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을 진하게 우리면 변치 않는 우정이 된다.
위안이 되어주는 테이블야자
진지하게 키워 본 첫 식물은 2018년에 만난 테이블야자다. 여기서 '진지함'이란 누가 던져준 게 아닌 '직접 지갑을 열어 구매한'이란 뜻이다. 내 두 발로 꽃집까지 걸어간 의지도 포함해서 말이다.
미세먼지가 심했던 어느 날 세상에서 제일 강력한 마스크를 검색하다가 지친 나는 광고에 뜬 NASA가 선정한 공기정화식물 베스트 10을 클릭했다. 호흡기에 당장의 도움을 주는 건 마스크겠지만 그 마스크가 버려져 다시 태워질 때의 먼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다. 한 치 앞만 가리다가 다 함께 먼지 구덩이 속에 살아갈 것 같았다. 무채색의 마스크를 보다가 초록이 넘실대는 식물들을 보니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덩치가 큰 고무나무와 이레카야자, 관음죽을 지나 이거다 싶었던 테이블야자. 자그마하고 성장 속도가 무척 느린 점이 마음을 끌었다.
단돈 3천 원이면 집 안에 신선한 공기를 들일 수 있었다. 얼마나 놀라운가. 물과 약간의 빛, 그리고 바람만 있으면 된다. 화려한 공기정화 기능과 멀끔한 외관으로 지갑을 탈탈 털어가는 공기청정기가 필요 없었다.
당신이 식물을 잘 키운다면 말이다.
엄마가 키우는 식물들을 어깨너머로 보기나 했지, 돌본 적은 없었다. 학창 시절에 미화 담당이긴 했으나 화분은 으레 시드는 것이고 시들면 버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 억울하네. 학생에게 미화를 맡기다니. 학생의 무관심 속에 스러져간 식물들의 생은 어찌할 것인가.
진지하게 만난 테이블야자에 그런 결말을 내어주고 싶지 않아 검색을 거듭해 키워 온 지 6년 째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어리숙한 집사를 만난 테이블야자는 집사 모르게 홀로 몇 번의 고비를 넘겨왔을 것이다. 물을 자주 줄 때도, 말릴 때도 있었지만 순하고 강인한 친구라 잘 견뎌주었다.
식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 큰 집이 무조건 최고인 줄 알고 작은 포트 화분에 있던 걸 큰 토분에 심었는데도 살아남아주었다. 식물의 뿌리보다 1.5배 이상 큰 화분에 심을 경우 과습으로 초록별로 떠나버릴지도 모른다. 강한 햇빛이 무조건 좋은 줄 알고 잎을 태워먹기도, 영양제를 과도하게 주어 잎이 노래지기도 했다. 혹시 토분이 문제 인가 싶어 더 큰 플라스틱 분에 분갈이도 감행했었다.
이 정도면 식물집사가 아니라 식물고문관이 아닐지.
식물마다 선호하는 화분, 흙의 산성도, 흙의 배합, 광량, 물의 양이 모두 다르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내가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 이 친구는 삶이 얼마나 모질었을까. 그 속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온 테이블야자는 새 잎을, 희망을 꿋꿋하게 내어준다.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첫사랑 같은 그의 존재감이 묵직해진다. 나의 희로애락을 모두 함께한 그와 쌓아갈 앞으로의 우정이 더 기대된다. 매년 그를 사진으로 남기는 나의 사진 실력 또한 해마다 늘고 있다. 헤매는 식집사 밑에서 숱한 모진 세월을 견디며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그는 내게 말한다.
"불평하지 말고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걸 해. 너만의 속도로. 그럼 돼."
점점 나아지는 나를, 오히려 퇴보하는 것 같은 순간의 나마저도 묵묵히 바라봐주는 테이블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