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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omBtoP Sep 19. 2024

 《결혼•여름》 을 읽고 남기는 단상

인륜적 공동체의 실현을 위하여

이전에 카뮈의 『이방인』과 『시지프신화』를 읽고 ‘부조리’ 철학의 특징을 세상을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분명한 한계를 인식하고, 그로부터 드러나는 자명한 ‘부조리’를 인식함과 동시에 ‘반항’하며 살아가는 삶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독해한 바 있다. 그러나 카뮈의 『작가수첩』을 비롯해 이번에 읽은 『결혼』 등을 보았을 때, 카뮈가 제시하는 철학의 의도는 이 세계를 그저 절연된 상태로 놓으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의 철학이 가진 의도는 ‘인간’과 이 ‘세계’와의 관계에서 한때 향유했지만 ‘잃어버린 통일성’의 회복이다. 그에따라 카뮈는 세계와의 관계에서 인간의 우월한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그저 세계의 일부이다.


세계는 아름답다. 이 세계를 떠나서는 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 그 풍경이 내게 차근차근 가르쳐 주는 위대한 진실은 바로 정신이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 유일한 세계란 다름아닌 인간이 없는 자연(自然) 바로 그것이다. (『결혼』 p.67)


카뮈의 이런 생각은 헬레니즘 문화로부터 왔다. 철학의 근간에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이 있다. 그 영향력은 실로 지대한데, 특히나 근대의 독일 철학자들의 경우 “고전고대(古典古代)”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그것을 상찬할 정도이다. 고전고대의 그리스의 인간들은 세계와 합일을 이루었다. 공동체와 개인의 합일, 자연과 개인간의 합일이 이뤄진 시대였다. 반면 근대(近代)에 들어선 인간은 어떠한가? 루소가 시민생활과 정치생활의 분리를 시민(homme)과 공민(citoyen)으로 구별해 논했듯, 근대의 기본원리인 분업(分業)에 따라 공동체와 개인 간의 분리가 이뤄진다. 이를 ‘공사분리’라는 표현으로 사용하곤 하는데, 근대 이후의 철학자들의 사상을 독해할 때, 이 공사분리를 견지하며 독해한다면 많은 도움이 된다. 카뮈가 고전고대 그리스의 공사일체 사회를 상찬했음을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알 수 있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추방하여 유배보내 버렸지만 그리스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위하여 무기를 들었다. (『여름』, p119)


그리스 사상은 항상 한계의 관념을 방패로 삼았다. 그것은 신성(神性)과 인간의 이성 그 어느쪽도 극단에까지 밀고나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신성과 인간의 이성 그 어느쪽도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와는 반대로 우리의 유럽은 전체성을 정복해보겠다고 덤벼든 무분별의 딸이다. … 유럽은 오직 한가지만을 찬양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성이 지배하는 미래의 제국이다. (『여름』, p119-120)


인용한 부분을 보았을 때, 또 한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은 카뮈는 “이성”을 부정했다는 사실이다. 카뮈는 생애동안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바 있다. 근대를 지나며 뉴턴의 고전 역학과 독일의 근대 철학, 프랑스의 시민 혁명, 영국의 산업 혁명등의 사건들이 일어났는데 이는 모두 인간의 이성(利城)에 대한 찬양이라는 토대 속에 세워진 업적들이었다. 그 합리주의의 결과는 무엇으로 귀결되었는가? 바로 두 차례의 전쟁이다. 따라서 이런 현실 속에 놓여진 카뮈는 ‘이성’의 합리성을 의심하고 또 부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앞서 카뮈 철학의 핵심인 ‘부조리’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이 부조리는 인간이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좌절하며 생겨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이성’으로는 ‘세계’를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카뮈의 생각이다. 카뮈가 보기에 세계는 파악해야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세계 그리고 그에 속한 다른 존재들과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다시금 인간-세계의 통일이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세계의 합일, 즉 ‘결혼’이 그것을 바탕으로 한 삶의 충일, 행복 등으로 이어진다. ‘내’가 ‘세계’와 하나일 때, ‘나’는 이 세계와 결혼 첫날의 나른한 행복을 맛보게 된다는 것이 카뮈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그 합일은 어떤 수단을 통해 이뤄질 수 있을까? 여기서 독일의 철학자 헤겔의 논의를 따라가 볼 수 있다. 앞서 근대의 철학자들은 ‘공사분리’의 해소를 그 목표로 삼았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 헤겔 역시 그러했다. 헤겔도 저서인 『정신현상학』에서 고전고대 그리스를 개인과 세계의 합일이 이뤄진 ‘인륜적 사회’로 규정한 바 있다. 이것을 가능케하는 추동력으로 헤겔은 그리스의 ‘예술종교’를 말한다. 개인과 공동체의 통일적 삶을 위해선 이성적 능력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즉 “이성의 심오한 도덕적 욕구”와 “감성의 따뜻한 훈기”를 통한 ‘마음’의 형성이 중요하다고 헤겔은 말한다. 헤겔은 이런 공동체적 심성을 도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성과 감성의 통일속에 존재하는 종교, 그중에서도 특히 고전고대 그리스에서 나타난 종교를 모델로 삼는다.


