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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Jul 30. 2024

무언가 스스로 결정했다는 건..

한 단계 성장했다는 것!

월요일이지만 느긋한 이른 아침, 아들이 느닷없이 노트북을 내게 보여주었다.


"이게 뭐야?"


"오늘 2학기 회장 선거에 나가려고 하는데 세 번째 공약을 뭐로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노트북에는 선거공약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면을 바라보며 녀석이 쓴 글을 읽어보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작년 회장선거 때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서 나갔지만 올해 넌지시 물어봤을 때는 아예 생각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부회장으로 한 학기 동안 활동하면서 리더의 역할에 재미를 붙인 것 같았다. 올해도 선거에 나갈 것을 기대했는데 완강하게 안 나간다고 했었다. 2학기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하고 단념하고 있던 차였다.


아들이 가를 하겠다고 스스로 결정한 일은 처음 있는 일이다. 녀석은 이미 신청서도 받아서 작성한 상태다. 언제 또 이런 걸 준비했는지 기특했다.


"이벤트 같은 걸 하겠다고 해봐.."


"그건 이미 했어요."


아아.. 두 번째 공약에 2주에 한 번씩 퀴즈를 내서 맞추는 선착순 5명에게는 소정의 간식을 제공하겠다고 쓰여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공약은 녀석이 썼는데, 간식은 누가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요? 바로 저... 겠지요?!


뭐... 당선만 돼서 온다면 그 정도쯤이야 해줄 수 있지!!


"여러분의 손과 발이 되어 궂은일도 마다 하지 않고 솔선수범하여 봉사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건 어때?"


"그건 너무 추상적이잖아.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게 필요하다고요."


음.. 내가 말해놓고도 너무 고전적인 거 같다. 우리 때는 '실내화가 닳도록 열심히...' 이렇게 감정에 호소하는 표현들이 많았던 거 같은데 요즘에는 명확하고 개성이 넘치는 공약이 인기 있나 보다.


아니 근데 이렇게 중요한 걸 왜 진작 미리 말하지 않고 당일날 아침 등굣길에 말하는 것인가! 함께 고민해 주긴 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녀석은 결국 스스로 생각해 둔 내용으로 발표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안될 거 같아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녀석이 말했다.


"왜? 자신 없어? 혹시 안되더라도 실망하지 마.. 네가 도전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용기를 낸 거니까 그거로 넌 할 일을 다 한 거야. 지금까지는 운 좋게 하는 것마다 다 잘됐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실패하는 일도 생기겠지? 그럴 때마다 경험이다 생각하고 다시 도전하면 돼."


실패를 두려워하는 녀석에게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말이야 쉽지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어내고 이겨낼 수 있을까..


녀석은 무덤덤하게 인사하고 차에서 내렸다.



점심시간이 지나가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들이 문자를 언제 보내올지 내심 기다졌다.


'끝났니? 어떻게 됐어?'


결국 못 참고 녀석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침에 분명 6교시만 할 거라 했는데 한참이 지나도 소식이 없는 걸 보니 7교시까지 수업이 있는 모양이다. 일에 집중이 안 됐다. 왜 내가 떨리지? 전에도 이렇게까지 궁금하지는 않았는데 강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계속 신경이 쓰였다.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11표 대 17표, 6표 차이로 부회장에 당선됐습니다.'


엄마야~~!! 해냈구나..!!


문자를 받고서 뛸 듯이 기뻤다. 진지했던 조언들이 무색하게 녀석은 당당히 좋은 결과를 얻어왔다. 진심을 다해 축하해 주었다.


이번 일을 기회 삼아 녀석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일들이 더 많아으면 했다.


나의 작은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름방학을 맞이해서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신청하는데 아들별생각 없어 보인다. 모집인원이 적은 것은 금방 마감될 텐데.. 녀석은 본인 일이 아니라는 듯 느긋하기만 하다. 답답한 마음에 빠르게 프로그램을 설명한 뒤 할지 말지 정하라고 했다. 녀석이 오케이 사인을 보내면 바로 신청버튼을 눌렀다.


아아.. 한 단계 성장한 녀석의 독립성은 그 자리에 여전히 멈추어 있다. 그래, 조금씩 노력하면 언젠가 또 하나는 스스로 결정하겠지. 내년부터는 이 또한 스스로 해내리라.. 살며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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