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맞은 것처럼' (줄서기에 관하여)
민사신청과에서 여러 가지 증명서를 발급하는 보직을 할 때다. 가압류(가처분), 파산면책, 담보취소, 재산명시, 채무불이행자 명부 등재 등에 관한 서류를 발급하는 자리라 오전 10시 전후부터 긴 줄이 생기곤 했다. 외딴 섬처럼 대직자도 없이 오롯이 혼자 일을 하는 자리였다. 급하게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창구 앞에서 북적이는 사람들을 보면 한숨이 나기도 했고, 하루에 수많은 사람들을 대면하면서 쌓이는 스트레스가 심했다.
오후 1시, 점심시간으로 잠겼던 문이 열리자마자 긴 줄이 생겼다. 신청서류를 검토하며 처리하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첨부해야할 수수료(정부수입인지)를 사오지 않아서 청사 내에게 있는 은행에 가서 인지를 구입해서 다시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그 다음 사람들의 신청서를 처리하고 있는데, 그 아주머니가 늘어선 줄을 지나 창구 옆으로 오더니 구입한 인지를 내밀며 처리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신청서는 이미 받아두었던 터라 처리하던 건만 마무리하고 발급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 줄에서 두 명의 남자가 삐죽 고개를 내밀더니 그 아주머니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 알만한 사람이 새치기를 하고 그래요? 여기 줄 선 사람들 안 보여요?"
"그게 아니라, 아까 신청서 써 놓고 잠깐 은행 가서 인지인가 뭔가 사온 거에요."
두 남자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그러면 다시 줄을 서야지. 여긴 있는 사람들은 한가해서 줄 서고 있는 거야 뭐야!! 여기 다 바쁜 사람들인데
말이야, 참, 대한민국 좋은 나라야, 미국 같으면 아줌마 총 맞아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직원이 말리기 시작했지만 언성이 더 높아졌고 나는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어느 한 쪽의 편을 들 수 없는 상황에서 일단 그 상황을 관망하다가, 주변이 수습될 즈음 그 아주머니 사건부터 처리해 드렸다.
씩씩거리며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이끌며 문 밖으로 나갔던 한 사람이 들어왔고, 그 사람 순서가 되어 서류를 보니 결론적으로 우리 법원에서 처리할 사건은 아니라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 아주머니와 남자의 사정이 일정부분 이해가 간다. 무엇이 그렇게 남자를 화나게 했을까? 내가 이만큼 힘들여 줄을 서 있는데 감히 당신이 새치기를 해? '공정과 상식'에 반하는 행위를 참을 순 없지, 하는 심정이었을까.
줄을 선다는 것은 품을 들이고 애를 써서 기꺼이 해야 하는 일이다. 멀마 전 주민센터에서 딸 아이와 아내의 발레와 요가 신청을 위해 일어나자마자 주민센터로 달려가서 접수증을 받아왔던 기억이 난다. 만약 그 자리에서 누가 새치기를 해서 우리 자리가 빼앗겼다면 나도 화가 났을 것이다. 줄을 선 순서대로 처리하는 것이 가장 평등하고 공정한 방식은 원칙적으로 맞다.
그렇다면 줄을 선 순서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한다는 명제는 언제나 옳을까?
놀이공원에서 웃돈을 더 주면 살 수 있는 fast track, 프리패스 제도나 명품 신상품을 사기 위해 알바를 고용해 줄 선 행위는 어떤가. 이건 괜찮다면 저건 왜 안 될까. 만약 고속도로 화장실이나 병원 응급실 진료에 웃돈을 더 주고 우선권을 살 수 있게 한다면 그건 허용해야 하는 일일까.
억울하면 돈 많이 벌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지,라며 넘기버리기엔 내겐 '총 맞은 것처럼'
아프게 꼽씹어보아야 할 과제인 것 같다.