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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Dec 19. 2023

11. 안녕, 내 사랑

내가 사랑하는 버찌

2008년 1월 12일 토요일

우리 가족이 널 처음 만난 날이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동생은 3학년이었고 겨울방학이었다.

아직도 널 처음 본 날이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기고양이 3마리 중 넌 유달리 활발했다. 몸집은 작고, 갈색 털에 새카만 줄무늬가 있어 마치 새끼다람쥐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 널 구경하는데 갑자기 내 잠바에 달린 끈을 보고 내게 매달려서 그 끈을 가지고 놀았다. 그 순간 넌 우리 가족이 될 운명이라 생각했고 아빠도 널 안아보더니 너무 귀엽다고 했다. 그렇게 너는 박스에 담겨서 우리 집에 왔다. 이름은 널 데려오기 전, 고양이를 키울 거라고 결정되기도 전에 나와 동생이 미래의 고양이를 상상하며 이미 지어놨다. 그 이름이 "버찌"이다.


넌 성격이 꽤나 앙칼지고, 도도했지만 마음이 착했다. 게다가 굉장히 똑똑해서 무언가를 가르쳐주면 스펀지처럼 쏙 쏙 흡수했다. 예를 들어 닫혀있는 문을 여는 방법이라던가, 바뀐 화장실 위치를 딱 한 번만 보여주면 실수 없이 화장실을 가려 엄마에게 점수를 땄다. 그리고 소외당하는 걸 싫어해 가족끼리 식사를 하면 옆에서 같이 밥을 먹었고, 우리끼리 수다를 떨면 너도 우리 옆에 앉아 대화에 참여했다. 항상 빠짐없이 우리와 함께 했다. 게다가 튼튼하기는 얼마나 튼튼한지 병원 갈 일이 정기검진 외에는 없었다. 그러다 14살이 되던 해부터 조금씩 잔병치레가 있었다.


15살에는 1년간 고생한 안검내반 수술을 했다. 왜 진작 결단 내리지 못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아마도 나이가 많아 마취에 대한 두려움에 병원들도 쉽사리 수술을 권하지 않았고, 간에 큰 물혹도 있어 모두가 겁을 먹었던 것 같다. 중성화 수술 이후 첫 수술이었기에 나는 병원에 너를 맡기고 회사로 출근하며 걱정스러움에 지하철에서 울었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너는 마취에서 깨어나 맹수처럼 으르렁대며 날 반겼다. 너에겐 미안하지만 온갖 성질을 내는 널 보니 안심이 되어 웃음이 났다. 그렇게 나는 네가 20살까지는 거뜬히 살 줄 알았다.


올해 4월 건강검진을 받았고 결과는 나쁘지 않았었다. 오히려 혈액검사에서는 웬만한 어린 고양이보다 더 건강하다며 의사도 놀라워했었다. 그러다 8월에 갑자기 네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고, 말기함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되었다. 작년부터 병원을 자주 다녔기에 결과를 믿을 수가 없었고 네가 건강하다고 믿고 있었던, 더 큰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나 자신에게, 그리고 엑스레이와 초음파 검사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암이 배의 절반 크기만 해질 때까지 몰랐던 병원에 대한 분노가 솟구쳤다. 어떠한 시도도 해볼 수 없이 커져버린 암이 너의 뱃속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그 와중에 암을 발견하기 전 복수가 찼을 때 사료를 갑자기 바꿔 밥을 많이 먹던 널 보며 복수인 줄 모르고 밥을 많이 먹어 살이 찐 것 같다며 간식으로 달리기 놀이를 하고, 캣타워를 오르락 내리락하게 시킨 나 자신이 증오스러웠다. 바보같이 넌 간식이 좋다며 임신한 고양이처럼 배가 부른 상태에서 달리고 점프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 나름대로 우리에게 신호를 주고 있었다. 7월부터 잘 때마다 유난히 나에게 만져달라며 애교를 부렸고, 새벽에는 크게 울었었다. 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음을 느끼고 있었던 걸까? 이때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고, 죄책감이 내 목을 강하게 조른다. 너무 고통스럽다.


