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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Sep 30. 2024

사랑은 표현할 때 전달된다.

가족회의

퇴근 후 집에 온 남편이 거실로 온 가족을 불러 모았다.


"낮에 일하는데 꼬마한테서 긴 문장의 카톡이 계속 왔어. 그동안 우리한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나 봐. 대화가 필요할 거 같아서 나오라고 했어."


사실 엊그제 아이들과 사소한 마찰이 있었다. 아침부터 아들과 소통의 부재로 옥신각신하고 저녁엔 딸과 역시 이해 차이로 티격태격했다. 이미 녀석들과 문자와 대화로 풀었지만 그 사이 쌓인 게 많았던 꼬마 녀석이 아빠에게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었다.


'아니 근데 이런 얘기는 과일이라도 깎아 놓고 모여 앉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상황을 가볍게만 여긴 나는 어릴 때 종종 했었던 가족회의를 떠올렸다. 해가 바뀌기 전에는 어김없이 함께 했었고 대화가 필요한 순간에도 수시로 모였었다. 네 식구가 둘러앉은 상 위에는 항상 맥주와 음료수, 과일이 잔뜩 올려져 있었다. 각자의 생각을 주고받자는 취지로 만든 자리는  아버지의 훈화말씀으로 끝이 지만 말이다.



대화의 처음은 오빠와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사이좋던 오누이는 언젠가부터 피 터지게 싸우기 시작했다. 사소한 문제로 일어나는 말썽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꼬마는 아빠에게 하소연 한 내용대로 하나하나 조목조목 짚어가며 얘기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감정이 좋지 않은 오빠도 곱게 들을 리 없다.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녀석들의 생각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런데 싸움은 누구 한 명의 잘못으로 일어나지 않아. 두 사람이 똑같으니 싸움이 나는 거야. 지금은 뭐라고 얘기해도 아무 말도 들리지 않겠지. 엄마, 아빠는 너희가 싸울 때마다 똑같은 말을 계속할 수밖에 없어. 서로가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엄마, 아빠가 한 말들을 조금이라도 인지해줬으면 좋겠어."


후... 진짜 언제까지 싸울 건지.. 정말 지쳐가고 있는 요즘이다. 녀석들이 어렸을 때는 어떻게든 화해시키려고 중재했었다. 마지막은 항상 서로에게 "미안해"라고 말해야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큰 뒤로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감정의 골이 이렇게까지 깊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번 담아두기 시작하면 그 뒤로 서운한 마음이자처럼 눈덩이가 되어 불어나기 시작한다. 그때그때 풀어주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제삼자인 내가 매번 참견하기도 힘든 노릇이다. 싸움도 유치원생 수준이라 멀리서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본인들은 상당히 심각하리라. 아이들이 커갈수록 어렵고 들여다보기 힘든 것이 ''인 거 같다.


육아는 나이불문하고 여전히... 어렵다.



다음은 내 차례다.


내가 뭘 그렇게 서운하게 만들었을까... 녀석이 무슨 말을 꺼낼지 조금 두려웠다.


"엄마는 사랑한다는 말도 안 하잖아."


대뜸 내뱉은 녀석의 말에 순간 뒤통수를 세게 때려 맞은 기분이 들었다.


"사랑해. 사랑한다고! 사랑하는데..."

다급한 나는 딸아이에게 무작정 사랑고백을 했다. 아이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했던 게 언제더라... 녀석들이 어릴 때는 사랑한다고 말하고 애정표현도 서슴지 않았었다. 평생 사랑 주며 함께 할 것 같았는데 세월이 흐르고 나니 감정표현에 메말라 있었다.


얼마 전 내 생일 때 아들이 선물상자 안에 쪽지를 써서 넣어뒀었다. 생일 축하한다는 다소 심플한 메모를 보고 눈물을 와락 쏟아냈다. 바로...


"사랑해요.♡"


담백한 마지막 문장이 감성을 후벼 팠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편지를 자주 써주던 녀석의 마지막 문장은 늘 '엄마, 사랑해요.'였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잊고 살았다. 우린 애정표현이 쉬웠던 사람들이었다.


"엄마는 왜 맨날 나만 심부름시켜?"


"미안해! 그건 내가 잘못했어."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사과했다. 아이에게 어른도 잘못할 수 있다. 바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어디선가 들은 거 같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나는 실수를 꾸준히 인정하고 미안하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사소한 것이라도 녀석들의 감정을 존중하고 싶었다.


"꼬마야~ 거 냉장고에 좀 넣어줄래?"


"꼬마야~ 가는 길에 이것 좀 버려줘."


"꼬마야~ 어질러진 것 좀 치울까?"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는 꼬마 녀석이 계속 알짱대서 필요한 순간순간 잔심부름을 시켰었다. 몇 번을 불러도 대답 한번 듣기 힘든, 엉덩이가 무거운 아들을 시키는 것보다 훨씬 수월했다. 듣고 보니 녀석이 서운해할 만했다.


"엄마가 심부름시키는 게 정말 싫었구나... 그냥 엄마 하는 일을 도와준다고 생각하면 안 돼?"


"응, 안돼! 나만 시키지 말고 오빠도 시키란 말이야!"


