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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Jul 21. 2024

싫어 병 걸린 딸과 안돼 엄마

갈등의 서막

"꼬마야~ 밥 먹어야 하니까 식탁 좀 닦아줄래?"


"싫어."


"밖에 비 온다. 창문 좀 닫을까?"


"싫어!"


"학교 갈 시간 다됐는데 씻어야지?"


"싫어, 싫다고!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요즘 들어 무슨 말만 하면 싫다고 하는 딸.. 그 목소리가 앙칼지다.

사진 찍는 것도 힘들다.



"엄마, 나 젤리 먹고 싶은데 사주면 안 돼?"


"응, 안돼"


"이 곰인형 이쁘지 않아? 나 하나만 사줘."


"안돼, 집에 인형 많잖아."


"그럼 통장에 있는 내 돈으로 살게."


"안 되지.. 통장에 있는 돈은 모으는 돈인데.."


"엄마는 왜 내가 말하는 건 다 안된다고 하는데?"


"그건 네가 안 되는 것만 하게 해 달라고...??!"


생각해 보니 요 녀석이 말하는 것마다 전부 안된다고 하는 요즘이다. 거울치료의 효과가 이런 것인가? 내가 하는 말에 무조건 '싫어!'라고 대답하는 녀석과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다.


나름대로 안 되는 이유가 있지만 전부 다 설명하자니 말꼬리만 붙들고 늘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입씨름하기 싫어서 간결하게 말한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거절의 단어뿐이다.



"오빠는 롯데월드 가서 신나게 놀고 있는데 나는 인형도 하나 못 사?"


시험 끝난 기념으로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는 오빠가 내심 부러웠던 꼬마는 결국 분노를 터트렸다. 그렇다고 녀석이 사달라는 대로 다 사줄 수는 없다. 화를 낸다고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투덜대는 딸과 열심히 걷고 있는데 새로 생긴 뽑기 가게가 보였다.


'그래, 이거로 녀석을 달래 보자.'


마침 뽑기 기계가 수십대 진열된 것을 발견한 딸아이가 관심을 보였다. 자연스레 가게로 들어간 우린 가격부터 살폈다.


×1 ×4


동전투입구가 두 개 있었고 위에는 저렇게 곱하기하고 숫자가 쓰여있었다. 코인 1개당 천 원씩이다. 수수께끼 같은 암호를 나름 추측해 본다. 코인 1개를 넣으면 한번 돌리는 거고 4개는 4번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건가? 일단 코인부터 바꿨다.


3천 원.


꼬마는 숫자 1이라고 쓰여있는 곳에 코인을 넣고 열심히 손잡이를 돌렸다. 전혀 꼼짝하지 않자 당황한 우린 뭐가 잘못된 건지 살피고 있는데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직원이 다가와서 설명해 줬다.


양쪽에 코인 개수만큼 다 넣어야 한다고...!


그제야 통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선명하게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젊은 친구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캐릭터를 뽑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거 일본에서 본 건데 여기에도 들어왔네?"


친구랑 대화하며 지나가는 청년의 목소리도 이제야 생생하게 들려왔다. 생각해 보니 휴게소에 있던 뽑기 기계도 2000-3000원은 줘야 하는데 천 원이면 말도 안 되는 금액이다.


그렇.. 이건 꽝이 없는 그냥 랜덤 뽑기 기계였던 것이다. 잔뜩 기대하던 딸아이를 실망시킬 수는 없다며 남편이 얼른 다시 코인을 바꿔왔다.


딱 한판의 기회만 갖게 된 녀석은 수많은 캐릭터 중 무엇을 뽑을지 고민했다. 석이 좋아하는 강아지인형을 뽑았다. 작고 귀여운 강아지가 통 안에서 나왔다. 새로 생긴 장난감이 마음에 드는지 이름까지 붙여주었다. 


그래.. 이름까지 붙여줬으니 잃어버리지 말고 오래오래 갖고 놀거라...



일 끝나고 집에 오면 몸이 천근만근 무겁다. 당장이라도 침대에 몸을 파묻고 쉬고 싶지만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 주부에게는 잠시 쉬는 시간조차 사치일 뿐이다.


학교 끝나고 엄마가 올 때까지 심심했던 꼬마는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졸졸 따라다니며 쫑알댄다. 녀석이 하는 말에 대꾸는 해주지만 사실 집중이 안될 때가 많다. 집안일을 하고 저녁준비를 하는 내내 옆에서 재잘대는 꼬마는 모든 일과를 마치고 쉬려고 누웠는데도 좀처럼 나갈 생각을 않는다.


"엄마, 내가 마사지해줄까?"


꼬마의 작은 손끝이 야무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주물러댄다. 더럽다고 남편도 만지지 않는 내 발도 스스럼없이 잡고 꾹꾹 눌러준다. 어찌나 시원한지 하루의 피로가 싹 날아가는 기분이다.


'싫어' 병 걸린 딸과 '안돼'만 외쳐대는 엄마의 모습은 언제 으르렁댔냐는 듯 평화롭다. 내일은 또 어떤 전쟁이 펼쳐질지 두렵지만 이 순간만큼은 을 즐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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