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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찔찔이 Jan 05. 2024

7. I was a car. 난 차였어.

대머리 아저씨와의 소개팅에서 냉동난자까지, 나의 모태솔로 탈출 분투기

 그와의 세 번째 약속은 산행으로부터 보름 뒤였다. 내가 벌려놓은 일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서 애프터 약속을 잡을 때부터 다음 약속은 한참 뒤에 가능할 거라 선수를 쳤다. 그러나 그 사이 산양처럼 산을 타며 호랑이 얘기나 떠드는 그에게 나도 모르는 새 호감이 커져버렸고, 보름이 길게 느껴졌다. 나는 늘 그래왔듯 조급해졌다.


 세 번째 약속은 보길도에서의 만남이었다. 산에도 올랐으니 이번에는 바다 위에 섬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시내 한복판에 있는 작은 횟집 이름이었다. 원래 같으면 저녁도 안 먹었겠다 회가 순식간에 사라졌겠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소주잔이 먼저 비워졌다. 병들이 쌓여가고, 나는 용기를 냈다. “그런 말 들어보셨어요? 삼프터 고백은 국룰이래요.”  


 그는 잘 모르겠다고, 그 쪽이 너무 애기처럼 느껴진다고 답을 했다. 나는 발끈했다. “아니, 애기요? 저 35살인데요?” 목소리가 컸는지 가게가 잠시 조용해졌다. 나 빼고 (그 포함) 전원이 중장년의 아저씨 손님들은 슬쩍 우리를 보더니 이윽고 소란스러워졌다. 우리는 말없이 소주를 들이켰다.


 소개팅 상대와 근처에 사니까 좋은 것이 있었다. 은근한 거절 뒤에도, 택시를 같이 탈 수 있었다.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던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초짜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그가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앞자리의 기사님이 신경 쓰였다. ‘하, 이 어린놈의 새끼들이 앞에서 으른이 운전하시는데’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그러나 그는 어린놈이 아니었다! 다만 내가 어린애였을 뿐. 당황한 나는 그에게 사실 내가 연애를 한 번도 안 해봤다고 털어놓고 말았다.


 그는 나에게 왜 그동안 연애를 안 했냐고 물어보았다. ‘안 한 거겠냐?’라고 따질 순 없었다. 그때 그냥 가만히나 있을 걸, 나는 마치 면접장에 간 사람처럼 또 횡설수설 답을 했다. 그 뒤로도 우리는 두 번을 더 만났다. 그 간보다 훨씬 편안하고 즐거운 자리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 만남이 계속되려면 뭔가 분명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그런 티를 내자, 그는 연락도 그만하는 것이 좋겠다고 은근하지 않고 아주 단호하게 매듭을 지었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의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이 소개팅에 대해 알고 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너 어떻게 된 거야?’를 물었다. 차였다고 답을 하기엔 우리 사이는 아무 사이도 아니었고, 슬퍼하기에도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는 생각에 괜히 부끄러워졌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도저히 울적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사람을 많이 만나본 사람들도 관계가 끝날 때마다 아플까? 도대체 무수한 인연들을 만났던 그들은 어떻게 산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해주었다. ‘야 나이 차이도 많이 났는데, 잘 됐어.’, ‘더 좋은 사람 소개팅 해줄게’, ‘좀 이상한 사람 같아’ 등등. 그러나 그런 말들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소가 음식물을 되새김질하듯 계속 ‘내가 이 말을 안 했더라면’, ‘이때 이렇게 행동했더라면’ 하며 지난 시간들을 반추했다. 그러면서 지난 시간이 튜토리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튜토리얼을 해봤으니, 다시 기회가 온다면 본 게임에서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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