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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Nov 20. 2023

김정민 씨가 맡긴 돈봉투의 정체

삶의 99%가 일인 한 국어강사의 '1%'

22.10.21

9월 연휴에 집에 들렀던 이후로 저번 주말까지 집에 가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엄마는 기저질환자인데 코로나에 걸렸었고, 아빠는 암이 재발해서 수술도 하시고, 응급실 왔다 갔다 하시고) 그 와중에도 오랜만에 온 딸이 집에서 라면만 먹고 갔다고 걱정을 한다. 혼자 살면서 제일 안 먹는 음식이라 엄청 먹고 싶었을 뿐인데. 하룻밤 자고 눈곱만 겨우 떼고 다시 돌어가려다가, 너무 지쳐서 그냥 거실 바닥에 앉아서 멍 때리는데, 엄마가 무슨 할 말이 있냐고 한다. 연락 한 번 없다가 한 번 왔다 가니까 뭔가 얘가 말 못 하는 걱정이 있냐햐고. 그러면서 엄마 비상금 너한테 맡긴다면서 이번에도 돈뭉치를 준다. 통장 만들어서 넣어놨지? 웅. 근데 사실 은행 가는 거 귀찮아서 저렇게 봉투채로 모니터 앞에 둔 지가 어언 두어 달. 봉투는 점점 빵빵해진다. 엄마가 묻는다. 내년에 대학원 갈 거지? 간다며. 아 근데 모르겠네. 너무 일이 많아. 그럼 그냥 선봐서 결혼이나 하라고 하길래 후다닥 둘째한테 인사하고 집을 나왔다. 매일 밤, 새벽, 어쩔 땐 동틀 때까지 작업을 하면서 종종 저 돈봉투를 본다. 저건 진짜 '엄마'의 비상금이 맞을까. 당신의 삶에는 전화 한 통 안 하는 인정머리 없는 딸에게 줄 애정이 있을 여유가 없었음을 안다. 엄마의 사랑은 무서울 정도로 무한하다. 온갖 조건과 욕구가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이상할 정도로 이상적이다. 고작 건조기 한대 사준걸로는 퉁칠 수가 없는 기형적인 관계다. 자식은 절대로 부모가 주는 것만큼의 사랑을 부모에게 줄 수 없구나. 이건 애초에 불공평한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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