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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Nov 21. 2023

아이돌 생일 벽보라고 들어봤니?

어느 ADHD 국어 강사의, (어른) 아이들을 위한 귀띔

22.06.15



때는 중간고사 시험 전, 쉬는 시간 A고 아이들이랑 수다 떨다가, B랑 C가 아이돌이 유일한 낙이라길래, 그런데 아마 말은 안 해도 다른 친구들도 그렇겠지?

샘은 정확히 12살부터 덕질을 시작했는데, 그땐 오빠들 생일에 학교에 새벽같이 나가서 풍선색 생일 축하 벽보를 100장씩 붙이고, 반마다 돌아다니면서 우리 오빠 생일이랑 번호가 똑같은 아이에게 풍선색이랑 똑같은 사탕을 주는 전통이 있었지. (언제 적 사람이니 도대체)
우리 오빠가 대상을 못 받은 건 방송국과 타 기획사의 음모라며 1월 1일을 방에서 눈물로 꺼이꺼이 밤을 새운 적도 많았단다. 드림 콘서트에서 팬덤끼리 싸움 났다는 근거 없는 괴소문에 방구석에서 급발진도 많이 했지.
 대학 들어가서는 음악방송 사녹도 가고, 굿즈랑 앨범 산다고 아르바이트비를  쏟아붓고, 사인회 간다고 생전 처음 가보는 도시도 혼자 가보고, 라인 투표도 열심히 하고 지금 너희처럼 스밍도 매일 열심히 돌렸단다.


지금은 일만 하는 파워노잼러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품은 아이돌 한 명씩은 누구든 있기 마련이지!

지민이에 대한 샘의 애정은 유구한 역사(?)를 지녔단다.
10여 년 전(도대체 언제 적이냐고요....) 당시 무대 영상 디자인을 하던 지인의 집에 놀러 갔다가, 방탄이 요새 참 잘한다더라 하면서 무대를 보여줬는데,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가사는 유치하고 노래는 정신없고, 슬쩍 곁눈질로 대충보고 내가 선물로 사간 꽃을 빨리 화병에 담아두고 싶었던지라 꽃손질에 여념이 없었지.


그러던 어느 날 뮤비도 아니도 무대도 아니고, 무대 연습영상을 아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얼굴도 가늠 안 되는 풀샷 속 수많은 멤버들 중에 유난히 한 명이 튀는 게 아니겠니?  다른 연습 영상을 봐도 한 명이 튀고, 또 다른 영상을 봐도 한 명만 보이는데, 알고 보니 그게 모두 지민이었단다. (그때가 노몰드림, N.O 시절이니까, 약간.. 구전설화 같은데 지금?)


여하튼, 샘이 지민이를 좋아하게 된 건 얼굴이 아니었다. (니키 리 선생님 패러디)

예전에 D고 수업 시간에 말한 적이 있는 이야기인데. 얘들아, 공부가 안돼서 힘들면 나가서 바람을 쐴게 아니라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고 소리를 지르든 울든 버텨야 한단다. 한두 시간 울고 나면, 개운해지면서 글씨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거든. 너희들 중 공부가 재미있는 친구가 누가 있겠니? 그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없다면 한계치까지 공부해 본 적이 없는 친구지. 샘은 열정을 갖거나 꿈을 꾸라고 말하는 게 아니란다. 샘을 포함한 세상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력을 노력부터 해야 하는 평범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공부하기 전에 노력하는 연습부터 해야 하는 거지. 과하지 않은 스트레스는 사람을 성장시키고,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것은 삶을 산다는 증거란다. 삶은 원래 고통이고, 행복은 순간이야.

그런데 이상하게 샘 눈에는 지민이의 노력이 보이더구나. 데뷔 초에는 지금 같은 이미지는 아니었고 엄청 잘 웃었고 장난도 잘 쳤고, 그냥 어렸고 악동 같았고 사투리도 남아있고 멤버몰이 당하는 귀염상 아이돌이었는데도 이상하게 노력을 노력하고, 늘 과하게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법을 모르고 그냥 쌓아두던 그 이면의 모습이 보이더라고.

살면서 지켜보니, 성공한 사람들은 늘 내 그릇보다 내가 커져버리는 순간을 한 번씩 겪던데, 이제는 더더 멀어진 방탄을 보면서, 샘은 지민이를 생각하며 지민이가 잘 버텨주기를, 즐기는 삶을 살기를, 행복하기를 바라지.

너희들이 가장 많이 하는 오해는 아마도, '선생님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를 좋아할 것이다'겠지? 그런데 정말 전혀 상관이 없단다. 너희 성적이 좋으면 너희한테나 좋지 그게  결과적으로 사실은, 나랑 무슨 상관이겠니.

다만 '노력을 노력하는' 친구들은 샘에게 굉장한 영감과 에너지를 주는데, 자주 오지 않는 그 찰나의 감동이, 일만 하며 사는 이 파워노잼러의 삶을  대유잼으로 만들어주지. 영혼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니, 감격스러운 일이야.

두 번째 시험이 다가오는구나, 얘들아.
몇 분만이라도 고요히 돌이켜 생각해 보렴.
난 중간고사 때 노력을 노력했는지.
기말이 끝난 뒤의 난 개운할지, 혹은 찝찝할지.

덕질로 시작해서 결국 또 잔소리로 끝났네.
나름 괜찮은 빌드업?

늘 6시간씩은 자야 해. 수업 때 보자.



지금은 환승한, 지조(지금 좋으면 됨) 있는 지연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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