 새벽에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에 놀라 밤이가 있는 현관 앞을 떠날 줄을 몰랐다. 내 방에 가둬놓으니 방문을 열고 나오기까지 했다. 그 상황이 너무 웃긴데 새벽이라 크게 웃을 수도 없었다. 엄마와 키득키득 웃으면서 스티로폼 박스에 방석을 깔아주고 큰 통에 사료를 듬뿍 넣은 후에 밤이를 내방으로 데려왔다. 나름 윤기가 흐른다고 생각했던 검은 털을 조심스럽게 만지니 생각만큼 매끄럽지 않았다. 온갖 바람에 실려왔을 그리고 살기 위해 치열하게 부대꼈을 세상의 먼지로 엉망이 된 밤이의 털을 만지작 거렸다. 순하고 소심한 밤이는 내 방안에 혼자 있었음에도 스티로폼 박스 밖으로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어떻게 하지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새벽 네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수업 후 부리나케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는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밤이가 너무 더러워 목욕을 시켰다고 했다. 반항 안 했어?라고 묻는데 워낙 순해서 얌전히 있었다고 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녀석의 조심스러운 눈길이 나를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사료를 한 움큼 주니 녀석은 사료 한입 먹고 나한테 와서 비비적거리고, 사료 한입 먹고, 부비적 거리고를 반복했다. 반달도 충분히 예쁘고 사랑스러운 고양이였지만 이렇게까지 무한한 신뢰를 받아본 적은 없어서 기분이 정말 얼떨떨했다. 발이 푹푹 꺼지는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기뻤지만, 또 불안하기도 했다. 내가 가진 것이 더 많았다면, 내가 조금 더 능력이 있었다면. 밤 이를 품에 안고 잠이 들었던 그날 밤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거의 하루종일 나가있기 때문에 내가 없는 그 시간 동안 밤이가 무엇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짐작할 수는 있었다. 반달은 밤이가 오고 난 후부터 사람 가족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끊은 듯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밤이만 졸졸 좇아 다니면서, 장난을 거는 건지, 시비를 거는 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들을 했다. 중요한 건 그게 어떤 관심인지 밤이에게는 그다지 상관이 없었단 것이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밤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내 침대 위에서 얌전히 보낸다고 했다. 달이가 암만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도, 깨물어봐도, 그저 가만히 있는단다.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와 방문을 닫으면 녀석은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얼굴만 쳐다봐줘도 골골거리기 일쑤였다. 놀러 왔던 친구 중 하나는 밤이를 보고 너무 일찍 철이든 어린아이 같다고 했다. 엄마는 눈칫밥 먹고 서글프게 살아야 했던 당신의 유년기가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 했다. 무뚝뚝하고 장난치기만 좋아하는 동생도 밤이와 친해지고 싶어 했다. 아무도 녀석을 싫어하거나 귀찮다 생각하지 않았지만, 무엇인지 모를 상처로 꽁꽁 닫혀있는 듯했던 밤이의 진짜 모습은, 아직 나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그런 나날들이었다. 달이는 밤이를, 밤이는 나를, 나는 밤이만 바라보는 달이를 졸졸 좇는 이상한 삼각관계였다.


새해의 마지막 날을 친구네 집에서 보냈다. 오랜만에 보는 동창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내일 집에 가자마자 밤이를 병원에 데려가야겠다 생각했다. 며칠 전 새벽에 심하게 구토를 했는데 난생 처음보는 이상한 덩어리들에 회충이 딸려 나왔었기 때문이다. 내가 없는 집에 있을 밤이 걱정에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급하게 돌아온 다음날 아침.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있어야 할 고양이들은 한 마리밖에 보이질 않았다. 달이는 밤이가 오고 난 뒤 처음으로 골골거리며 내 품과 다리에 몸을 비비적 거리며 종알종알 온갖 이야기들을 하느라 바빴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서 화를 냈다. 새벽에 가출했는데 돌아오질 않았단다.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집 밖으로 나와 밤이를 찾아 돌아다녔다. 대낮에 길냥이를 찾는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 줄을 알면서도, 무작정 찾아 돌아다녔다. 골목과 골목을, 건물틈과 건물틈을, 그러다 기적처럼 다시 만났다. 사람에게서 얻은 생선을 입에 물고 건물틈 사이로 숨어들어 허겁지겁 먹는 녀석을 캔으로 유혹했다. 벗어날까 두려워 녀석을 있는 힘껏 안고 집으로 달렸다. 달이 한테 미안했지만, 밤이를 그대로 다시 내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외출하고 돌아온 엄마는 지난밤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어떻게 화를 낼 수 있냐며 서운해했다. 밤이가 내가 없던 날 새벽 계속해서 구토를 했고, 그게 소화되지 않은 생선뼈였단 것과, 녀석이 버려놓은 이불을 손빨래하는 도중 잠깐 열린 문틈사이로 도망치듯 나갔다는 말이었다. 암만 매정해도 집으로 따라 들어온 산생물을 다시 내다 버리지 않는다고,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고, 계속해서 토하는 녀석에게 해줄 것이 없어 등을 쓸어주고 토닥거렸다고. 나는 자는 척하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여러 가지로 못난 집사이자, 정말 못난 딸이었다.


