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 가게를 한 지 1년이 다 되어갈 무렵, 서울에서 아내의 친구가 찾아왔다. 결혼을 해 아이 둘을 낳고 가게를 차린 아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을 터. 몇 년 만에 재회한 둘은 오랜만에 점심을 함께하며 안부를 나눴다. 일전에 제빵을 한 경험이 있는 친구는 자신도 결혼 전에 케이크 가게를 차리고 싶다며 대뜸 아내 가게에서 일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장 내일부터라도 나오겠단다. 아내는 남편과 상의를 해보겠다고 했고 나 역시 괜찮을 것 같다는 대답을 했다. 오후에 몇 시간이라도 일을 도와주면 아내도 수월해지고 무엇보다 혼자 일하는 아내가 외로워할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혹여 같이 일하다 친구 사이가 멀어지진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크게 연연하지 않았던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서울에서 수원까지 왕복 세 시간을 매일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랴. 그것도 자발적으로 말이다. 부족한 것 없이 자라 인생에 큰 굴곡 하나 없어 보였던 그녀의 열정은 그렇게 길게 타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길어야 3개월. 조금 다니다 지쳐 흐지부지 끝날 것이라 치부했던 나는 아내에게도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며 호언했다.
그렇게 친구는 아내 가게에서 함께 일을 했다. 설거지와 재료 소분, 각종 반죽 등의 허드렛일을 하며 아내를 돕기 시작했다. 사장인 아내의 말을 잘 따라 보조했고, 점심을 먹으며 꿀 같은 휴식을 취할 땐 다시 어릴 적 그 시절로 돌아가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대목엔 늦은 시간까지 일하다 우리 집에서 잠을 자고 다시 아내와 같이 출근할 정도로 진심을 다했다. 아이가 갑작스럽게 아파 아내가 가게를 일찍 정리해야 하는 날에도, 교통사고로 병원에서 하루를 꼼짝없이 머물러 있어야 하는 날에도 그녀는 기꺼이 자리를 지켜주었다. 수년간 너무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만났기에 제법 어색할 만도 했지만 두 사람은 케이크라는 꿈 하나에 아이처럼 즐거워했고, 열과 성을 다했다.
며칠 전 친구는 아내에게 고마웠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부모님 소유의 건물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세입자가 이사를 하게 되어 창업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아내를 찾아와 일을 시작한 지 1년 4개월 만이다. 쉽지 않을 거라는 내 예상을 뒤엎고 그 친구는 승리했다. 하루라는 시간을 차곡차곡 통과한 끝에 마침내 기회를 잡았다. 양털처럼 온화하고 차분했던 그녀는 부단함이 얼마나 무서운 힘이 있는지를 톡톡히 보여주었다. 시간이라는 목발, 곧 꾸준함이 얼마나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기인지 몸소 가르쳐 주었다. 목표를 분명히 하고 결연한 태도로 함께했던 두 사람이 결국 협력하여 선을 이루었다.
아내 옆에서 단 한 번의 불평도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었던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자신의 실력을 애써 드러내지 않고 조연으로서 아내를 지지해 주었기에 지금의 아내의 가게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친구 역시 홀로 설 수 있게 되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을 가족처럼 정을 나누고 힘든 순간을 동행해 준 그녀를 응원하고 축복한다. 지금까지는 조연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주연이다.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어 멋진 사업가로 성장하길 축복한다. 그동안 보여준 부단함만 있다면 머지않아 인생의 여우주연상을 거머쥘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