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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Dec 27. 2023

13. 물품 기부를 한 날

내가 사랑하는 버찌

2023년 10월 9일

오늘은 버찌의 물건을 기부한 날이다. 많은 것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눔했지만 캣타워와 남은 음식들은 유기묘 보호소에 기부하고 싶었다. 다행히 처음 문의한 집 근처 보호소에서 직접 가지러 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 집 복도에 묵혀있던 캣타워는 햇빛을 맞으며 바깥세상으로 나갔다. 아파트 입구 앞에서 전달하기로하여 남동생이 도와주러 왔는데 남동생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캣타워에 붙은 카페트 냄새를 맡았다.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물으니 마지막으로 버찌 냄새가 나는지 궁금하여 맡아보았다고 답했다. 큰 덩치의 성인 남자가 저런 말과 행동을 하니 갑자기 엄청 슬퍼져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집 앞에서 보호소 직원들을 만나 물건들을 전달하며 간단하게 설명해 드렸다. 버찌가 다 먹지 못한 채 남긴 음식들이 매우 많았는데, 건더기를 잘 먹지 못하여 미음 같은 습식 위주였다. 마침 보호소에 전발치를 하여 밥을 잘 못 먹는 애가 있는데 잘됐다며 좋아하는 봉사자를 보며 우리의 나눔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제 우리 집에는 버찌의 물건을 찾아볼 수 없다. 맨날 좁다고 불평했던 우리 집은 휑하니 넓어졌다. 무언가 공허하다. 나는 아직도 침대에 불을 끄고 누우면 버찌의 코골이 소리가 아주 잠깐씩 들린다. 그러면 버찌 사진을 조금 보다가 잠에 든다. 홀로 남은 초반에는 사진첩 제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사진을 보았는데, 보는 내내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이제는 그렇게까지 하진 않는다. 이제는 모두 추억이 되어버린 사진들. 버찌 사진으로 업데이트되지 않는 내 사진첩이 익숙하지 않다. 솔직히 아직도 버찌가 아파서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사진첩에 남겨진 버찌 사진을 보아도 마지막 일주일의 기간 외에는 모두 정상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제일 힘든 것은 행복하고 건강했던 시간이 훨씬 긴데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은 아팠던 모습이 더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떠나던 마지막 날 아침, 내 손길에 반응하며 아주 약하게 내 손에 얼굴을 비볐던 버찌의 뒤통수가 잊히질 않는다.

야속하게도 아직까지 버찌를 꿈에서 만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떠난 날 저녁에 꿈에 나왔다는데 내가 너무 울어서 그런 것일까? 그래서 꿈속에 모습을 비추는 대신 잠자는 소등시간에 맞춰 본인의 코골이 소리를 들려주러 오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봤다. 앞으로 계속 마주할 이 슬픔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이 많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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