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 드렁크 러브 / Punch-Drunk Love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02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를 다시 보고 느끼는 개인적인 잡념들을 서두없이 늘어놓아 봅니다…
0. 봉준호가 감탄한 오프닝. 영화사 로고의 여운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궁지에 몰린 한 남자가 등장한다. 푸른 양복을 입은 사나이는 영화의 긴 화면비가 무색하리만치 저 멀리 모서리에 쳐박혀 있다. 직각을 이루는 벽에 달려 있는 파이프는 씬의 공간을 어떤 복싱 링처럼 보이게 만든다. 정서불안의 블루 가이는 지금 코너에 몰려 있다. 갑자기 돌출하는 자동차와 풍금 그리고 빨간 드레스의 여자는 그의 정신적 외상의 과거 그로 인해 고통받는 현재의 좌표를 언급해준다.
1. 많은 이들이 로맨스 치유극에 어울리지 않는 난잡한 음악과 신경질적인 극 내의 상황을 언급해 취향의 맞지 않음을 호소한다. 당신이 정신병리의 충실한 재현도 시네마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면 이 의문은 가소로워진다. 베리의 여동생이 레나를 그에게 데려오는 장면은 정신병자에 혼돈한 머릿속에 찾아온 구원자 그리고 그 구원자가 유발하는 치유의 달콤함과 체내 급성 거부 반응을 한 치의 오차 없는 계산으로 온갖 판타지가 난무하는 펀치 드렁크의 월드에서도 극사실적인 리얼리티를 확보한다. 아름다운 화면과 불협화음을 이루는 극단적인 상황의 역동성은 이 영화만의 독창적인 미학이다.
2. 베리의 내외적인 외상은 알 수 없는 풍금의 출현 그리고 일곱 자매로 제시된다. 그리고 그들의 남편들조차 남자 간의 의리란 없으며 어처구니없는 폰 섹스 무뢰배들은 그의 분노조절 장애에 기름을 붓는다. 그 상황에서 창조경제적인 푸딩이 눈에 들어온다. 비행기를 타 본적도 없는 겁쟁이가 평생의 비행기 마일리지 축적을 위해 꼼수의 극한을 부린다는 플롯은 꽤 웃기다. 여기서 뭇 대사들로 이 영화의 코미디 정수가 드러나는데 이런 부분에서 같이 웃어줄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다는 게 나의 간절함이다. 어디 안 계실까요? 선착순입니다…
3. 그런데 그 푸딩만큼은 베리를 제외한 극 중의 모든 인물이 사실상 접근 불가능하다. 아무도 그가 마일리지 대박을 노릴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 마일리지는 레나에 의해 레나를 위해서만 사용될 수 있는 신파적인 필연성이 있다. 베리 주위엔 일곱 명 남매의 동기간이 있지만 정작 가족이란 이름에 가장 잘 들어맞는 ‘비합리성’ 을 인정해 주는 건 생판 모르는 남이라는 아이러니의 조명이 인상깊다(씁, 너무 유치한 고백인가?).
아무튼 간에, “내가 뭘 찾고 있지?” 친절하게 주제의식으로 인도시키는 대사 아래, 소심남의 연애 치유 서사는 풍금 - 일곱 자매와 치과의사 형부 - 폰섹스 - 푸딩을 거쳐 레나에게로 향한다. 대부분의 뻔한 영화들이 레나라는 천사에게로 가는 징검다리에 바보같은 필름 짜투리만 깔아놓는다면, 폴 토마스 앤더슨 같은 천재들은 그 논리가 조금은 엉성할 지라도 천재적이고 비상한 아이템들을 한 입 한 입 관객에게 정성스레 대령한다.
4. 로코에선 역시 대화 장면이 빠질 수 없는데 극 중에 그나마 정상적으로 좀 길게 대화가 이어지는 장면으로 중반부의 식당 씬이 떠오른다. 베리가 또 분노를 참지 못해 버리고 둘은 거리로 나오게 되는데 그 장면의 조명과 촬영 그리고 두 주인공들의 의상들까지 모든 게 너무나 완벽해서 황홀했다.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아름다움이랄까… 나도 언젠가 파란 양복을 한 벌 마련하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5. 꿈의 공간 하와이. 어느 나라에나 꼭 대비되는 공간이 있다. 서울 혹은 강원도? 도쿄와 홋카이도 뉴욕과 플로리다. 뜨거운 LA부터 아름디운 하와이의
해변으로 베리는 달려간다. 여기서 좀 의미심장한 장면이 나오는데 처음 레나의 호텔방으로 전화를 걸었을 땐 웬 남성이 받는다는 것이다. 이내 (베리의 상상대로?) 다시 전화를 걸자 이번엔 레나가 받는다.
깜빡 켜지는 전화 부스 조명 시끄러운 퍼레이드는 여기서부터는 사실 우리가 현실에선 기대할 수 없는 영화적 판타지임을 선언하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몇 리뷰를 찾아본 후)들었다. 탁월한 분석 같다. 원래대로라면 그렇게 찐따의 연애는 막을 내렸을 것이다. “우리가 만약…” 이라는 씁쓸한 상상이 긴 필름으로 하와이부터 덧대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6.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상 언어는 무한하다. 개인적으로 고전 스릴러 영화들의 이미지를 차용한 게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렇게 현대적인 영상에 고전의 향취를 가둔 작품들을 너무나 좋아한다. 모든 장면에 그만의 독특한 감각이 묻어있고 나는 오히려 후기의 고평가받는 작품들보다 펀치 드렁크 러브릐 짧고 강렬한 스타카토가 훨씬 좋다.
7. 마지막 필립 시무어 호프만과 아담 샌들러의 대결이 인상깊다. 전자는 추앙받는 예술 영화계의 거물배우지만 후자는 영화제와 시네필들에겐 웃음거리일 뿐인 만년 코미디언이었다. 그런 샌들러를 아트하우스의 경지로 불러들여 우뚝 세운 감독의 따뜻함이 몹시 매혹적이었다. 두 배우가 서로에게 잡아먹을 듯한 분노를 쏟는 연기 배틀은 두 배우가 가진 영화적인 배경의 접전이기도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결국 영화는 아담 샌들러의 편을 들어주고 그는 영웅처럼 모든 일을 해결(?) 후 레나에게 돌아와 꽁꽁 감춰뒀던 비밀병기인 푸딩 마일리지를 허락해주게 된다.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어디든 가요. 탈출해야 한다. 위 사진의 연달은 ‘exit’ 는 외상 입은 당시의 미국인들에게 어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외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토록 아름다운 영화가 유아적인 남성 판타지 취급을 받는 건 너무나 비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