평생을 우리와 한 침대에 누워 찹쌀떡처럼 달라붙어 자던 너는 복수천자 이후부터 혼자 자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나는 서운해했었다. 참으로 못난 주인이다. 하루에 밥 4그릇도 가볍게 먹어치우던 너는 한 그릇도 제대로 먹지 못하게 되었고, 통통하고 말랑하던 뱃살은 사라진 채 뼈와 가죽만 붙어있었다. 호스피스 초반에는 몸 중심도 못 잡으면서 내가 아침에 일어나면 나에게 몸을 크게 휘청이며 다가와 반겼다. 넌 정말 우리밖에 몰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넌 더 아파졌다. 중간에 컨디션이 확 좋아진 적도 있어 잠시나마 희망을 품었지만, 그 희망의 씨앗이 싹을 틔우기도 전에 너는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마치 암은 중간에 안 아팠으니 당해보란 듯 널 더 괴롭혔다. 이날의 너를 떠올리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사실 찢어진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이렇게까지 큰 아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런데 그렇게 아프면서도 너는 만져주면 좋다고 골골송을 불렀고, 경이로운 정신력으로 버텼다. 나는 네가 고양이인 사실을 떠나 진심으로 그런 너를 존경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런 너를 보며 지난날의 나약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넌 마지막까지 내게 가르침을 주었다.


네가 떠나던 날 아침, 숨은 쉬지만 얼음장처럼 몸이 차갑고 뒷다리를 쓰지 못하는 걸 보며 불길한 예감이 떨쳐지지 않았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버찌가 너희 너무 힘들지 않게 하려고 마음의 준비를 할 동안 버티고 있고, 주변에 불편하지 않게 해 주려고 추석 연휴에 떠나려고 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이 한 말이면 별생각 없었겠지만 외할머니가 저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진짜 그렇게 될 것 같은 마음에 저 말을 들은 날 눈물을 흘렸었다. 그리고 소름 돋게도 진짜 그렇게 되었다.


그날의 기억은 너무나도 끔찍하고 잔인하다. 종양이 안에서 터졌는지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양의 토를 엄청나게 했다. 그런 널 보며 나는 바보같이 손발만 덜덜 떨었고, 토사물은 베란다 전체를 뒤덮었다. 우리는 그때 알았다. 오늘이 너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그렇게 쉴 새 없이 구토를 하며 3번의 기침을 하고 너는 떠나버렸다. 우리는 믿을 수 없어 네 이름을 계속 불렀고, 네 몸에 귀를 가져다 대어 심장소리를 확인했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우리는 절규했다.


네 눈은 아름다운 민트색에서 황달로 인해 노란색으로 변해있었다. 나는 그런 너의 눈을 감겨주었다. 토사물에 더럽혀진 널 들어 올려 깨끗한 곳에 올렸고, 젖은 손수건으로 몸 구석구석 깨끗이 닦아줬다. 그리고 푹신한 담요 위에 눕혀주었다. 이미 숨이 멈춘 널 어루만지며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네 털에 코를 박고 너의 고소한 체취를 맡았다. 나의 사랑스러운 고양이. 너는 마지막까지 정말 예뻤다. 고통스럽게 떠났지만 마지막 모습은 편안히 잠에 든듯한 모습이었다. 너도 많이 힘들어서 이젠 쉬고 싶었나 보다.


마음을 진정시킨 후 미리 알아봐 둔 장례식장에 전화를 했다. 너의 장례식에 우리 가족 6명 전원 참석했다. 장례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너와의 마지막 인사를 나눈 시간이 잊히질 않는다. 꽃 자수가 새겨진 요람에 누워 너는 정말 잠에 든듯한 모습이었다. 정말 아늑하고 편안해 보였다. 지금 생각해도 요람을 해준 것은 정말 잘한 것 같다. 우리 가족은 한 명씩 돌아가며 너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추모실 안은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난 너에게 인사를 하며 쓰다듬고 마지막 입맞춤을 하였다. "사랑하는 우리 아기. 우리 가족이 되어줘서 정말 고마워. 너무 사랑해."

