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버찌
2023년 8월 23일
버찌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버찌는 복수를 빼낸 뒤 컨디션이 좋아지는 듯하더니 다시 상태가 안 좋아졌다. 밥은 정말 최소한의 양만 먹고 움직이질 않았다. 하필 이때 기존에 다니던 병원이 여름휴가 기간이었고, 나는 휴가기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2차 병원으로 달려갔다.
처음 간 병원이었고, 기존에 다니던 병원이 휴가라 진료내역을 받아볼 수 없어 버찌는 검사를 처음부터 다시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50분 정도 대기한 것 같다. 결과가 나왔다고 하여 진료실로 들어갔는데 글쎄 버찌가 말기 암이란다. 의사가 엑스레이를 보여주는데 복강 내 1/3 크기의 암이 있었다. CT를 찍을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엑스레이 상으로도 확인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의사는 그동안 밥을 안 먹고, 토했던 이유가 암이 너무 커서 장기들을 아래로 밀어내어 아파서 그랬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암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손발이 떨렸고, 눈물이 막을 새 없이 흘렀다. 병원에 가기 전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울었다. 그 와중에 동생은 본인도 울고 있으면서 버찌 앞에서 크게 울지 말라며 날 타일렀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인 줄 몰랐고, 또 그렇게 믿고 싶지도 않았다. 의사는 암이 너무 크고, 이미 전이가 많이 되어 따로 치료해 줄 방법이 없다고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진통제를 먹여 고통을 덜어주고, 버찌 곁에서 마지막까지 행복할 수 있도록 돌봐주는 거밖에 없다고 했다. 저 말을 듣자마자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은 것 같냐고 물었더니 1~2주 정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온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다. 월 단위도 아닌 주 단위로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나의 하나뿐인 고양이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됐다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평생을 건강하게 지냈던 아이였기에 더욱 믿을 수 없었다. 더 슬픈 것은 혈액검사 수치는 모든 게 정상이었다. 그냥 "암"하나 때문에 버찌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이다.
집에 돌아온 버찌는 아무렇지 않은 듯 내 침대 위에서 낮잠을 잤다. 사지 멀쩡하고 눈에 총기가 도는 쟤가 말기 암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떻게 저 작은 생명체에게 암이라는 병을 줄 수가 있을까? 2023년 8월 23일은 머리가 깨지도록 운 하루였다.
2023년 8월 24일
정말 이상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평소와 같던 아이가 다음 날이 되자마자 뒷다리를 잘 못쓰고, 몸을 크게 휘청였다. 이 와중에 아침잠에서 깬 나를 보자마자 그 휘청이는 다리로 다가와 애교를 부렸다. 그렇게 큰 암 덩어리가 몸에 있으면서 괜찮은 척을 했다.
가뜩이나 적게 먹던 음식은 더 먹질 않았다.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간식을 조그맣게 잘라줘도 2조각 정도만 먹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이 현실이 너무 잔인했다. 의사는 내게 버찌가 너무 고통스러워할 경우 안락사도 고려해 보라고 했다. 일반적이지 않은 제안이기에 그 의미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이해가 됐다. 버찌에게 그저 사랑한다고, 아프지 말라고 앵무새처럼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나 자신이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