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이피 Nov 23. 2023

Dear Sir or Madam


그리 진지하지는 않은 글입니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이 글을 상대가 읽었을 때 12월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노래를 들으며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악으로 분위기 전환을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거운 글이 되지 않게 말입니다. 좋아하시는 연말 곡들을 들으며 감상해 주세요.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아리아나 그란데' 노래모음집을 들으며 이 글을 적었습니다. ㅎㅎ (낭낭한 사운드가 연말에 특히 저를 넘 설레게 합니다.)  




  좀 괜찮은 글을 적어야겠다 싶으면 두어시간 동안 도무지 펜이 굴러가지 않는다. 정말이지 몸이 경직되어 바깥의 햇빛을 쫴지 않으면 이야깃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나에게 글을 적어내는 일은 결국 소장해 온 순간을 소개하는 일이며, 나의 사색을 공유하고, 깊이감이 느껴진다, 아니다, 나도 사색에 잠긴다, 그 안에 내용이 좋다, 교훈이 있다 등의 식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를 활자로 늘어놓는 일이다. 글을 적어 내는 모든 이가 작가라고 불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작가에게만 요구되는 고독하고 섹시한 사명이 분명히 존재해서 아닐까. 평범한 일상을 보내면서도 창작자만의 세밀하고 독창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의식이 필요하다. 동시에 자기감정에 솔직하게 다가간다. 그때의 감정을 잘 기억해 둬야 한다. 나에겐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굽힐 줄 아는 갈대의 습성을 지닌 사람이라 해도 거센 바람에 단번에 꺾일 수 있는 법이다. 작가도 사람인 지라 초라한 자기 모습을 직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라한 속에서 자신의 것을 지켜내는 태도는 잃지 않는다. 거센 바람에도 나는 여전히 씨앗을 내리고 있다는 자기 확신 아래 당당히 내딛는 용기 있는 태도. 그런 갈대 같은 사람이라면 자신을 신뢰하는 일에 오랫동안 지치지 않는 기세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지맥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글과 삶은 분명 찬란해 보일 것이다. 


  나에게 하는 말이지만, 단순히 잘 쓰인 글을 편집하여 예쁜 표지에 감성적인 폰트로 책을 내고 작가라는 말이 듣고 싶어서라면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책과 글이 세상을 바꾸긴 힘들지만, 누군가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선사할 수 있는 일이라 믿고 싶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이라면 신중해야 하는 법이니깐. 나 따위가 감히 다른 이에게 낭만이란 걸 선사할 수 있을까. 글쓴이와 독자 사이의 뉘앙스는 '우리'이어야 할 것이다. 같은 행성, 같은 시간 살아가는 우리는 공동체 관계에 놓여있지 않은가. 단순히 글을 통해 충고나 교훈을 선사하고 싶어 적는 글은 아니다. 그런 건 유튜브만 들어가도 수두룩하다.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고 또 다른 내 모습을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이 아닐까. '나'라는 존재, 스스로도 돌보기 어려운데 내가 누군가를 챙길 수가 있는 걸까. 같은 하늘 아래 각자 다르게 살아가는 모습과 경험을 공유하는 게 좋은 마음 뿐이다. 인생에 명료한 해답을 찾는 건 결국 제 몫이다. 


  음식을 만들 때는 굉장히 까다로운 단계를 거친다. 눈이 매워도 계속해서 재료를 손질해야 하고, 뜨거운 팬에 손이 데도 계속해서 타지 않게 볶아주어야 한다. 공을 들였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망쳐버릴 수도 있다.  셰프가 요리하는 일이 즐겁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글쓰기가 즐겁다고 말하는 작가의 말도 그건 거짓말이다. 실력있는 요리사라면 자신이 만든 요리의 맛과 향, 담음새,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 애정을 가져야 성장할 수 있다. 작가 또한 자신이 완성한 글을 완벽히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온종일 적은 글이 결국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일, 중지에 배긴 노란 굳은살, 이 모든 일을 견디고 어마어마한 노고와 에너지가 얼마나 더 필요할지 모르는 힘겨운 인내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니 잘 쓴 글은 한 번에 나오지 않는 법이다. 몇천 번이고 썼던 문장을 다시 쓰는 일이다. 그러니 함부로 작가라고 떠들고 다닐 수 없는 형편이다. 글쓰기가 나에게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거다. 


TO. 사랑하는 이들에게

 안녕하세요. 제가 사랑하는 여러분. 이 글을 읽게 되셨으니 어느 정도는 저를 아실 거란 생각이 듭니다. 평소에 저는 말이 많지는 않습니다. 제가 하는 대부분의 말들은 진심인 말들입니다. 필터링을 중요시하거든요. 그러니 저 또한 그런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저는 낭만이 소중한 사람입니다. 오늘도 단순히 말에 그치지 않고 하루를 낭만 있게 살아가려 애쓴 하루입니다. 그리고 전 여러분의 낭만이 궁금합니다. 저에게 낭만이란 힘든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최고의 친구입니다. 누구보다 저를 가장 잘 위로해 줍니다. 지친 마음을 토닥여 주며 살아갈 힘을 선사합니다. 낭만이 있으려면 저에겐 빛이 중요합니다. 따뜻한 햇빛이 아래 귀중한 시간에 드라이브도 좋고요. 고즈넉한 이른 아침에 안개에 갈린 잿빛 하늘도 가끔은 낭만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제가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날은 제가 좋은 사람이기에 좋은 날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도 좋은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그런 멋진 어른아이입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찬란한 일상을 보내려 합니다. 동시에 찬란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 일상에서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보이지 않는 행복 모멘트가 있습니다. 그걸 잡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자신을 알아가는 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행복하게 산다는 건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사는 게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냥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의 영혼은 우주보다 고귀합니다. 그만큼 소중하고 고귀한 자신에게 좋은 선물을 해주며 살고 계십니까. 요즘 들어 사는 게 별거 없다고 느껴집니다. 막 산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언제부턴가 제 하루의 목표가 "오늘도 나에게 좋은 걸 해주자."가 되었습니다. 스스로를 해코지하는 사람이 설령 있더라도 그들도 한 번쯤은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를 했을 겁니다. 요즘같이 개인이 중요해지고 더 각박해진 세상 속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자기자신 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을 저는 선망하겠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스스로가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 신념, 즉 '자기효능감'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참 뜻이 좋습니다. 누구를 탓할 수 없고 오로지 자기 뜻에 따라 결정하고 온전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의미의 단어. 저와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넘어 서로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서로에게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의 온도가 올라갔으면 합니다. 그 온기가 멀리멀리 퍼져 세상의 온도를 높였으면 좋겠습니다.    




 2023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많은 시간을 공들여 글을 적었습니다. 11월에 게시한 모든 글이 그 결과입니다. 삶, 사랑, 가족, 떨어져 있는 슬픔, 외로움, 평화, 미학, 진정한 어른이 되는 법에 대한 고찰을 많이 한 한 해를 보낸 것 같습니다. 2024년에는 제 머릿속에서 어떤 글들이 나올지 기대됩니다.  


 12월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지네요. 춥지만 소중한 사람들과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음악으로 귀가 즐겁고 사람 냄새로 코가 즐겁고 맛있는 술과 음식들로 입이 즐거운 12월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트리 전등 옆에서 빨간 목도리를 두를 수 있는 여러분이 저는 부럽습니다. 승자이십니다.ㅎㅎ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트 드릴게요. (잔망) 




작가의 이전글 옷장 속 방랑자를 위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