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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농 Jan 04. 2024

펜덴스와 함께 춤을

맘껏 흔들고 싶은 리듬은 따로 있다.

출근길에 매번 지나던 야트막한 언덕이 있었다. 양 옆으로는 오래된 5층짜리 빌라가 있었는데 집마다 갖가지의 것들을 걸어놓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 턱 끝까지 찬 숨을 잠시 잊게 해 주었다. 미역을 말리는 집, 통발에 이름 모를 생선을 말리는 집, 볕이 좋은 날이면 이불을 말리는 집도 있었고 새파란 사각팬티를 밖에 말리는 집도 있었다. 각자의 베란다 밖에 걸린 물건들을 보다 보면 다양한 삶의 형태 속에서도 일정하게 흐르는 리듬을 발견한다. 바로 계절이란 리듬. 그중에서도 봄의 시작을 알리던 집이 있었는데 겨우내 집 안에서 숨죽여 지낸 식물들을 모두 꺼내 베란다에 행잉으로 걸어둔 모습에 늦은 추위가 가셨다.


한 번은 그 집에 걸려있던 평범해 보이던 다육이가 살구빛 꽃을 피운 걸 보고서 가던 길을 멈췄다. 꽃이 피기 전에는 연두색의 알알이 달린 그냥 다육이였는데, 꽃이 핀 모습을 보고선 갑자기 손에 넣어야만 행복해질 것 같은 집착이 시작되었다. 서둘러 폰을 꺼내 줌을 가득 당긴 후 사진을 찍었다. 출근한 가게에 앉아 한참을 사진으로 검색해 보니 이름이 나왔다. "펜덴스." 

'국민' 다육이라 불리는 이 식물은 인터넷에서 2천 원이면 구할 수 있어 쉽게 만났다. 다육이는 우리 엄마나 키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보고 자란 건 정말 무시 못한다. 나이가 들수록 예상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는 내면의 엄마가 나를 놀라게 한다. 분갈이를 한다고 하루종일 베란다에 나가 있는 엄마를 보고 혀를 끌끌 차던 나는 어느새 10가지가 넘는 분갈이 용토를 배합한답시고 온 집안에 먼지를 날린다. 나는 이제 알지, 왜 엄마가 베란다에서 그리 오래 계셨는지.

 

펜덴스로 다육이의 세계에 처음 입문했다. 아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삶은 좀 더 심플했을까. 펜덴스로 시작된 나의 다육사랑, 아니 다육집착은 몇 년째 진행 중이다. 불행하게도 펜덴스는 내가 초보 식집사인 시절에 만나 한 달도 안 되어 자줏빛 붉은 테두리를 모두 잃어버리고 볼품없이 웃자라기 시작했다. 다육이라면 모두 햇빛을 좋아하고 물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여름에 모두 성장하고 겨울에 쉬는 줄 알았건만 다육이도 여름에 잘 자라는 하형다육과, 겨울을 좋아하는 동형다육으로 나뉘는데 펜덴스는 대표적인 동형다육이었다. 겨울을 좋아한다고 영하에 내놓으면 안 된다. 노지 월동이 되는 동형 다육이 있고 베란다 월동이 되는 동형 다육이 있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이 그 모습이 다 다른데 왜 다육이는 일괄적으로 클 거라 생각했을까. 같은 리듬에도 우린 모두 다른 춤을 춘다. 


나의 시행착오를 모두 견딘 펜덴스는 고맙고 미안하게도 잘 생존해 주었다. 식물 앞에 '국민'이 붙는다면 그건 강인한 생존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많은 국민들이 헷갈리며 그의 생존을 위협해도 이제껏 살아남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같이 산 지 3년이 지났는데도 그 고운 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꽃을 보려 샀는데 잎만 보는 이 상황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가끔 서운하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너를 내칠 수 없다. 나를 견뎌 준 몇 안 되는 너이기에 네 리듬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로 했다. 좀 더 나은 집사가 되어 네가 춤을 출만한 가락을 읊게 되면 그때 살구빛 꽃을 내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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