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이피 Jan 29. 2024

일대기

 벌써 14년이나 되었네. 9살 때 왔으니 말이야. 무주의 첫 인상이 제일 기억에 남아. 무주에 살면서 어리고 세상 순수했던 동네 친구들이 전부였어.  막대 사탕 하나를 나눠먹는 친구들의 모습이 조금 충격이었어. 그것도 깨트려 먹는 것이 아닌 막대 있는 그대로. 온 지 몇일 지나지 않아 한 친구가 생일이라 길래 급하게 선물을 준비해야 했어. 시골이라 문구점도 없고 기껏해봐야 동네 마트가 전부였거든. 그땐 편의점도 없었어. 친구의 생일 스케줄은 친구들과 계곡에서 수영하고 친구 집에서 갈비를 먹는 거였어. 엄마랑 한참 고민을 하다 동네 마트에 파는 2만원 짜리 돌고래 튜브를 사주기로 했어. 거의 엄마의 선택이었지. 난 사실 속으로 걱정을 많이 했어. 


 전에 살았던 곳의 도시 친구들은 기깔나는 선물 포장지에 정성스럽게 적은 편지까지 담아서 줬거든. 레스토랑 하나를 빌려서 잔치를 열면 초대 친구들에게 수금하듯이 온 갖 선물을 받는 문화가 있었어. 웃긴 건 선물을 준비하지 않으면 그 잔치에 초대받지 못했어. 난 그게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래. 난 초대 받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던 거야. 그게 좀 상처였지. 왜냐면 난 돈이 없었거든. 초등학생 1학년짜리가 그 비싼 닌텐도 칩과 장난감을 어떻게 선물하겠어. 그래서 난 그 2만원 짜리 돌고래 튜브를 고르고 걱정한 거야. "이 친구가 자기 집으로 초대해줬는데 이 정도로 괜찮은 걸까?" 


 내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그 친구는 너무 좋아했어. 그제서야 안심했지. 다른 친구들은 어떤 선물을 준비했을까. 과자 한 봉지. 심지어 밥을 먹고 선물한 그 과자는 본인이 까 먹었어. 선물을 가져오지 않은 친구들도 대부분 이었어. 난 이 동네 친구들이 너무나 순수하고 착하다고 그 때 느꼈어. 천사같은 아이들. 무게를 재지 않는 아이들. 아름다운 우정은 돈으로 살 수 없구나 알았지. 그렇게 초등학교 2학년에 만난 친구들이 이제는 다 성인이 되었어. 각자 사회에 나가 갈 길을 걷고 있어. 내가 보기에 30년이 지나도 지금 이 자리에 다같이 모여 앉아있을 것 같아. 내 나이 50대에 "40년 전 그 땐 그랬었지." 하면서 말이야. 얼마나 지겨울까. 대한민국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무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 이민을 갈 수도 있는거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친구들에겐 정말 고마워. 난 아직 그런 추억을 잊지 못했는데 너희들도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초등학교 건물 전체를 뛰어다니며 숨박꼭질 하던 거, 교시가 끝나면 미술 방과후 하던 거.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야. 너희들과 수영하고 아이스크림 사먹고, 같이 동네 수학 학원 다니고, 중학생이 된 후로 작은 동네에서 대학 좀 보내 보겠다고 영어과외를 팀짜서 다니고 했던 거 모두. 나는 너무 즐거웠단다. 그 다섯 명에서 무슨 경쟁을 하겠다고 학구열에 불타올라 그렇게 열심히 했는지. 선생님 칭찬 한번 듣겠다고 영어 빽빽이를 세상에. 말도 못하게 많이 적었지. 난 그때 내가 공부를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선생님이지만 지금은 동네 아줌마의 칭찬이 너무 고파서 영어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거든. 한 번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더라. 그저 서울에 대한 동경심에 공부를 한 것 같아. 무주를 언젠간 떠난다는 두려움 반, 설렘 반. 기왕 나가는 거 최대한 큰 도시로 가자는 생각이 컸어. 


 그렇게 서울에 있는 학교에 들어와 한 거라곤 논 것 밖에 없어. 새내기라고 술에 찌들어 살고 싶지는 않았어. 내 관심사를 깊게 파고들기로 작정했어. 아무런 생각없이 학생이란 신분으로 공부만 했었던 그 시간에 대한 보상이었거든. 우선 날 좀 꾸미기로 했어. 한 번도 꾸며 본 적 없지만 왠지 모르게 난 자신있었어. 확실하게 달라질 거라는 자기 확신이 있었어. 그렇게 옷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이제는 내면도 챙기는 멋진 어른으로 거듭나는 중이야. 이 정도로 꾸미는 걸 좋아하는 내가 학창시절 사진이 별로 없는 걸 보아하니 다 이유가 있었던 거야. 그때에 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야. 성격 어디하나 못 나지 않아서 다행이지. 삐뚤어진 성격의 소유자였다면 난 아마 친구가 없었을지도 몰라. 


 사실 그 때가 그립기도 해. 오히려 지금 남들의 시선을 훨씬 많이 느껴.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는 걸 아는데도 말이야. 가끔 희안하게 코디한 날에는 힐끔힐끔 쳐다보기도 해. 난 그 시선을 느끼는데 즐기긴 보단 괜히 부담스러워. "왜 쳐다보지?"라는 생각부터 들어. 지금은 군대에서 옷 잘 입는 깍쟁이 상병 박재현이란 소릴 듣지만 사실 난 시골촌뜨기 출신이고 본가에 가면 버섯 따서 샤브샤브해 먹고, 겨울에는 나무패서 불 피우고 차 끓여 먹는 촌놈이야. 언제부터 내가 르메르 사 입고 한남동가서 줄줄이 다 입어보고 다녔지? 난 그냥 주는 옷 입고 심지어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장에서 산 초록패딩은 아까워서 지금도 안 버렸어. 


 난 원래 그런게 익숙한 사람이야. 날 것의 느낌대로 사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부터 아니게 되었어. 선크림 한 번 바른 적 없는 무식한 학생이 이제는 향수에 집착해. 참으로 웃기지.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해보니 별 게 없다고 느껴져. 모든게 결핍이었다고 생각이들어. 안 해본 것에 대한 결핍. 그러니 원하는게 있으면 그냥 해보면 되는거 였어. "내가 누구누구처럼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잘 안 해봤던 것 같아.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남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어. 나의 것을 보지 못하고 타인의 것에 더 욕심내고 있었어. 그렇게 나를 깎아 내리고 있었어. 날 것의 느낌대로 살았던 그때로 다시 돌아갈거야. 살면서 더 본질적으로 중요한 걸 추구하려고. 밀라논나 선생님 말씀처럼 물질적인 가치말고 진짜 내 인생의 본질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찾아봐야겠어. 그게 사랑이라면 사랑하겠어. 


100세...아침에 눈뜨면 성공


작가의 이전글 FLEUR DE PEAU [플레르 드 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