마지막에 헌화를 할 때 가족이 많아 네 몸 위로 수북하게 쌓인 국화를 보며 큰 사랑을 받으며 떠난 것 같아 마음이 괜스레 놓였다. 화장하기 전, 네가 아파도 마지막까지 반응했던 장난감 하나와 함께 화장해 달라고 부탁했다. 1시간 정도의 화장이 끝나고, 분골 전 유골을 확인했는데 널 괴롭히던 암은 불에 타 전부 사라졌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까지 속이 시원해졌다. 이제 널 괴롭히던 건 모두 없어졌다. 더 이상 아프지 말고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렴!


가족들과 장례 과정을 하나하나 함께하며 매우 큰 위로가 되었다. 함께 울고 웃으며 널 보내주었다. 마지막에 한 줌의 재가 되어 우리에게 온 너는 예쁜 보자기에 싸여있었다. 이제 네가 진짜 떠났음을 체감하여 눈물이 났다. 그런데 장례지도사님께서 너의 사진이 너무 귀엽다며 한 장을 액자로 제작해 선물해 주셨다. 너무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왈칵 났다. 버찌 너는 마지막까지 정말 사랑받는 고양이었다.


너의 유골은 산에 묻혔다. 아빠가 3군데 정도 후보지를 찾아두었는데 최종적으로 햇빛이 잘 들고, 토질이 좋은 산으로 결정되었다. 넌 일광욕을 좋아했으니 이 산에 아주 잘 맞았다. 네 유골을 땅 구덩이에 넣고 한 명씩 돌아가며 흙을 한 줌씩 뿌려주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때까지 미련이 남아있던 나는 너의 위로 흙을 뿌리며 진짜 마지막이라는 사실에 흐느꼈다. 그러다 아파서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와중에 내가 울며 코를 훌쩍이면 고개를 들어 쳐다보던 네가 생각나 급히 마음을 진정시켰다.

널 묻는데 아빠가 어디서 새끼소나무를 찾아와 그걸 네 위에 심어줬다. 그리고 다 같이 네 무덤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정성껏 밟아주었다. 남동생은 노래도 불러주었다. 덕분에 슬펐던 마음이 조금은 가시며 웃음이 났다. 널 다 묻어주고 하늘을 보니 미세먼지로 가득했던 하늘이 맑고 깨끗해져 있었다. 하늘도 널 애도해 주는 듯했다. 네 앞에서 엄마와 이야기를 잠깐 나누는데 갑자기 어디서 호랑나비가 날아왔다. 그러더니 우리 주변을 몇 바퀴 돌고 떠나갔다. 엄마는 네가 나비로 변해 인사하러 찾아온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널 보내주고 집에 돌아오니 네 냄새가 났다. 아팠을 때 입에서 냄새가 많이 났던 너. 우리는 사랑에 눈이 멀었는지 그 냄새마저 나름 구수하고 귀엽다고 했었다. 네가 떠나서 더 힘들기 전에 물건을 많이 정리해 뒀더니 집이 휑했다. 너의 살림살이가 참 많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자기 전에 잘 자라는 인사를 할 네가, 아침에 일어나면 내 인기척에 깨어 날 반겨주던 네가, 베란다 문을 열면 나가고 싶어 안달 내는 네가 없었다. 바닥에는 아직도 네 화장실 모래가 굴러다녔다. 치운다고 치웠는데 어디선가 자꾸 굴러 나왔다. 너무 울면 네가 싫어할 텐데 이놈의 눈물은 멈추질 않는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큰 사랑을 줘본게 너 하나뿐이라 쉽지가 않다. 내 사랑, 내 전부. 넌 내게 동생, 친구이자 자식 같은 고양이었다. 그래서 이런 너의 이야기를 울지 않으며 할 수 있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벌써 보고 싶다.


거기에서는 아프지 말고 가벼워진 몸으로 행복하게 잘 지내. 우리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내가 보고 싶거든 언제든지 놀러와. 우리 가족과 함께 해줘서 정말 고맙고 사랑해.


이제 진짜 안녕, 내 사랑 버찌!


2008년 1월 12일에 만나, 2023년 9월 28일 가슴에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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