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찔찔이 Jan 05. 2024

8. 인생에는 튜토리얼이 없다.

대머리 아저씨와의 소개팅에서 냉동난자까지, 나의 모태솔로 탈출 분투기

 그에게 차인 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나는 휘청이고 있었다. 슬퍼하기에는 창피했고, 무너지기에는 할 일이 많았다. 그래서 또 인터넷 강의를 보기 시작했다. 이번엔 소개팅 프로그램이 아니라 연애 유튜버들의 방송이었다. 세상에 구독자가 이렇게나 많다니! 다들 이런 고민을 하고 사는구나 싶어 위로가 되었다.


 그들은 입을 모아 ‘이거 모르면 재회 같은 거 꿈도 꾸지 마라, 그 새끼는 처음부터 너한테 마음이 없었다, 가볍게 연애해라. 제발 네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별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아라’ 등을 외치며 연애 잘하는 스킬을 신나게 가르쳤다. 나는 캡처까지 하며 그들의 말을 새기고자 노력했다. 그러면서 그에게 다시 연락이 오길 내심 기다렸다.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을거야' 다짐했다.


 그러는 어느 날 오랜만에 아는 동생과 술을 먹었다. 나이 차이는 꽤 나지만, 말이 잘 통해 친구처럼 지내는 동생이었는데 그녀가 내 얘기를 쭉 듣더니 부산 사투리로 아주 쿨하게 한마디 했다.


 “언니 그 정도면 싸게 끊었다.”


 싸게 끊었다고? 이게 뭔소리여? 난생 처음 들어보는 말에 나는 뭐라 반응도 못하고 그저 듣기만 했다. “언니야.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거고, 첫 만남에 결혼까지 하게? 원래 누구나 처음에는 잘 못한다. 그냥 처음치고 꽤 싸게 끊었네 해라. 언니 나이도 있는데 오래 시간 끌고 오래 아파하고 그러는 사이 나이나 먹지. 그쪽한테 고맙다고 생각해라.” 처음엔 세상에 이런 위로도 있나? 싶었지만 돌아보니 그간 들었던 말 중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나는 SOLO - 모태솔로> 편을 보며 ‘저 모쏠들, 소개팅에서 상대가 웃어만 줘도 결혼식에서 틀 노래 상상하고 자식 이름까지 지을 것’이라며 놀려댔다. 어떻게 알았지? 나도 청첩장 디자인까지는 생각해봤다. 사람들이 모쏠들을 무자비하게 놀리는 것을 보고 처음엔 '그게 그렇게까지 티가 나나?'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다들 그 마음을 아는 건, 그들도 다 그래봤기 때문인 거 아닌가?


 연애 유튜버에게 자신의 사연을 상담하는 10대, 20대들도 자신을 모태솔로라고 소개한다. 짜식들 배부른 소리하네. 나는 세대갈등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모태솔로라는 말은 30대부터 쓸 수 있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더불어 나이 많은 모태솔로들이 어딘가 큰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만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늦은 것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딱히 말할데가 없어서 브런치에나 쓴다.


 근데 그가 싸게 끊어줬다고 (이 저렴한 표현이 그때 분명 위로가 되긴 했는데, 글로 쓰려니 뭔가 민망하다. 아니 내가 무슨 속도위반 과태료냐고) 내가 고마워까지 해야 하나? 싸이 노래 중 <I Remember You>에는 ‘기뻐서 울고 슬퍼서 웃고 우리 비싸게 주고받은 수업’이란 가사가 있다. 나도 좀 비싸게 주고받아서 꽤 오래 울어보고 싶었는데. 눈물을 흘리기에도 다섯 번은 너무 짧은 만남이었다. 공식적으로 ‘사귀는 사이’도 못되어 여전히 모태솔로인 게 슬플 뿐이라고!!


 이런 찐스러운 얘기를 늘어놓자 그 동생은 이 언니 어쩌지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그게 뭔 상관이야, 연애는 원래 둘만의 일인데?”라고 되물었다. 맞다. 이건 철저히 나의 일이었다. 나를 오랜 시간 보아온 선배는 내게 물었다. ‘너 그 시간을 후회해? 너한테 남은 것이 없어?’ 있다. 비록 짧았지만 그 시간이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다. 나는 무얼 잘못했는지 되짚는대신, 그 시간을 통해 나에게 남은 것들을 떠올리기로 결심했다. 지나간 일들에 대한 해석은 결국 나의 몫이다.


 나도 나이를 먹었겠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이혼 이야기까지 들으며 다 아는척했지만 여전히 나에게 연애는 청춘 영화 속의 무구한 떨림으로, 설렘의 필터가 잔뜩 낀 프레임 속의 이미지로 존재했다. 그러나 프레임은 필연적으로 왜곡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와의 만남은 연애에 대한 나의 관념을 ‘쨍’하고 깨주었다. 막연한 갈망일 때는 그렇게 대단해보였던 연애가, 남들 다 하고 나만 못하는 것 같았던 그 연애가 어쩌면 별게 아닐 수도 있겠다 싶어졌다. 괜한 자신감 같은게 생겼다. 나는 그를 고마워하기로 결심했다.


 그와의 약속은 대부분 장소와 시간 모두 내가 정했다. 나는 그도 이 시간이 즐거운지 궁금했고 또 그가 내 맘과 같지 않으면 어쩌나 불안했기에 계속 그에게 물었다. “여기 괜찮아요?”, “이거 괜찮아요?” 흥에 취해서도 확인했다. “진짜 괜찮아요? 나 혼자 즐거울까 봐.” 그러자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괜찮으니까 계속 괜찮다고 한 거예요. 제가 괜찮다고 했으면 그대로 믿어줘야죠.”


 나는 그동안 상대의 기분을 살피고 ‘이런 마음일지도 몰라’ 하며 눈치를 봤다. 그리고 눈치가 빠른 것이 살면서 나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왔다. 내 마음은 늘 분주했지만 상대들은 나의 배려에 편함을 느끼는 관계들이 많았다. 돌아보니 그런 관계는 동등한 관계가 아니었다. 그는 나에게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된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그렇게 내게 남은 것들을 떠올리다 보니 그의 거절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겠지, 진심이 아닐지도 몰라’ 같은 생각을 이제는 그만하기로 했다. 또한 더 이상 그를 기다리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인생에는 튜토리얼이 없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7. I was a car. 난 차였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