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사랑한다
장사를 시작한 2022년은 우리 부부가 정말 많이도 다툰 한 해였다. 신혼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사업을 펼치니 얘기가 달라졌다. 평생 싸울 에너지를 한 해에 다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의 갈등은 극에 달했었다.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시작부터 여의치 않았던 사업 예산과 자잘한 문제들, 그리고 가게 운영 방식과 자금 운용, 거기에 육아 문제까지. 우리의 감정선은 최고조에 올랐다.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한 번에 몰리면서 우리는 정신없이 허우적댔다. 처음 마주하는 상황에 낱낱이 드러난 나의 민낯에 나도 아내도 많이 당혹스러웠을 터. 남녀 간의 단순한 감정싸움이 아니어서 그런 걸까. 생계가 달린 문제 앞에 각자의 성향과 기질은 극명히 드러났고 이러한 감정의 폭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 얼어붙어 갔다.
하루는 아내 가게에 불필요한 짐들을 정리하러 간 적이 있다. 서랍 곳곳을 열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박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 생각 없이 아내에게 무슨 약이냐고 물으니 그냥 영양제라고 하더라. 무심코 넘기며 지났는데 며칠 뒤 그것이 신경 안정제 기능을 하는 건강식품인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 몰래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불안과 심장 두근거림, 수면장애 등에 좋다더라. 케이크 만드느라, 고객 응대하랴, 집에서는 아이들 상대하랴. 시간에 쫓기며 정신없이 살던 아내는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자영업과 육아, 두 개의 큰 덩어리가 한 시점에서 부딪히니 극심한 스트레스가 몰린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가 남편이란 작자는 장사는 원래 힘든 거라고, 그러니 무조건 버티면 된다는 원론적인 얘기만 하고 있으니 속이 곪지 않았던 게 더 이상하지.
지금까지도 아내에게 가장 미안한 것이 있다. 바로 알면서도 모른 체하고 지내온 것이다. 많이 힘들었을 텐데. 가장 믿어야 할 남편에게조차 넋두리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외로운 시간들을 홀로 버텼다. 아내가 원했던 건 단지 따뜻한 '말 한마디' 그게 전부였을 텐데 말이다. 무엇이 그리 조급하고 불안했는지, 공감 능력 하나 없는 직장 상사처럼 내 기분만 생각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였다. 보기보다 강단 있고,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안심한 탓이었나. 아니 어쩌면 내가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처음과는 달리 점점 말 한마디에도 계산을 하고 수 싸움을 하는 인색한 남편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엔 우리가 결혼한 지 8년이 되는 날이었다. 아내를 알고 지낸 지는 벌써 10년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내는 예쁘고 따뜻하다. 바다같이 넓은 마음으로 늘 나를 배려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결혼기념일 덕에 우린 오랜만에 시간을 내 외식을 했다. 일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늘 마음에 여유가 없었는데 이날만큼은 마음에 짐을 풀고 얼굴을 마주했다. 아내가 준비한 케이크를 가져왔다. 우리의 사진이 담긴 케이크다. 바쁜 데 이건 또 언제 준비를 한 건지. 너무 고마운 마음에 울컥했다. 아니, 미안한 마음이 더 컸을 테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잃지 말자"는 말이 떠올랐다. 8년 전 그날로 다시 돌아갈 순 없겠지만, 그 마음은 다시 불러올 수 있다. 가진 것 하나 없이도 서로를 의지함으로 행복했던 그 시절을 다시 만끽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따뜻한 불을 지필 것이다. 부족한 내 인격을 잘 감당해 주고 늘 함께 해줘서 진심으로 고맙다. 미안하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