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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Sep 17. 2024

온갖 곳에 빗물과 흙탕물이

그러니 젊은이들아, 청춘을 즐겨라. 네 청춘이 가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겨라. 가고 싶은 데 가고, 보고 싶은 것을 보아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을 재판에 붙이시리라는 것만은 명심하여라. 젊은도 검은 머리도 물거품 같은 것, 네 마음에서 걱정을 떨쳐버리고 네 몸에서 고통스러운 일을 흘려 버려라.


전도서 11:9-10 (공동번역에서 인용함)


목요일 오전. 사무실에 출근하기 위해 우산을 챙겨서 집을 나선다. 아침부터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어서, 일찌감치 우산을 챙겨가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우산을 펼치고 빗줄기 속을 뚫고 걸어간다. 아파트의 지하 1층 주차장을 지나고, 차양막 아래를 걸어가면서 우산을 접지 않고 그대로 펼친다. 길을 따라서 횡단보도 앞까지 도착해서, 잠시 멈춰선다.

빗줄기가 거세서 장마 기간에 우산을 쓰고 다녔던 기억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부력을 받아 위로 올라온다. 2022년 장마철도 매우 힘들었고, 그 때는 구청에서 주야로 근무를 해야 되는 입장이라서 장마철이 더 힘들게 느껴졌다. 매번 일이 끝나고 나면 우산을 쓰고 앞마당에 있는 주차장까지 갔다. 시동을 켜고, 아침 9시에 나오는 93.1 클래식 FM을 들으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며 쌩쌩 달려가던 자동차들, 택시도 생각이 난다. 사고가 나지 않을까 내가 대신 걱정했다. 나는 비 오는 날이면 속도를 20% 줄여서 운전하는 습관이 있어서, 빨리 달려가던 차들의 속도가 더 빠르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빨리 달려간다고 해서 집에 일찍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횡단보도를 대각선으로 건너서 아파트 단지 옆으로 길게 나 있는 인도를 걸어간다. 인근에는 이미 물이 불어나 있어서, 오목하게 홈이 파인 곳곳으로 빗물이 모여 있다. 빗물의 색은 어둡다. 그리고 화단에서 나온 흙탕물이 개울처럼 흘러서 보도블럭을 깐 곳에서 아직 보수가 되지 않은 '가장 낮은 곳'에 흙탕물이 고여 있다. 이 아파트 주민들은 상가 앞쪽으로 안 다녀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해 본다. 나라면 흙탕물이 고이는 곳에 있는 보도블럭을 교체해 달라고 했을 텐데. 참 신기하다.

흙탕물을 눈으로 보며 피해서 간다. 요리조리 피해서 걸어가지만 이미 신발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흠뻑 젖었다. 젖은 채로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서 건너편으로 걸어간다. 아파트 단지 내부에도 여러 곳들이, 울퉁불퉁하게 석재가 깔려 있는 곳 위로 빗물이 흘러가고 있어서 그것을 눈으로 보며 걷는 것도 일이다.


올해 장마철도 돌아보면 힘들었다. 역대급으로 폭염이 온 해라서 장마철 전에는 더위를 피하느라 힘이 들었고, 본격적으로 장마철에 접어들었을 때는 매일 우산을 챙겨서 다니느라 힘들었다. 다군다나 일본으로 거처를 옮기는 동안 피아트 자동차를 팔아버렸기 때문에 올해는 차도 없이 여러 곳을 돌아다녀야 했다. 그래서 약속을 줄이고, 집과 사무실과 도서관을 왔다갔다했다. 번역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 외에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갔지만, 교회 다닐 때는 신기하게도 비가 안 내렸다.

조경관리를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모르겠는 이 아파트 내부에는 땅과 보도블럭 등, 곳곳에 빗물이 고여있고, 화단에는 흙탕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나는 피해서 걷는 것만 해도 열심이라서 도무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관리를 하시는 분처럼 보이는ー우비를 입고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있는ー할아버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낙엽이나 생활 쓰레기를 쓸어담아서 버리기 위해서 나온 것이리라. 내 아파트는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도 "감사합니다"라는 인사가 입에서 나왔다. 할아버지는 웃었다. 내가 빠르게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할아버지는 정리를 하고 있었다. 빗물을 쓸어내기는 어렵겠지만, 관리를 해 주시는 분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후문으로 나와서 차도를 지나서 역 방향으로 걸어갔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친절하지 않다는 것에 반성해야겠다는 마음이 든 것도 최근의 일이다. 예전에는,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위에서 만나는 익명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못 드렸다. 왜 인사를 하지 못했나 돌이켜 보면, 그 전에 있었던 경험들이나 교우관계가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고, 위축시켰던 것이 인사를 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던 걸로 이해한다. 그 뒤로는 평범하게 살면서 잘 지내기 위해서 노력했다. 다만 이것이 내 성격을 바꾸는 결과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성숙해지는 결과로만 이어졌다. 나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과연 나는 레비나스의 말처럼, "나 자신으로부터 탈출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그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역 앞 사거리까지 와서 살펴보니까, 여기서도 빗물이 차도의 가장자리에 고여 있어서 횡단보도를 건너가기 위해서는 눈을 감고 뛰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신발도 젖었고, 팔 소매도 젖어 있다. 이제와서 빗물을 밟고 가는 게 어떻겠냐는 생각으로 좌고우면하지 않고 걸었다. 첨벙거리는 발소리가 크게 들린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자리를 지키고 계신 분과 인사를 나누고,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방에 들어와서 보니, 발이 흠뻑 젖어서 당장이라도 양말을 벗고 싶어진다. 가방도 젖어서 안에 있는 책들이 살짝 젖어있고, 공책도 정상이 아니다. 흐물흐물해진 공책을 원상 복구하고 나중에 쓰기 위해서 180도로 펼쳐 두었다. 180도로 펼쳐 두면 나중에 마른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건조한 사무실에서는 아마도 잘 마를 것이다.


세상에 대한 여러 가지 말들이 떠오른다. 세상은 돌아간다.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반대 방향으로 역행하기도 한다.

"남쪽으로 불어 갔다 북쪽으로 돌아오는 바람은 돌고 돌아 제 자리로 돌아온다.

모든 강이 바다로 흘러 드는데 바다는 넘치는 일이 없구나. 강물은 떠났던 곳으로 돌아가서 다시 흘러 내리는 것을."

구약성서 중 『전도서』라는, 솔로몬 왕이 썼다고 전해지는 책이 있다. 『전도서』의 말씀대로 이 세상에서 영원한 대상은 하나도 없으므로, 인간의 노력이란 참 부질없기도 하다. 그리고 자연의 순리대로 비를 내리고, 태풍이 휘몰아치고, 눈이 내린다.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라는 질문만큼 중요한 질문도 없지만, 우리는 그저 흙탕물을 잘 피해서 신발이 젖지 않도록 걸어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온갖 곳에 빗물과 흙탕물이 가득하다. 인간이 안심하고 발을 디딜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보일 때는, 각자의 판단이 중요해진다. 그러나 각자의 판단이 전부는 아니다. 서로 도와야 하고, 부족한 부분은 관리를 해야 한다. 소수를 제외한 사람들에게 이번 연휴는 어려움이 있는, 집안일 하느라 고단한 연휴겠지만, 그럼에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들불처럼 번지는 희망과 소망이 있어, 그 소망들이 하나도 빼 놓지 않고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2024년 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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