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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남대디 Apr 05. 2024

(2) 계란 흰자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사소한 것을 위대하게 바라보는 힘

 가게를 오픈하고 아내와 나는 근처의 한 덮밥집에 식사를 하러 갔다. 점심도 먹을 겸 자연스럽게 인사를 드리는 일종의 통성명을 위해서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어머님 연배 정도의 사장님이셨는데 딱 봐도 인상이 좋으셨다. 우리는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며 고개를 숙였고 사장님은 환한 미소로 우리 부부를 맞아 주셨다. 그 뒤로 우린 그 가게에서 자주 배달을 시켜 먹었다. 사장님은 오실 때마다 엄마 미소를 보이시며 젊은 부부가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칭찬해 주셨고, 가게가 잘 되어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덕담도 잊지 않으셨다.


 언제부턴가 사장님은 배달을 오실 때마다 계란 흰자가 가득 담긴 통을 갖고 오셨다. 덮밥에 들어가는 계란 노른자를 사용하고 남은 흰자들이다. 우리가 케이크 가게라서 다른 디저트도 만들겠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사장님의 성의를 봐서라도 몇 번 받긴 했지만 이 녀석은 여기서도 그다지 쓸모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난 아내에게 더 이상 받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했지만 아내는 더 기다려보자며 계속해서 그것들을 받아 두었다. 그렇게 정체 모를 그 녀석들은 우리 냉장고 한편에 자리를 차지하며 나의 눈칫밥을 먹는 신세로 전락했다.


 어느 날 아내로부터 아이 유치원으로 간식 배달을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유치원 체육대회 행사를 위해 간식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바로 머랭쿠키. 아이들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비주얼이었다. 알고 보니 덮밥집 사장님께 받은 흰자들로 만든 작품이었다.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는지 그동안 이곳저곳을 찾아보며 공부한 끝에 머랭을 만든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아이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너무 맛있다며 호평을 해주셨고 심지어 머랭쿠키를 따로 구매하겠다는 인사도 해주셨다. 케이크 제작만으로 힘에 부치던 그때만 해도 머랭쿠키를 한다는 것은 시기상조였다. 아내는 정중하게 거절하며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했고, 그렇게 계란 흰자 이벤트는 해피엔딩으로 일단락되었다. 사업 초기에 기본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아내는 케이크 제작에 더 집중해 나갔다.



시간이 점점 쌓이니 아내의 케이크도 점점 물이 오르기 시작했다. 주문 건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특히 재주문율이 높아지며 단골손님이 증가했다. 몸은 더 바빠졌지만 마음에는 여유라는 꽃이 피기 시작했다. 케이크 선물의 특성상 주문해 주시는 고객들은 케이크의 맛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분들을 위해 늘 고심하던 중 자주 찾아 주시는 손님들과 특별한 사연이 있는 분들을 위해 머랭쿠키를 준비한 것이다. 지금은 덮밥집 사장님도 가게를 정리하고 은퇴하셔서 더 이상의 지원군은 없지만 아내는 다시 한번 계란 흰자 카드를 꺼내 들었다.


 깔끔하고 야무진 성격의 아내는 작은 과자 하나에도 엄청난 공을 들인다. 재료 하나하나가 좋아서 그런지 증정용으로 받아 가신 손님의 대부분은 주문 문의로 되돌아온다. 한 명, 두 명 그렇게 입소문을 타던 것이 점점 볼륨이 커져 유치원, 학교, 회사, 교회 등에서 답례품 선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바로 택배 사업. 처형의 권유로 얼마 전 쿠팡에 입점을 하게 된 것이다. 준비 기간 동안 여러 가지 잡음도 있었지만 이 또한 값진 배움이자 경험이었다. 이제는 가게에서 박스를 포장하고, 배송 조회에 신경을 곤두세우다 하루를 보낼지도 모른다. 주문이 언제 어디서 들어올지 모르며 생각지 못한 난관을 만나 휘청거릴 때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새로운 도전을 환영하고 감사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막연하게만 보였던 사업 초기의 출발 선상에서 우리가 받은 계란 흰자는 덮밥만큼이나 따뜻한 사건이었다. 우리에게 격려와 호의를 베풀며 계란 흰자라는 카드를 쏘아 올려주신 덮밥 사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그것을 기회의 땅으로 여기고 새로운 도전을 펼친 아내가 자랑스럽다. 시간이 흘러 우리 부부도 그만큼 성장하게 되면 지금의 우리와 같이 새로운 모험을 펼치려는 분께 격려와 응원을 쏘아 올릴 수 있는 그릇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 또한 끊임없이 도전하는 과정마다 의미와 행복을 느끼며 사는 감사한 인생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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