택시를 타고 찾아간 병원에서 특별히 아픈 곳은 없다는 검사결과를 듣고 안심하던 찰나, 달이의 한쪽눈에 심하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결막염의 이유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동안 특별히 내색은 안 했어도 밤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아 받았을 것이라는 수의사 선생님의 소견에 주책맞게도 눈물이 흘렀다. 반달은 정말 착하고 사랑스러운 매력이 넘치는 좋은 고양이고, 앞으로 여러 묘연이 찾아와도 잊을 수 없을 우리 가족의 첫 번째 고양이다. 엄마는 연신 더럽다 하면서도 달이 입에 입을 맞추고, 아빠는 집에 들어오면 달 이부터 찾는다. 관심 없어 보이는 것 같은 동생도 쉬는 날에는 옆에 찾아온 달이와 함께 내내 낮잠을 잔다. 반달을 계속해서 아프게 할 수 없었다. 비겁한 변명일지 몰라도, 나 역시 아직 무엇하나 제대로 결정된 것 없는 휴학생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고양이는 완벽히 현재에 충실한 생물이라는 이론이었다. 함께 장난감으로 놀고 싶어도 구석에서 바라만 보고 눈치 보던 밤이, 간식이 먹고 싶어도 선뜻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앉아 기다리는 밤이, 쓰읍하면서 손가락만 들어도 움찔하며 뒷걸음질 치는 밤이가, 녀석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평화와 안정으로 가득 찬 좋은 곳으로 가면 오로지 그 현재에 충실해 지금을 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기대였다. 사람이 가지는 그리움도 아쉬움도 결국에는 시간이 지나면 다 흐려지기 마련이니까. 그런 식으로 내 마음도 다스리며 천천히 녀석을 보낼 준비를 했다. 그럼에도 밤이가 내 팔에 자기 팔을 걸친 채 나를 바라보거나, 내 손을 그루밍해 주다 애교 있게 살짝살짝 깨무는 순간에는, 네게는 지금 이 순간도 충분히 행복한 것 아닐까 같은 이기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엄마는 계속해서 기도했고, 유난히 고양이들을 이뻐하는 친구는 종종 집에 찾아와 밤이 사진을 찍어주고, 나는 잠들기 전 매일 밤이에게 우리는 너를 버리는 게 아니라고, 더 좋은 곳으로 보내는 것뿐이라고 말해주었다.

중성화도 안된 한 살짜리 코숏임에도 불구하고 입양문의가 굉장히 많이 들어왔다. 신중하게 생각한 끝에 두 번째로 연락 준 분을 먼저 만나기로 했다. 사실 결혼하지 않은 직업 남성은 고양이를 입양 보내는 사람들이 가장 꺼려하는 대상이기도 했지만 그 역시 편견일 뿐이고 직접 만나보지 않으면 결코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노량진까지 밤이를 데리고 외출했다. 동행한 친구와 이동장을 번갈아 들고 집에 오는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사실 내가 하는 걱정의 대부분은 누구라도 예측할 수 없는 변수일뿐이었다. 연애든, 공부든, 직업이든, 가족이든, 스스로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삶이잖아. 그래서 나는 그냥 본능을 믿기로 했다.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몰라도, 밤이는 이동장 안에서 잠도 자지 않고 계속해서 밖을 보고 있었다. 밤이야, 눈이 와. 이게 눈이란 거야. 열차를 기다리면서 그렇게 말을 걸었다. 폭설에 이른 시각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틈에서도 밤이는 눈을 감지 않았다. 우리 손자도 고양이를 키우는데 참 이뻐. 앉아계시던 할아버지가 밤이를 계속해서 쳐다보셨다. 문득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기 복은 자기가 타고나는 거야. 밤이는 분명 어디 가서 든 사랑받을 고양이임에 분명했다.