하... 미안하다 해놓고 질척거렸다.


좀 더 효율적으로 공평하게 녀석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아주 굼뜨지만 아들은 언젠가는 부탁한 일을 해준다. 물론 까먹고 지나치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나름 공평하게 시킨다고 했는데도 꼬마가 보기에 부당하다 생각이 들었을 수 있겠다.


집안일은 아무나 못하는 성스러운 영역이 결코 아니다.


함께 거주하는 모두가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먼저이기에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다. 안일은 모두의 일이라고.... 


식사준비를 할 때 그릇을 나른다든지 청소기 돌리는 가벼운 집안일은 꾸준히 참여시켰었다. 집안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나중에 커서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을 평생을 안 하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잘할 수는 없다. 생활에 녹아드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외국생활 할 때 처음으로 독립해서 살아보니 유리은 아니었지만 온실 속 화초로 자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혼하고 본격적으로 가정을 꾸리고 나서야 집안일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아이들만큼은 강하고 독립적으로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었구나...


"그리고, 왜 오빠랑 차별해?"


"엄마가 언제 차별했다고 그러니? 둘이 똑같이 맛있는 거 사주고 어디든 함께 데리고 다녔는데. 자주 안아주고, 길을 걸을 때도 꼬마 손만 잡고 걷고, 예쁜 옷도 꼬마한테 더 많이 사줬는데.. 그러고 보니 오빠는 내일 입을 옷도 없어서 겨우겨우 발굴해서 옷을 찾았잖아. 그럼 이건 오빠가 서운하다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


"오빠가 사달라고 하는 건 다 사주고 내가 사달라고 하는 건 다 안된다고 하잖아."


억울하다.


항상 똑같은 사랑을 주며 키웠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니! 큰아이는 어딜 가도 뭘 사달라고 하는 법이 없다. 쩌다가 사달라고 하는 것은 학교 준비물이라던지 닳아서 더 이상 못쓰게 된 것들 뿐이다. 꼬마 녀석은 다르다. 어딜 가도 항상 뭔가를 사달라고 말한다.


"우리 꼬마가 사달라는 대로 다 사주고 싶지만 정말 그렇게 된다면 우리 집 재산을 다 써야 할 텐데?"


지지 않고 맞대응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말을 들어주자' 했던 초심은 어느새 유체이탈해 버렸다.


대화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데 결론은 나지 않고 녀석의 일방적인 주장만 거듭되다 보니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현명한 어머니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첫 가족회의는 결국 파국으로 치닫았다.


한 가지 놀라웠던 사실은 꼬마와 내가 감정이 격양될수록 남편은 평정심을 유지하며 차분하게 내 입장과 꼬마의 입장을 전달하며 중재역할을 잘했다는 것이다. 이런 면이 있었나?


아! 그러고 보니 시간이 늦었다는 이유로 급하게 마무리 짓는 바람에 남편 시작도 못했네?


기대해 남편~ 다음은 당신 차례야!



표현하지 않으면
묻혀버리는 진심


"어머나! 오빠가 3점 슛을 쐈대. 점수도 많이 내서 결승 진출 했다네? 내일 결승전에 나갈 거래!"


학교에서 스포츠캠프에 간 아들이 보내온 문자에 기뻐서 딸에게 말했다. 캠프 떠나는 날도 연습해야 한다며 아침 일찍 농구공을 챙겨 들고 학교에 갔다. 농구뿐 아니라 달리기 등 다양한 경기종목에 참여한다고 구급약품까지 챙기며 단단히 준비를 해갔다.


"진짜? 오빠 팀이 이겼대? 아~ 보러 가야 하는데..."

무심하게 중얼거리는 녀석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어릴 때부터 항상 오빠가 가는 곳에 따라다녔던 꼬마. 뭐든 잘 해내는 오빠를 보며 녀석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녀석이 말한 차별이란 게 이런 걸 두고 말한 것이었나?

농구하는 오빠 기다리는 다슬이..


그러고 보니 아들이 시험 보러 갈 때면 항상 온 가족이 출동했었다. 꼬마는 해당되지 않는 일에 봐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여기저기 끌려다녀야만 했다. 어린 딸아이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리지 못했다. 그저 맛있는 것만 사주면 해결된다고 어리석은 생각으로 합리화시키고 있었다.


항상 뭐든 잘 해내는 오빠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줄 때도 녀석은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물론 꼬마가 잘했을 때도 보상은 했었다. 늘 공평하게 한다고 했지만 어린아이의 시선에서는  다른 사람만 보일 뿐이다.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많았던 아들에게는 여러 가지 혜택도 많이 따라왔다. 꼬마도 함께 누린 것들이 있었지만 +1 기분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작은 생각이라 할지라도 직접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알아들을 수 없다. 이 정도는 당연히 알고 이해하겠지라는 섣부른 판단이 사소한 오해의 씨앗을 낳는다. 어른이든 아이든 누구나 진심은 표현해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


어색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사랑을 전달하는 데는 언제부터 라는 시작이 없다. 지금 당장 말하는 것이 좋다.


"사랑해~!"

런데... 여전히 낯간지럽다. 노력이 필요하다고! 우선 다음 가족회의 때엔 맛있는 간식부터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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