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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남대디 Mar 20. 2024

(1) 우리의 첫 레버리지 앤케이커리

시작의 기술, 불확실성을 환영하라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이 정점을 찍던 2021년 초, 아내와 난 큰 결심을 했다. 방역 시스템 강화로 모든 것이 봉쇄되었던 암흑기에 사업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주문제작 또는 레터링케이크라고 불리는 커스텀 사업인데 당시에는 생소한 아이템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던 팬데믹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삼아 보기로 했다. 상권이 많이 죽어있던 터라 공실이 많았고, 보증금 역시 시세 대비 저렴했기 때문이다. 자본금이 여의치 않던 우리에겐 절호의 기회였고 과감하게 추진하기로 했다. 무모해 보일 수 있었던 다섯 살과 세 살 맘의 도전이었지만 난 아내를 믿고 전폭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회사와 개인적인 일에 쏟을 수 있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고 모든 스탠스를 아내에게 맞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린 남모르게 레버리지를 당겼다.



아내는 케이크 클래스를 다녔고 집에서도 틈틈이 케이크를 만들었다. 아이들을 재운 뒤에도 케이크에 대한 공부를 이어갔다. 일찌감치 아내가 '금손'인 걸 알았기에 오로지 케이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리고 나는 유튜브를 통해 창업에 대해 공부했고 자영업자가 알아야 할 정보를 모았다. 미천하지만 SNS 마케팅에 대한 감도 익혔다. 상권분석 강의를 결제해 시야도 넓혀갔다. 교대 근무를 하던 난 야간근무를 하고 아침에 퇴근을 하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상가를 보러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치기스럽게 보였겠지만 우리는 모든 시간을 쪼개 치열하게 살았다. 어느 것 하나 보장된 건 없었지만 후회는 하고 싶지 않았고 열심히 달렸다. 그렇게 우린 전쟁터에 들고나갈 총알을 차곡차곡 준비했다.



21년 말, 우리의 첫 매장을 계약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 근처이자 대학가와 역세권이 모두 겹친 곳.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아직 코로나라는 터널이 완전히 뚫리지 않았음에도 희망이 보였다. 사전에 주문을 받아 작업하고 픽업만 해가는 구조이기에 유동인구가 많을 필요도, 목이 좋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고객이 편하게 주정차를 할 수 있는 지상건물 1층이라는 메리트가 더 중요했다. 그동안 공부했던 것들을 총동원해 빠르게 오픈 준비를 해나갔다. 아무것도 갖춰있지 않았던 공간에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부담은 있었지만, 이조차도 우리에게 큰 행운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의 감성대로 직접 가게를 디자인하고 꾸려 나갈 수 있던 것이 큰 공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3개월을 전기 승압과 내부 공사, 인테리어, 주방 설비 등을 갖추는 작업에 집중했다. 그리고 22년 2월 아내는 '애둘맘'에 이은 또 하나의 걸작품을 탄생시켰고, 그렇게 앤케이커리는 시작되었다.



허접해 보이는 작은 가게지만 우리에겐 의미 있던 노력의 과정이자 열매였다. 평생 사업이라는 건 엄두도 내보지 못하고 안정만 추구하며 살았을 내가 아내 덕분에 신세계를 경험한 것이다. 무엇보다 값진 것은 평생 마스크만 쓰고 지낼 것 같은 갑갑한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돌파했던 우리의 도전이었다. 얼마든지 다음으로 미룰 수 있는 명목도 있었다. 아직 엄마 냄새가 제일 좋은 두 강아지들,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던 막막한 코로나 바이러스도 우리 의지에 제동을 걸기 충분했다. 그럼에도 우린 감히 위험을 감수하고 용감하게 추진했다. 이런 배짱과 무모함은 우리 부부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만약 그 당시, 확실한 것이 없음을 두려워하며 우리에게 찾아왔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다음으로 미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코로나가 종식되고 아이들이 많이 자란 지금이라고 해서 실행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개리비숍'≪시작의 기술≫에서는 일단 한 발, 한 발 움직이다 보면 그때부터는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 우리를 규정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성공과 경험은 모두 불확실성 속에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환영하라고 말한다.



얼마 전 난 회사에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딸과 여섯 살이 되는 아들을 더 잘 돌보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교육과 학습을 등한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바쁜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더 큰 사랑으로 채워 줄 생각이다. 다행히 내가 중요한 지점에서 휴직을 하게 된 것도 감사하다. 나만의 레이스에서 볼 땐 효율이 떨어져 보이는 구간이지만, 우리 네 식구 전체의 경주에선 충분히 승산 있는 경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또 한 가지, 우리는 두 번째 레버리지를 당길 생각이다. 3년 전 우리가 그랬듯,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결과는 나중에 생각할 일이다. 도전하고 모험하는 과정 그 자체가 우리 인생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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