헤겔은 예술을 주로 종교와 관련된 논의에서 공동체적 감성을 야기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본다. 예술은 ‘미적인 것’을 통해 진리를 표현하여 “앎의 직접적인 형태”가 되며, “상상하는 정신”의 활동을 통해 자연의 직접성을 “이념”으로 고양시키는 활동이다. 주관과 객관의 통일의 계기를 함축하고 있는 이러한 ‘예술’은 1) 외면적으로 공유하는 현존재로 이루어진 작품과 2) 이 작품을 생산하는 주체, 3) 그리고 이 작품을 직관하고 존경하는 주체로 구성된다. 예술 속에 나타난 주객의 통일은 우선적으로 예술 작품 속에서, 그리고 작품을 생산하는 주체와 작품을 감상하는 주체들 속에서 나타난다. 즉 예술가는 자신의 주관과 자연으로부터 부여된 재료들의 통일을 통해 예술작품을 탄생시키며, 이로부터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주관과 자연이라는 개관의 통일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작품을 생산하는 자와 작품을 감상하는 자가 예술작품 속에서 일체감을 느낄 때, 즉 보편성을 획득할 때 비로소 예술가의 노동행위의 결과물인 하나의 작품이 단순한 노동의 결과물이 아닌, 하나의 예술이 된다는 점에서 주객의 통일적 요소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헤겔에 의하면 예술이 가져오는 예술적 직관은 주관과 객관의 통일을 통해 진리를, 이와 함께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계기를 보여준다. 헤겔에서 ‘예술’에 해당하는 카뮈의 수단은 바로 ‘문학’이다. 문학은 인간과 세계 사이에서 실현되었던 통일성을 회상하며, 동시에 단절된 관계를 재정립하는 기제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뮈는 『문학수첩』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내게 예술이 전부가 아니다. 적어도 그것은 하나의 수단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카뮈에게 예술, 즉 문학은 통일성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었다는 것이고, 동시에 그것만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카뮈에게 절대적인 무언가는 존재했는가? 그것은 바로 인간과 세계와의 합일, 결혼, 통일성, 즉 “인간과 대지의 저 연인 사이와도 같은 공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카뮈의 종교이기도 하다. 카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라(全裸) 상태라는 것은 언제나 어떤 육체적 자유의 의미를, 손과 꽃들 사이의 일치를, 인간성으로부터 해방된 인간과 대지 사이의 저 연인 사이와도 같은 공감(共感)을 담고 있다. 아! 그 공감이 이미 나의 종교가 아니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나는 그쪽으로 기꺼이 개종(改宗)하리라! (『결혼』 p.63)


앞선 논의들을 따라 하나의 결론을 내보았을 때, 카뮈는 ‘이성’과 그로부터 나타난 합리주의에 대한 부정을 “부조리”로 나타냈음을, 그가 늘 견지하고 있는 ‘반항’은 세계와 인간과의 통일을 늘 겨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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