그리고 달이는 포기를 모르는 고양이였다. 언제부턴가 깨물깨물에도 밤이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달이는 밤이를 그루밍해서 관심을 끌려 노력하곤 했다. 그럼에도 밤이는 돌부처처럼 가만히 누워있기만 했어서, 얘네 둘은 정말 친해지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새 집사가 될 분을 만나고 돌아오던 날부터 밤이는 달이를 그루밍해 주기 시작했다. 고양이 속내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고양이가 정말 똑똑하다는 것만큼은 알 것 같았다. 헤어지는 마당에 이렇게 사이좋게 굴면 어떡하니, 이미 마음정리를 다 했는데도 그런 모습에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밤이를 만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였다.



밤이가 떠나는 날에는 이상할 정도로 두 녀석 다 기운이 없었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알고 있구나, 싶었다. 빨간 리본을 사서 목에 메어주고 가족들과 돌아가면서 인사를 하고, 그렇게 친구와 함께 이동장을 들고 집을 나섰다. 너무 일찍 나와서 역사 안에서 어묵이랑 토스트도 먹고, 가는 길에는 스마트폰으로 십자말풀이도 했다. 그래도 마지막 인사정도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퇴근시간 신도림역에서 그런 걸 바라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었던 거다. 시끌시끌한 역사 안에서 급하게 밤이를 보내고,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니, 막상 정말로 밤이를 보내주고 오는 그 여정에 현실감각이 전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헤어지기 전까지 한 번이라도 더 안아주고 만져주고 눈인사해줬어야 했는데, 설마 밤이가 상처받을까 싶었다. 그날 밤 달이는 쉴 새 없이 현관문 앞과 밤이가 늘 앉아있던 내방 침대를 왔다 갔다 하면서 밤이를 찾았다. 가끔은 내게 다가와 울기도 했다. 어디 있어? 어디로 갔어? 묻는 듯한 울음에 말없이 달 이를 안고 토닥여주기만 했다. 그렇게 끝이었다. 정말로, 밤이는 갔다.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커피집 식구들도, 친구들도, 가족들도 다들 밤이의 안부를 물었다. 새 집사님이 보내주신 사진을 돌려보면서 각자 스스로의 밤이를 추억했을 것이다. 밤이 그냥 우리가 키울까?라고 슬쩍 흘렸던 아빠도, 밤이가 가고 나서야 참았던 눈물을 터트린 맘 약한 엄마도, 술 먹고 들어와서 뜬금없이 밤이 보고 싶다 말했던 동생도, 하루가 멀다 하고 집에 찾아와 아낌없는 애정을 주었던 친구도, 귀에 딱지가 얹을 정도로 고양이들 이야기를 들어준 커피집 식구들도, 각자의 마음속에 작든 크든 밤이가 담겨있을 터였다.

추억엔 아무런 힘이 없다지만, 현재가 행복하다면 추억 역시 늘 행복하게 남을 수는 있을 것이다. 침대에 눕기만 하면 나는 밤이 생각에 언제쯤 그만 울게 될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구슬펐던 밤이 울음소리와, 밤이의 촉감, 밤이의 눈을 언젠가는 행복하게 회상하게 될 수 있겠지. 밤이 와의 현실에 충실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니까. 정말 이렇게 어른이 되나 보다. 그래,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한다는 건 이런 거야, 괜히 남녀상열지사를 대입해 본다. 이렇게, 밤이 와 우리가 보낸 한 달간의 밤의 관한 이야기, 여기까지다.


에필로그
10여 년 전 철없던 초보 집사였던 저와, 아직도 매일 그리운 밤이의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밤이는 입양 간 곳에서 들깨라는 고등어 고양이와 행복히 지내다, 많이 아프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집사님 부부의 결혼식과 신혼여행까지 모두 지켜봐 준 뒤 고양이 별로 떠났니다.

작가의 이전글 달려라! 방탄 말고 바로 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