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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민 Jan 17. 2024

법원에서 생긴 일 2

함께 울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가 법원에서 근무하는 부서는 개인회생과다. 소득이나 재산에 비해 과다한 채무를 갚지 못한 개인 채무자들이 회생신청을 하면 서류를 심사한다. 개인회생절차개시결정, 채권자들이 참여하는 집회기일, 변제계획인가결정을 통해 채무자가 변제수행을 다하면 면책결정까지 이르게 된다. 물론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법원에서 임명된 회생위원과 판사가 꼼꼼하게 심사한다. 


  돈을 갚아 나가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연체되는 경우도 많다. 직장을 잃은 사람, 일용직으로 일하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수입이 없는 사람,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예비 남편이 알면 곤란하니 집으로 우편물을 보내지 말라며 사정하는 사람까지 각양각색이다. 나를 포함한 직원들은 대개 방문보다 전화응대를 하게 되는데, 보통은 채무자들을 사건번호로 특정한다. 매 사건번호마다 채무자가 다르고 갚아야 할 돈을 입급하는 회생계좌번호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변제현황과 연체여부, 채권자들의 입금요청, 돈을 다 갚지 못해 회생이 폐지되는 과정 등이 내가 담당하는 업무다. 그 과정에서 개인들의 개별적 사정은 침잠하고 숫자만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일을 하고 통근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산을 넘고 내를 건너'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나는 숫자들을 잊으려고 노력한다. 되도록 직장과 가정의 일을 분리하려고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일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와 업무의 잔상이 가족과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퇴근 길에 둘째 어린이집 하원을 시키고 나무 데크 계단을 내려오는데, 신호등 앞에서 같은 어린이집을 보내는 어머니를 만났다. 첫째와도 같은 어린이집을 보내는 분이라 오며가며 얼굴이 익었다. 안부와 아이들에 관한 가벼운 대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얘들을 씻기고 밥을 먹는데, 아내가 말을 꺼냈다.


"오빠, 나 오늘 좀 충격적인 말을 들어서 머리가 멍해."

"왜 무슨 일 일었어?"

"같은 어린이집 다니는 k엄마 알지?"

"응, 아까 하원시키다가 잠깐 만나서 이야기 했는데, 별다른 말은 없었는데?"


"오전에 등원시키다가 아파트 후문 앞에서 만나서 얘기를 했어, 둘째 어린이집 옮기는 문제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그 분이 '우리는 한부모가정이기도 하고, 첫째가 장애가 있어서 옮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취지로 말하잖아. 분명 저번에 아빠가 회사 다닌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이상하네, 생각하면서 무슨 일 있으시냐고 물었어. 그분이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시면서 얘들 아빠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고. 그래서 기초수급자 신청하려고 차를 팔았는데, 얘가 장애가 있으면 차를 팔지 않아도 신청이 가능했는데 잘 몰라서 팔아버렸다고, 하시길래 너무 놀라서 손을 붙잡고 같이 엉엉 울었어. 그분이 조금 있다가 하시는 말씀이 '같이 울어주셔서 너무 고맙다고.' 평소에 그렇게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사정을 듣고 눈물을 쏟았어."


  밥을 먹으면서도 '같이 울어주셔서 고맙다'는 그 말이 잊혀지지 않았다. 아내는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그 상황이 너무 공감되어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는 오빠가 없으면 얘 둘 혼자 못 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농담조로 '잘 사는 왜 나를 보내냐, 나 보험 빵빵하니 걱정말라'는 취지로 말하긴 했지만.

두 사람이 흘린 눈물에 잠시 빠져 허우적거린 후 며칠 동안 그 광경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가 매일 대하는 개인회생채무자들과 아이의 친구엄마는 모두 극단에 놓인 상황이다. 일로서 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뭇 사무적이고 기계적으로 응대를 하는 나와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낸 그녀에게 내가 느낀 감정은 왜 달랐을까. "맹자"에 나오는 고사처럼 양은 보지 않았지만 소는 눈으로 보았기 때문일까. 측은지심으로 불리는 공감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 전자가 슬픈 사연을 들었을 때 감정을 이입하는 본능에 가까운 감정이라면, 후자는 타인의 상황을 의식적으로 이해하고 추론하는 과정을 통해 느끼는 감정이다. 후자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관심을 갖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기를 수 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걸려오는 민원 전화를 응대할 때 '같이 울어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의식적으로 기억해야겠다. 인지적 공감능력을 길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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